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어디서 오느냐? 도덕성”
대중 바른길 이끌어야 선지식
*약력
·1933년 전북 정주 生
·1958년 서울대 농대 졸
·1963년 내소사에서 해안 스님을 은사로 득도
·1973년 범어사에서 구족계 수계
·1974년 해인총림 선원장
·1975년 조계종 총무원 교무국장, 종정 수석 사서
·1976년 조계사 주지
·1983~93년 내소사 주지
·내소사에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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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분야에 걸쳐서 참된 스승이 없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극에 달한 이 시대의 정신적 빈곤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우선 세간 출세간을 막론하고,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해 여쭙는 것으로 대담을 시작할까 합니다.
▲도덕성입니다. 도덕성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오만가지 재주를 부린다 해도 신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신뢰가 가야 애정도 나오고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신뢰는 어디서 오느냐. 도덕성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물론 지도자가 되려면 해당 분야의 전문적 식견이 뛰어나야겠지요. 학자라면 연구 업적이나 능력이 탁월해야 하듯이. 하지만 그 모든 것의 바탕은 도덕성이어야 합니다.
─지도자와 스승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말입니다. 지도자가 스승상까지 갖추었다면 더 바람직한 일이겠지만요. 그리고 세간의 스승과 출세간의 선지식도 다소간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후학을 바른길로 이끌어 주는 모범이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불가에서 선지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텐데요, 선지식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선지식인지 한 말씀 일러 주십시오.
▲눈먼 이가 대중을 이끌 수는 없습니다. 대중을 바른 길로 이끄는 이가 선지식인 것이지요. 그럼 누구를 일러 선지식이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따를 것입니다. 선지식이라 하면, 의심이 다 가신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심이 남아있다는 얘기는 확철대오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남을 이끈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요. 이만큼 얘기를 듣고 보면 또 의문이 따를 것입니다. ‘어떤 경지가 의심이 다 가신 경지인가’ 하고 말입니다. 어떤 문제에 봉착하든 추호도 머뭇거림이 없는 경지가 바로 의심이 가신 경집니다. 절집 말로 표현하면, ‘바로 이를 수 있는 사람’인 것이지요.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부처님이 깨달은 경지를 똑같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미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것이, 선지식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추천을 받는 것이지요. 일단, 세상에서 말하기를 누가 선지식이라더라 하는 공인된 선지식을 찾아 부딪쳐 보라는 얘깁니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 판단은 더욱 못하는 것 아닙니까. 일단은 많은 사람들이 그 아래서 공부를 하는 분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이 아니겠어요.
─출·재가를 막론하고, 선지식 만나기 힘들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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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평생 스승에 의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혼자서 공부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단계가 있지요.
흔히 ‘초견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단계는 아직 확철대오의 단계는 아닙니다. 이제 겨우 맛을 본 것이지요. 그래도 그 의미는 대단합니다. 다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한 것이니까요. 마구니가 와서 꼬셔대도, ‘나는 이 길을 갈 거야’ 하는 확고부동한 자세를 갖춘 것이니까요. 그런 단계에서는 혼자 공부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토굴 공부라는 것도 그런 단계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들 보면 너도나도 토굴 공부한다고 그래요. 그래서 가끔 토굴 공부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물어 보지요. ‘왜 토굴 공부를 하십니까?’ 하고요. 그러면 대부분은 대중 처소에서는 시끄러워서 공부가 안 된다고 그래요. 참으로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어요. 바탕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토굴 공부는, 잠 맘대로 자고 망상 키우는 지름길이예요. 익기 전까지는 반드시 선지식이 있는 곳으로 가서 대중과 함께 공부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요즘 학인들은 선지식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도 드는데요.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사무치게 공부하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많아요. 오히려 문제는 그런 사무침을 수행으로 이끌어 주는 선지식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선지식이 귀하다’는 말에 대해서 듣기 좋은 말로 그래요. ‘아니야, 아직도 산중에 숨어 계시는 분이 많아’ 하고 말이지요. 솔직히 말 좀 해 봅시다. 지금 대한민국 산이 다 뒤집어져서 훤한데, 어디 숨어있을 데가 있습니까. 차라리 골방에 숨어있다 하면 말이 돼요.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누구 책임 같은 것은 아니겠고…. 소위 그것이 역사의 흐름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이미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말법시대에는 모양만 남아있어서 공부하는 사람이 어렵다 했는데, 현실적으로 그것이 왔어요. 지금 전국의 사찰을 보세요. 불과 20~30년 사이에 외형적으로는 괄목할 만큼 발전을 했습니다.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예를 들어 조계종 소속 사찰이 천개 가까이 되고 승려가 만명 쯤 된다고 하는데, 한 절에 10명에 불과해요. 거기다가 해인사 같이 큰 절은 300명 가까이 되지 않습니까. 그만큼은 아니라 해도 통도사, 불국사, 범어사 같은 절을 고려하면 참으로 내실은 허약한 상태입니다. 결제철마다 방부에 이름을 올리는 수좌들은 또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천 명 남짓이예요. 그 중에서 정말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불퇴전의 각오로 공부하는 수좌는 또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그 중 상당수는 해제 때 여비 넉넉히 받아서 편안히 지내는 식이예요. 이런 식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선방 문고리 잡은 경력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게 사실입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까 선지식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해지는데요, 달마 이후 육조 혜능으로 이어지는 선불교의 전통을 보면,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라는 것이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거기에 묘미가 있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수많은 대중 앞에서 연꽃을 들어 보였는데, 가섭만이 빙그레 웃었죠. 순간적으로 통하는 겁니다. 결코 말로 할 수도, 말로 일러 줄 수 없는 경지가 둘 사이에 열린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계합입니다. 상응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또 재미난 것은, 제자가 스승에게 깨달은 경지를 일러 달라고 할 때, 스승의 반응입니다. 참으로 엉뚱하지요. 예를 들어, 경봉 스님께서 잘 그러셨는데, 누군가 깨달음의 경지를 물으면 경상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셨지요. ‘내 말하면 니 아나. 텍도 없다.’
선지식의 어법은 이런 겁니다.
화두를 예로 들어 볼까요?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답합니다. ‘뜰 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
참으로 엉뚱한 대답이예요. 그러나 그분은 절대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요. 바로 일러주었단 말이지요. 그걸 물은 학인이 그걸 알았다면 ‘예!’ 할 뿐이예요. 만약 모른다면 그때부터 의심덩어리 하나 마주하는 것이지요. 어째서 ‘뜰 앞의 잣나무인가’ 하는 그것이 바로 화둡니다.
─아주 멋들어진 선가(禪家) 고유의 전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경지에 미치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분히 신비적이고 알듯말듯한 세계인데 ‘인가(印可)’라는 것은 또 무엇입니까.
▲시험을 보는 것이지요. 시험이라니까 조금 우습지만 시험을 봅니다. ‘한 마디 일러 봐라’ 했을 때, 어쩌다가 엇비슷하게 맞추는 수도 있고, 실제로는 당체를 알지 못하면서 한번 해 본 말이 그럴 듯할 수도 있고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해 봅니다. 그래서 아하, 이놈 제대로 알았구나 하면 그게 인가인 것입니다.
─지금 말씀 또한 선지식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선지식 혹은 큰스님이라는 말이 너무 절대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큰스님 한번 만나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하고 그나마 쉽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요즘같은 세상일수록 큰스님을 더 자주 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만약 인의 장막 때문이라면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건강 문제 같은 것 때문에 많은 사람을 상대하기 힘든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면 방법이 있어요. 수시로 넓은 데 모여라 하고서는 법문을 하면 되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선지식이 귀한 것도 큰 문젭니다. 젊은 시절에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대중 처소에서 공부할 땐데, 하루는 조실 스님을 뵙고 아침마다 문안을 올리면서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하고 여쭈었지요. 그러자 그 스님께서는 대뜸 귀찮다는 것이었어요.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참으로 아쉬워요. 그래도 저는 운이 좋은 편이지요. 은사이신 해안 스님께서는 참으로 자상하게 그리고 사무치도록 간절히 제자들을 이끌어 주셨어요. 선지도 밝으셨고 학덕도 도도하셨죠. 그뿐이 아니라 언설과 인품, 용심에 있어서도 그만한 분 만나기가 쉽지 않았어요.
─지금 내소사 한켠에서는 선방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 결제를 시작할 것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 규모로 꾸려 나갈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내년 여름 결제부터 시작할 겁니다. 선원 이름은 ‘봉래(蓬萊)선원’이고요. 내소사를 감싸안은 산을 능가산 또는 변산이라고들 부르는데, 그중 봉래산이라는 이름에서 따온 것이지요. 결제 대중의 규모에 대해서는 잘라서 뭐라고 말하기가 힘드네요. 다만 원칙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선원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사중 형편을 따를 것이고요. 해제 때 여비 듬뿍 주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을 겁니다. 한 명이 됐건 두 명이 됐건 진실로 간절히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모인 그런 선원을 만들어 갈 겁니다.
─선방이 열린 이후 스님의 역할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여쭙는 것으로 대담을 마칠까 합니다.
▲더러 신문 같은 데서 저를 일러 조실이라고 한 걸 봤는데, 그건 맞아죽을 소리고…. 그저 대중과 함께 생활하며 선방에서 한 생 마감하고 싶은데, 건강이 따라 줄까가 걱정이네요. 내년이 돼야 일흔인데 주위에서는 벌써 노장 취급하려 들고….
대담=윤제학 부장(yunjh@buddhapia.com)
사진=고영배 기자(ybgo@buddha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