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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동안 김 前 회장의 화두는 ‘병불련 활성화’였다.
“병불련을 대표하는 인물로써 한계를 느낀 적이 많았지만, 힘 닿는만큼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활동했어요. 대단한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들을 보면서 제 자신을 채찍질한거지요.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만나는 회원들이 너무 소중한 인연이 되었네요.”
39년을 의료인불자로서 최선을 다했던 김 前 회장은 1966년 간호학교를 졸업한 뒤 공주결핵병원을 첫 근무지로 발령받은 이후 충남의료원을 거쳐 1979년부터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일해 왔다.
며느리, 아내, 엄마의 역할을 해야 했던 가정생활과 의료인의 사명을 다해야 했던 직장생활에 매여 있다보니 종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그러면서도 “퇴근후 가정일에 매달리다보니 절에 자주 갈 수가 없으니 직장에서라도 기도시간을 갖고 정진하자”던 1992년 국립서울정신병원 불자회를 창립할 당시의 초발심을 가슴에 담고 있다.
“어렸을때 햅곡식을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는 어머니의 정성이 저를 불교로 인도한거나 다름 없어요. 간호학교 시절 개신교를 믿던 친구가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자고 찾아왔을 때 흔들리지 않은 것도 그 기억 때문이지요. 지금은 부처님 법 만난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기쁠 뿐이에요.”
공적(空寂)이란 법명을 갖고 있는 김 前 회장은 친가의 어머니가 다녔던 아차산 서울 영화사를 원찰로 삼고 있다. 시간이 많아지면 오랜 직장생활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마음공부를 하고 싶은 것이 김주효 前 회장의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