사경으로 많은 변화...늘 사물과 대화
사경수행자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 영광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대구 동화사 대웅전 보수 작업 중에 고려 사경들과 복장물들이 나왔다. 이 기회에 고려사경을 재현하는 의식을 거행한다는 사경연구회장 김경호 선생님의 말에 가슴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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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을 든 청의동자와 홍의동자가 앞장을 서고 번(幡)이 뒤를 따르며 악단이 그 뒤를 따랐다. 사경지를 연(輦)으로 이운이 되고 스님들과 사경수행자들이 그 뒤를 따라 행진을 하고 향수와 꽃을 뿌릴 때, 마치 고려 시대로 온 듯 했다. 여법한 사경의 재현이 이뤄졌다.
그 순간, 난 생각했다. ‘이곳에 모인 사경수행자들은 아무래도 고려 때 인연인 것 같다’고. 사경수행자 모두는 환희심 속에서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를 계속 연발했다.
108명의 사경수행자들이 모두 법복을 갖춰 입고 법당에 단정히 앉아 고려 사경 법회를 재현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뿐만 아니라 난 사경하는 동안 법당에 부처님의 법력이 가득 차 있음을 느꼈다.
그 후로 난 욕심껏 사경을 했다. 너무도 열심히 하다 보니 허리와 어깨가 아파왔다. 그럼에도 난 ‘아픔도 친구 삼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하며 합천 해인사로 찾아가 3보 1배도 했다. 이렇게 끊임없는 수행을 하다보니, 난 부처님의 크신 은혜를 아무런 거부감 없이 느끼게 됐다. 사경을 할 때는 항상 부처님께서 옹호 해주신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이렇게 해온 사경수행은 내게 많은 변화를 이끌었다. 마음이 움직이는 데에는 뜻이 늘 함께 했다. 모든 사물과 대화를 하게 됐고, 그 대화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산행 중 길을 잃을 때에는 날짐승이 인도하고 들짐승이 인도해 주기도 했다. 내 마음이 다른 사물의 마음과 일치됨을 경험했다.
사실 사경수행을 할 때, 처음에는 눈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3개월이 지나고서 부터는 아주 맑고 깨끗한 눈으로 바뀌었다. 또 묵은 병이 재발해 치료를 하였는데, 사경수행으로 말끔히 나았다. 특히 많은 일들이 마음 먹은 대로 이뤄져 환희심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난 사경수행을 통해 증득한 것이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읽고 외우고 정성을 다해 사경을 한다면, 누구든지 본묘각(本妙覺)을 덮고 있는 억겁 생사의 망령을 떨치고 청정 법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또 <중변불변론 무상승품>의 십종수지(十種受持), 또는 십종전통(十種傳通)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사경은 부처님 이치대로 글귀와 뜻을 취할 수 있게 했고, 바른 마음으로 듣고 외워 조용한 데에서도 이치대로 헤아릴 수 있게 했다.
난 늘 ‘부처님, 사경수행을 통해 얻게 된 이 모든 환희심과 감사의 마음을 당신께 정중히 바치옵니다’라고 발원한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라고 서원한다. 이것이 바로 사경수행의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