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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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진 팔모 스님 ‘법과 사랑나눔’ 도선사 강연
불교여성개발원 초청, 여성 수행자의 구도역정 '감동'

텐진 팔모 스님. 현대불교 자료사진.


불교여성개발원(원장 김인숙) 초청으로 내한한 텐진 팔모 스님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비의 실천’을 주제로 도선사 호국참회원에서 6월 30일 강연을 했다.

스님은 “마음 속 삼독이 삶의 고통을 만들어낸다. 자비는 근원적으로 남들과 함께 느끼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남이 지금 느끼는 슬픔 고통을 내 것인양 느끼는 것이 자비이다. 자비는 불자의 생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이것이 없이 나만의 삶이나 수행을 이루어 나가기가 힘들다. 자기 자신에 대한 얽매임, 나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남을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의 삶과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이다”라고 강연했다.




다음은 강연 전문.



어리석은 마음이 섞여 우리의 에고가 커지기 때문에 고통과 사람들과의 알력으로 나타난다. 나 밖의 모든 것에 남 탓을 하게 된다. 우리 고통의 모든 원인은 내부에 있다. 내 생활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다른데서 새 삶을 살겠다고 떠나면 어리석은 마음 그대로 돌아온다.
현대사회에서 맑은 마음을 가지고 살기가 어렵다. 정부 사회 라디오 방송 등 내안의 삼독을 키우듯이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TV시청하면서 삼독이 쌓이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흥미로운 통계가 나왔다. 7~12학년(우리나라의 중1~고3에 해당) 동안 청소년들의 TV 시청 시간을 합산하니 2만5000시간이나 된다는 내용이다. 2만5000시간 동안 청소년들은 폭력만 본 것이다. 이런 폭력적인 프로그램들이 청소년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현재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 역시 계속해서 폭탄을 설치하고 총 쏘고 때리는 등 폭력적이다.

외부서 TV를 보고 받아들일 때 영상과 소리가 우리 마음속에 지문 내지는 사라지지 않는 각인을 남기는 것이다. 수백만 달러를 들여 만든 광고가 우리 마음에 하는 일은 필요없는 물건을 사도록 유혹 설득시키고 그 필요없는 물건이 없으면 안되도록 중독시키는 일이다.
어느 시인이 말하기를 자기는 신발이 400켤레가 있다고 말했다. 발은 두 개밖에 없는데 400켤레가 뭐가 필요한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선지식들이 불법에서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은 마음 속 삼독이라고 수없이 말했다. 세상 여러 일들이 마음 속 삼독에 기름을 붓고 있어 더 거세게 타오른다.
이 삼독 중에서도 고통의 근원적인 원인 제공하는 것은 집착이다. 나에 대한 집착 내에 예뻐야해 내가 달라야해 하는 집착이 다른 독보다도 더 근원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잘 사는 선진국이라는 곳 일본 오스트리아에서 젊은이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1위로 올라가고 있다.

요즘 세대들은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고,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이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 만족 행복을 만들어 주지 않는 것 같다. 역사상 젊은이들이 그렇게 풍요하게 많은 것을 가진 적 없지만 이렇게 삶에 불만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부처님께서는 탐심은 짠 바닷물과 같아서 바닷물을 다 들이마셔도 만족을 모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역사상 그 어느 때도 어린이들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 적 없고 노인들이 무시당한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다. 물론 수많은 어린이들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부모가 맞벌이하기에 밤늦게 돌아온다. 하교한 어린이들은 집에 돌아와도 반겨줄 부모가 없다. 부모가 들어와도 피곤하다며 얘들 쳐다보기도 힘들고 밥도 하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밖에서 사온 음식을 펴들고 TV를 본다. 가정 밖 사회에서는 경쟁,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팽배해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삶에 관심이 없다. 지금 이순간 충실히 존재하면서 삶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다.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돈을 벌면 좋은 집을 사야지 등등 그래서 내 주변 친구 동료들이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할 생각밖에 없다.

미래에 행복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거기에만 몰두해 현재 삶에 몰두 못한다. 현재 살아있는 느낌이 없어 자기 자신을 무감각하게 만드려고 한다. 술을 마시거나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자신의 관심을 자기 자신 밖으로 돌려 나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마취제 같은 역할을 한다.

요즘 폭력 마약 범죄가 거리에 난무한다. 내가 어린 시설 영국 런던의 이스트 앤드에서 보냈다. 서울에서는 구로공단 쯤 되는 좋지 않은 거리였다. 어머니 혼자 벌어 생계유지했다. 좋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은 곳이었다.

만족을 모르고 범죄가 난무하는 이 세상은 열에 끼어 차를 타고 가는데 내가 그 열의 제일 앞에서 가야할 방향을 모르고 운전하고 가는 것과 같다. 이제 내가 태어난 삶 일터 가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나의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 우선 나부터 시작해 주변에 있는 가족 직장동료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는 있다.

불법을 보면 나만의 삶에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알려주는 좋은 말이 많다. 오늘 중점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자비’이다. 자비는 근원적으로 남들과 함께 느끼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남이 지금 느끼는 슬픔 고통을 내 것인양 느끼는 것이 자비이다.

제자들과 함께 한 팔모 스님. 현대불교 자료사진.


대승불교에서는 이런 자비 정신을 구현하는 보살이 관음보살이다. 자비는 불자의 생활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이것이 없이 나만의 삶이나 수행을 이루어 나가기가 힘들다. 자비는 남의 고통을 내 것인양 느끼는 것인데 우리 가족부터 시작해 보자. 남편 아내 부모 자식 형제자매들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들이 행복하고 고통이 없기를 바란다.
가족 중 가장 가까운 이를 머릿속에 그려보고 내가 그 입장이 됐다고 생각해보자. 그 때 중요한 것은 내 마음으로 그 사람이 됐다고 상상하지 말고, 그 사람의 마음으로 그 사람이 됐다고 상상해야 한다.

우리 입장에서 자식 입장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식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입장에서 그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자식이라면 엄마가 어떤 행동을 하기를 바랄까 생각해 보라. 이것이 ‘나’고 저것이 ‘내 오빠’라면 내가 바로 오빠가 되고 오빠인 내가 나를 보는 것이다. 오빠의 입장에서 오빠의 생각을 말해볼까? 나에게 티벳불교 비구니인 동생이 있다. 이 동생이 나에게 이런 행동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본다.

이런 상상은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 많은 이들이 주변에 있다면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는 것이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엄청나게 도움이 된다. 여러분이 만약에 하인이나 운전기사, 부하직원이 있다면 그 사람 입장이 되고 그 사람 자체가 되어서 보스를 보자. 그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 보스는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이런 행동을 하면 어떤 마음을 보일는지 생각해 보자.

평소에는 우리 자신의 의견으로 마음이 꽉 차있다. 나만의 생각 나만의 집착 나만의 정체성을 의심하는데 이런 수행의 순간에는 나를 잠깐 비우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하고 싶어한다. 각자 마다 그 행복에 대한 정의는 다르지만 행복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고통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마음 속의 고통 육체적인 고통 영적인 고통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행복하고 싶고 고통을 피하고 싶듯이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싶고 고통을 피하고 싶어한다. 머리색이 다르고 성별도 인종도 얼굴색도 사는 지역도 모두 다르다. 이런 차이와 상관없이 행복을 원하는 마음은 같다. 갓 태어난 아기도 행복을 원하지 고통을 원치는 않는다. 청소년 청년 중년 노년 중 고통을 원하고 행복을 원하지 않는 나이의 사람은 없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은 행복을 원한다.

자신 내면에 생긴 문제를 볼 수 있고 불안한 마음을 볼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이 내 마음 속에서 근본적 무지 탐심에서 생겼다고 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면 남의 마음 속 일 역시 알아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자비 지혜가 나란히 가야 한다. 마치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개 두개가 나란히 움직이듯이 자비 지혜는 같이 가야 불법의 세계로 이끌어 줄 수 있다.

자비와 지혜는 새의 양 날개일 뿐 아니라 서로 교통하는 통로가 있어 영향력을 마친다. 지혜가 생기고 자비를 베풀고 더 많은 지혜가 생길수록 자비를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 줄 수 있다.

마음 속이 평화롭고 수면처럼 가라앉을 때 다른 이의 고통도 보인다. 그러나 평소에는 마음 속에 복잡하고 들끓고 있어 주변인이 보이지 않는다. 내 마음을 고요하게 수행하면 남의 고통이 보인다.

부처님은 참선 명상을 하셨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명상을 어렵다 시간없다는 핑계를 내고 안하고 있다. 사실 명상을 평소 안 해도 일상생활에서 자비를 실천할 수는 있다. 자비심으로부터 우러나온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석굴에 혼자 들어가거나 독거 명상을 하는 것은 지혜와 이해를 깊이 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비를 일구고 싶다면 주변에 다른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 그들을 통해 마음을 열고 자비심을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양로원 고아원에 갈 때 자비심을 내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자비심 자체는 그보다 훨씬 깊고 심오한 것이다. 자비는 실제 자기 자신과 모든 사람 마음속에 갈등이 존재하고 조화로운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많은 이의 삶이 이것을 하겠다는 의지와 하고 싶다는 희망 사이에 매여 산다. 희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왔다 갔다한다. 미래에 이런 일 일어나길 바란다는 희망과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야 라는 두려움 속을 헤매게 된다. 미래에 건강을 잃을까, 사랑하는 이가 나를 떠날까 가지고 있는 돈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하면서 산다. 오늘은 괜찮지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결국은 모두 죽을 것이라는 것,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 마음속에 박혀 있다는 것만 알아도 자비심을 내기 쉽다.

한때 꿈을 꿨다. 그 꿈에서 엄청나게 크고 층이 여러 개인 감옥을 봤다. 최고층은 펜트하우스에서 좋은 사람들이 파티하고 즐기고 있었고 중간층에서는 괜찮은 사람들이 남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하층에서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울고 비참하고 마치 지옥의 영역같은 건물의 꿈을 꿨다.
그때 느낀 것은 펜트하우스나 지하층이나 한 가지 공통된 것이 이 모든 이들은 감옥에 산다는 것이었다. 펜트하우스에서 지옥으로 언제 강등될지 모른다. 미래를 알 수 없다. 어떤 삶을 살 수 있듯 우리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감옥이라고 외치고 나가자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맞아 우리 감옥에 있지만 괜찮아요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다시 한번 제 말을 이해 못하나 본데 여기가 감옥이니 여기서 나가세요 라고 말했더니 사람들이 잠시 생각하더니 그 일은 너무 어려워요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감옥 건물 안으로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타고 갈 수 있는 배도 매어져 있는데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마침내 2명의 사람이 당신을 따라가겠다고 나서서 셋이 배를 타러 갔다. 몰래 배를 타고 가는데 보초 같은 사람들이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다. 배를 타고 감옥 밖으로 나왔다. 뒤도 안보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 지쳐 달릴 수 없어 바보같은 짓이라 생각하고 도로 감옥 안에 들어가 쉬어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여기서 굴복한다면 날 믿고 따라오는 2명도 그만둬야하겠구나 2명을 생각해서라도 달려야겠다고생각했다. 그렇게 마음먹는 바로 그 순간 감옥이 사라졌다. 그리고 앞에 너무도 아름다운 장소가 펼쳐져서 2명과 같이 그곳을 걸어갔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얽매임, 나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남을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의 삶과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이다. ‘나’라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나의 성공 나의 행복 등 나를 먼저 놓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나는 비참해진다. ‘나’ 자리에 ‘남’을 놓는 순간 남의 성공 남의 괴로움을 생각하는 순간 난 불행하지 않네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가 달라이 라마에게 “금생에 와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제가 배운 것은 나보다 먼저 남을 내 앞에 놓는 것”이라고 달라이 라마가 대답했다. 이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내 마음의 감옥을 벗어나서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면 우리의 행복이 시작된다.

우리의 마음과 뜻, 말과 행동으로 삶에서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타인의 행복을 위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덜어주기 위해 매일 말과 행동을 생각하고 마음을 가질 때 불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한국 최고의 절에서 아무리 많이 공양을 많이 올려도 불자의 길이 아니다.


<질의 응답>
질문-수행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답-내 마음을 대하고 내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석굴에서 외부 자극없이 지내다 보니 마음에서 심심하는 생각이 들고 재미를 찾게 되는데 그것을 이겨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질문-중생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명상해야 하나?
답-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명상법으로 통넨 명상이 있다. 통넨 명상은 몸이나 마음이 아픈 이가 있으면 코로 숨을 들이쉬면서 가슴 아래까지 닿는데 그들의 고통(시커먼 연기 같은 빛)을 마신다고 생각하며 들이쉰다. 그 고통을 시커먼 연기로 상상하는 것이다. 그 연기(고통)가 우리 마음속에 들어가 마음 속 시커먼 점(자만심 탐심)을 만나면 시커먼 점이 작아진다. 자꾸 되풀이 하면 시커먼 점이 작아지고 부처님처럼 빛이 환하게 생긴다. 숨을 내쉴 때 그 빛이 아픈 이들에게 보내준다는 생각으로 명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강지연 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5-06-30 오후 8:08:00
 
한마디
그저 외국인이다 하면 ㅉㅉㅉㅉㅉㅉㅉㅉ
(2005-06-30 오후 11: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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