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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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철저히 봐야 성불합니다"
지상법석-혜산 스님(내소사 회주)

1월29일 내소사는 온통 눈천지였다. 내소사가 위치한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가 서해 절경을 불러 모은 곳이라고는 하지만 어디 내소사의 겨울 운치만 하랴. 깎아지른 듯한 벼랑을 품은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그 아래 아담한 대웅전과 전각들이 넓지도 좁지도 않은 간격을 유지하면서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니 편안하고 아늑하다. 눈에 푹 파묻힌 내소사를 보고 있자니 며칠 묵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인다.

혜산 스님.
내소사 회주 혜산 스님은 내소사의 산 역사로 통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1963년 이곳에서 출가해 40년 세월 대부분을 여기서 살았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스님께서 수행하셨던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후학들에게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말씀도 해 주시고요.”
“둘 다 나한테는 해당 안 되는 얘기네. 한 것도 없는 늙은이가 후학들에게 말을 할 처지가 되나.”

괜히 그러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20안거는 넘게 해오시면서 평생을 수행에만 매달려온 스님이 아니던가.

“견성을 했어야 할 말이 있고 그 말이 가치가 있는데, 견성하지 못한 바에는 저나 나나 같은 처지인데 무슨 할 말이 있어.”

그러시더니 마지못해 한 말씀 하신다. “그래도 내가 한 마디는 할 수 있지. 참선 공부 하려면 반드시 선지식을 찾아야 해.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고, 그 병은 죽어도 못 고쳐요. 이따금씩 납자들이 선지식이 누구냐고 묻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답할 수가 있겠어요. 부득이 말하자면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 이라고 할 수 있겠지.”

깨달은 자가 깨달은 자를 안다고 했다. 한창 공부하는 납자들이 깨달은 자를 알아볼 수는 없는 일. 그러니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해야 할지 난감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게 참 어려운 문제예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런 사람들이 법문을 잘 못하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죽이는 일이지. 자기 체험에서 우러나는 지혜가 아니라 문자로 가르치는 것은 절대로 안됩니다. 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아는 것과 체득해서 아는 것이 있는데 상식적으로 아는 것은 단지 지식에 불과할 뿐이지. 체득해서 아는 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지식이고 이것을 ‘선지’라고 해요. 더구나 체득을 해서 안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알지 못하면 말하기 힘들지. 잘못 말하면 큰 일 나는 것인데 누가 함부로 입을 열겠어요. 그래서 스승을 만나기 어렵다는 겁니다. 이게 선의 가장 큰 문제점이지. 숙제 중 숙제야.”

“스님 말씀대로라면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배워야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마르다고 아무 물이나 마실 수 없듯이 여기저기서 묻더라도 참스승을 만나야만 해.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 모르면서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고,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수행자들이 찾는 그런 사람이야. 묻고 또 물어서라도 찾아가야지.”

혜산 스님이 유달리 스승을 강조하는 이유는 스님 스스로가 바로 그런 경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혜산 스님으로부터 들은 스승(해안 스님)의 가르침은 이랬다.

“스승께서는 수행에 철저하셨지. 그렇다고 무조건 수행만 하라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농사 짓고 나무하면서 수행을 하게 하셨지. 그래서 공부시간이 더 아깝게 느껴졌어요.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경전을 가르치시는 것도 빼놓지 않으셨고요. 나와 내 도반들은 자연히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지팡이나 젓가락 소리만 들어도 스님의 심경을 읽을 정도가 됐지. 왜 그렇게 됐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시게. 답은 간단해, 스승이 바로 그렇게 우리를 관찰하고 계셨기 때문이지. 24시간 수행에 매달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도록 하셨던 게야. 화두로 일어나고 먹고 자고 하도록 만들었지. 멋모르고 달려들었던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고, 작심하고 달려들었던 사람은 그 마음을 더 굳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어요.”

혜산 스님의 은사인 해안 스님.
혜산 스님의 스승에 대한 애정은 샘이 날 정도로 각별하다. 후학을 지도하는데 스승만큼 열의와 애정을 가진 스님도 드물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 법은을 잠시도 잊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간에 처음 시작이 중요해요.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기 어렵지. 스승께서는 늘 기초를 강조하셨지. 그래서 무엇이든 물으면 아주 자상하게 가르쳐 주셨어요. 하지만 참선이나 경전 공부나 어느 하나에만 빠지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해요.”

혜산 스님은 평생 참선 수행을 해오셨으면서도 경전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참선이나 공부나 어차피 생사문제와 깨달음을 보는 것인데, 선후가 있을 수 없고, 이해득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참선을 할 때는 경전을 놓고 오직 참선에만 매달리라고 하신다. “화두를 참구할 때는 교리를 접는 것이 좋습니다. 아는 게 병이에요. 화두는 의심 하나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알면 화두에 꿰맞추려고 하게 됩니다. 그리고 명심하세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혜산 스님은 세월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었느냐가 중요할 뿐, 수행자가 그 외에 달리 또 무엇을 얻으려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늘 초발심을 강조하신다. 깨닫지 못했다면 지금 서 있는 자리, 그 자리가 언제나 깨달음의 자리가 돼야 한다는 말씀이다.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수행을 하거나 포교를 하거나 행정을 하거나 깨달아야 하는 것은 부처님 제자라면 당연한 도리지. 선방에 앉아있다고 깨달을 수 있는 것도, 포교를 한다고 깨닫지 못하는 것도 아니야. 철저히 자신을 봐야지.”
그러시면서 한 말씀 덧붙이신다. “어디 답해 보시게나, 성불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는지.”



혜산 스님의 건강법


혜산 스님은 10여 년 전 내소사 주지 소임을 맡아 내소사를 수행도량으로 가꾸면서 과로를 했고, 그 결과 뇌경색으로 쓰러져 1년여 동안 투병생활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건강하다. 스님의 속세 나이는 72세지만 누가 보더라도 일흔을 넘겼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고 활력이 넘쳐 보인다.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데는 혜산 스님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다. 물론 일반적인 건강유지법과 다를 것은 없지만, 그 방법을 행하는 마음가짐은 역시 수행자답다.
혜산 스님은 조금 먹고, 운동 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건강 4계명을 세워놓고 매일 실천하고 있다.

먼저 먹는 양은 보통 스님들의 절반 가량으로, 소식을 한다. 그 다음엔 지속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면 누운 자세에서 요가를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변형시킨 운동법으로 몸을 푼다. 그 다음엔 자리에서 일어나 국민체조와 같은 간단한 운동을 한 다음 자전거나 역기 등 각종 운동 기구를 이용해 땀을 흘린다. 이렇게 운동하는 시간만도 1시간 40여분.

혜산 스님은 “운동에 조예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을 뿐”이라고 하신다. 혜산 스님이 말하는 법칙이란 운동할 때는 모든 잡념을 버리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 상태에서 하지 않으면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강조하신다.
잠은 6~8시간 정도로 충분히 잔다. 혜산 스님은 “자는 시간은 수행자에게는 분명 아깝지만 그만큼 수행이나 일에 집중하면 건강을 지키고 일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도 운동이나 수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 혜산 스님의 지론이다. 머리 속에서 잡념이 끊이지 않으면 그게 곧 스트레스가 되면서 건강을 해치게 되기 때문에 운동 열심히 하고 잠을 충분히 자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은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욕심을 줄여야 해요. 욕심이 많다고 해서, 얻는 것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글=한명우·사진=박재완 기자 |
2004-02-11 오후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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