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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두 거산이 올해로 열반 20ㆍ15년 주기를 맞는다. 순한글 화두인 ‘새말귀’ 운동을 벌이면서 거사풍(居士風)을 세웠던 백봉 김기추(金基秋 : 1908~1985) 거사, 무문관 48칙을 통한 ‘입실점검’ 전통을 확립했던 종달 이희익(李喜益 : 1905~1990) 거사. 이들은 한국거사불교에 ‘생활선(生活禪)’ 수행풍토를 조성한 장본인들이었다.
그럼 이들 거사의 선풍은 현대를 사는 재가불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 줄까. 또 생활불교의 바람직한 방향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6월 7일, 백봉의 제자 성태용 건국대 교수와 종달의 제자면서 선도회 지도법사인 박영재 서강대 교수에게 대신 들었다.
성태용 : 올해로 백봉 선생님은 열반한 지 20년이, 종달 선생님이 15년이 됐어요. 사실 지금의 재가불자운동 원동력은 바로 이 분들의 선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우선 백봉 선생님은 ‘거사풍(居士風)’이란 말을 쓰면서, 당신 스스로 거사풍을 성립하겠다는 의지를 가지셨죠. 선생님은 ‘스님들은 24시간 수행으로 다져진 분들이지만,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재가자 나름대로의 수행방편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죠. 그런 점에서 선생님은 선구적인 안목을 가지셨고, 재가불자의 위상에서 재가자 나름대로의 방편을 갖고 수행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종달 선생님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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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재 : 종달 선생님은 사실 처음에 ‘재가자들이 참선수행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 하고 회의를 가지셨다고 해요. 왜냐면 선생님은 20년간 스님으로 생활해왔기에 출가자의 입장에서만 선수행을 생각하셨던 거죠. 지난 1965년, 선생님이 조계사에서 일반인들에게 참선지도를 할 때만 해도 그랬어요. ‘일반인이 흉내나 내겠지’ 하고 말이죠. 그런데 선도회 1호 제자였던 철심 이창훈 거사의 치열한 수행에 생각을 바꾸셨죠. 6개월을 새벽같이 선생님 집으로 찾아와 입실점검을 받는 이 거사의 모습을 보고,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지요. 그래서 ‘일반인도 참선공부가 가능하구나’ 하고 느꼈고, 이 때부터 선도회를 본격적으로 조직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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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용 : 사실 선생님도 불교에 대해 거의 무지상태에서 출발했죠. 늦깎이 55세 때 갑자기 화두를 들고 혼자서 수행을 시작했어요. 당시 선생님은 ‘혜가 스님이 한 쪽 팔을 자른 까닭이 이해 되더라’고 할 정도로 화두에 몰입했어요. ‘이것만 하면 세상에 바랄 것이 없다’고 하면서 ‘팔 한 쪽을 자르라고 하면 자르겠다’고 했었죠. 선가의 말로 ‘대사일번(大死一番)’, 즉 ‘크게 한 번 죽겠다’는 각오를 한 거죠. 오히려 불교에 늦게 들어온 터라 당신 스스로가 재가불자로서 하면 된다는 모델을 보이려고 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그 뒤로 끊임없이 ‘재가불자로서 어떻게 수행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했던 자취가 지금도 남아 있어요. 그런 점에서 두 분은 참 대조적인 것 같아요. 종달 선생님은 스님으로 출발해 ‘재가불자가 참선수행을 할 수 있겠느냐’에서 시작해 이후 확신을 갖고 거사선풍을 이끌었고, 백봉 선생님은 재가자로서 확실히 출발해 끝까지 재가자 선풍을 드날린 것이 비교가 되는군요. 참, 종달 선생님은 무문관 입실지도를 강조하셨는데요, 그것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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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재 : 종달 선생님이 한국 선불교에 끼친 중요한 영향 중 하나가 바로 한국현대불교에 무문관(無門關)을 다시 출현시킨 점에요. 사실 선생님이 1969년 <법시>에 무문관 20여 공안을 연재한 것을 모아 1974년 책으로 출판하기 전까지 무문관은 거의 모르다시피 할 정도였죠.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생각했죠. ‘왜 그 전에 한국에는 무문관이 별로 눈이 띄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어요. 여하튼 제가 보는 견해로 무문관은 선종 최고의 공안집이에요. 왜냐면, 거기에는 무문 혜개 선사가 6년간 조주 무자(無字)만을 씨름해서 얻고 체득한 것을 바탕으로, 수행자에게 아주 요긴한 점들을 담아놓았기 때문이죠. 무자 공안에 들 때에는 마음자세에서부터 화두를 깨친 이후의 경계까지 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어요. 사실 그것만 온몸에 각인시키면, 공부는 저절로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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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용 : 박 교수님의 말씀대로 생각하면, 종달 선생님은 선가의 수행을 제자들에게 그대로 적용시킨 셈인데요. 혹시 거기에서 재가자로서 한계 또는 문제점들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까?
박영재 : 좋은 지적이에요. 저는 그런 어려움을 몰랐어요. 그러다 <서장>을 읽으면서 제 무릎을 쳤죠. ‘아! 종고 선사가 간화선 수행체계를 확립했는데, 서장을 보니 스님은 두 분만 출연하고, 모두 다 사대부 재가자들이 서신 교류한 것이구나. 서신으로 입실 지도한 기록을 모아둔 것이 서장임을 확인하고, 간화선이 오늘날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것을 확실히 느꼈죠. ‘선이 일반인에게는 어렵다는 말은 틀렸다. 아니다’라는 것을 확인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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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용 : 선생님은 오히려 간화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 수행해 견성을 했어요. 선생님은 늘 지금의 참선풍토가 삶을 살아가면서 화두를 들 수 없게 한다고 말씀했죠. 우리 불자들은 내공력이 고갈되면 수행해 내공을 쌓고, 내공력이 없어지면 다시 수행으로 들어가고, 말하자면 ‘쌓고 까먹고 쌓고 까먹는’ 하는 그런 잘못된 수행풍토 속에서 살고 있다며 선생님은 선에 대한 이런 생각은 잘못됐다고 강조했지요.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 삶 자체가 수행이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단편적으로 화두를 드는 방식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죠. 삶이 바로 수행인 방법을 개발해야한다고 말했어요. 그렇지 않고는 생활 속에서 화두를 들 수 없다고 했죠. 그렇게 되면,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수행에서 제외가 되니 이것을 수행으로 집어넣어야 한다고 해서 제시한 것이 ‘새말귀’에요. 우리 일상적인 삶이 수행의 장에서 밀려나지 말고, 바로 수행이 생활의 연장이라는 생각에서 새말귀를 주창했던 거죠. 일상적인 삶 가운데에서 하나의 말귀로 통해 자신의 삶을 다잡아가고, 수행으로 할 수 있는 지표로 제시한 것이 ‘모습을 잘 굴리자’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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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재 : 그 가르침은 선도회 가르침과 똑 같군요. 원오극근 선사의 선어록에 보면, ‘좌일주칠(坐一走七)’란 선어가 있어요. ‘깨어있는 시간을 8등분해서 1/8은 아랫배에 힘을 쌓고, 그 힘을 갖고 자기 전문직에 7/8에 100% 뛰어들라’는 말이지요. 이 이야기는 7/8을 전문직에 뛰어드는 것도 수행이라는 말이에요. 제 전공이 이론물리인데, 한참 연구에 몰두하다보면 계산이 어디가 틀린지도 모르고 요점을 놓치고 지나갈 때가 있어요. 그러면 연구실 옆에 좌복에 앉아 ‘어디가 문제인가’를 총체적으로 점검해요. 그러다보면 무릎을 탁 칠 때가 와요. ‘아! 내가 여기를 놓쳤구나’ 하고 말이죠. 스스로 문제점을 알게 되는 것이에요. 그 물리문제가 제게는 화두가 된 것이죠.
화두는 일반인들이 처음에 붙들기 어려워요. 그래서 초심자는 늘 수식관을 해야 해요. 수(數)를 세면서 호흡하는 데에서 집중력을 충분히 기른 사람들에게 화두를 줘야 해요. 아침이든 저녁이든 좋은 시간을 택해서 향 한 대 타는 시간만 집중하고, 그 힘을 가지고 나머지 깨어있는 시간에 법신을 잘 굴리라는 거죠.
성태용 : ‘법신을 잘 굴리자’란 말인데, 이는 선생님의 ‘모습을 잘 굴리자’는 말과 같아요. 선생님은 처음에 ‘내가 한다’고 생각하라. 언제나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내가 하는구나’ ‘내가 무엇을 하는구나’를 점검하는 것도 수행이 된다고 했죠. 나중에는 ‘모습을 잘 굴려라’ 한다는 것 속에 벌써 상(相)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고, 그럴 때 ‘모습을 잘 굴려라’ 하는 것이 이미 세속적인 일을 충실히 잘하는 방편으로써, 또 새로운 말귀가 화두로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선언을 한 것이죠. 삶의 현장을 수행의 장으로 바꿔 간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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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재 : 그런 점에서 선생님은 화두점검하는 과정을 바로 입실점검이라 했어요. 입실점검은 1주일 2주일 단위로 제자들과 1대1로 정기적인 점검을 하는 것인데요, 그 과정에는 2가지 효과가 있어요. 첫 번째는 화두가 얼마나 진척됐는지, 또 하나는 입실점검을 받는 과정을 통해 수행하는 제자들이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게 한다는 점이죠. 입실점검을 받으러 들어갈 때는 초긴장 상태로 들어가요. 그때가 가장 순일무잡한 경계 속에서 화두를 점검받게 돼요. 그래야만 수행자가 정말로 치열하게 자기 1주일을 돌이켜보고 점검받는 과정에서 공부가 무르익게 되거든요.
성태용 : 요즘, 간화선과 위빠사나 수행간 논쟁이 많아요. 위빠사나 쪽에서 간화선을 공격하는 포인트 중에 하나가 ‘간화선에는 점검이 없다’ 에요. 사실 간화선은 입실점검이란 요소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화두만 툭 던져주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서 수행을 지도해주는 것이지요. 간화선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죠. 선생님은 매일 설법을 세 번씩 꼭 했어요. 불꽃이 튀는 선어가 쏟아지는 그런 설법이었죠. 설법을 가만히 좋다고 듣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초긴장 상태에서 설법을 듣지 않으면 방망이로 맞고 쫓겨나곤 했죠. 그런 설법을 통해 화두를 들어도 의단이 계속 놓치질 않고, 성성하게 제자들을 몰아 의단 속에 몰입할 수 있도록 강한 수행체계를 확립했죠. 그런 면에서 요즘 간화선 수행이 대중화되는 흐름에도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박영재 : 백봉 선생님의 이런 불꽃 튀는 설법은 일종의 점검 시스템 성격을 갖는군요. 결국 간화선 수행의 대중화 또는 활성화는 ‘점검 시스템의 복원’과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사실 산중에서 젊은 시절을 적극적인 수행자로 보낸 큰 스님들을 보면, 조실 스님의 방을 수시로 쳐들어가서 화두를 점검받았죠. 우리나라에서도 스님들 사이에 점검이 있었는데, 요즘에 들어 그것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죠.
성태용 : 선생님은 삼귀의 같은 기본적인 것은 순전히 한글로 했어요. 한글로 외다보니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에 박혀 있어요. 모두 한글화돼야 한다고 선생님은 주장했고, 방편도 우리 재가자에게 맞는 방편이 나와야 한다고 했죠.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방편을 연구해 내고 학인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방편법을 개발했어요. 또 자기 방편을 가지라고 강조했죠.
박영재 : 무문관에서도 ‘대도무문천차유로(大道無門千差有路)’라 했어요. 대도에는 따로 문이 없으니 천 갈래 만 갈래 길로 모두 다다를 수 있다는 뜻이지요.
성태용 : 맞아요. 선생님도 ‘천 갈래 길이지만 고개를 넘는 길은 한 길이다’라고 했죠. 천 갈래 길이지만, 고개를 넘는 길은 외길이다 했어요.
박영재 : 그 고개가 무문관이에요. ‘투득차관건곤독보(透得此觀乾坤獨步)’라 했습니다. 이 무문관의 문을 투과하면, 온 우주 속에 홀로 걸으리라는 뜻이지요.
성태용 : 선생님은 그것을 사납게 표현했죠. ‘고봉독존답살만인(孤峰獨存 踏殺萬人)’이라 했어요. 오뚝 솟은 봉우리에 홀로 앉아 천하 사람을 밟아 죽이라는 의미죠.
박영재 : 선생님의 수행일화 중, 입실지도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어요. 선생님은 하루에 규칙적으로 세 번을 산책을 했어요. 본인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서 제자들을 가눙한 한 명이라도 더 건지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제가 시계만 봐도 선생님이 어느 코스에 계시는지 알 정도였죠. 그래서 입실점검을 받으려고, 제가 그 앞에 가있으면 선생님을 정확하게 만날 수 있었어요. 그럼 선생님 앞에 서서 합장을 하고 점검을 받고 다시 돌아가곤 했죠. 선생님이 이렇게 한 이유는 입실이 생명이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선생님은 철저히 입실점검에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
성태용 : 선생님은 거의 생활 속에서 수행지도를 했죠. 선생님이 유성에서 농가를 얻어서, 밭을 가꾸고 마당의 화단을 일구면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자네들, 마음도 정리가 돼야 공부가 된다. 늘 주변을 이렇게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낮에는 함께 밭일 하고 밤에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했죠. 그리고 제자들이 의문이 생기면, 바로 쫓아 들어가 선생님께 물었어요.
성태용 : 요즘 선수행이나 명상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어요. 그런데 선수행의 요구는 많음에도 불교계는 이를 충족시키지 못해요. 박 교수님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선수행에 대한 요구를 부응시킬 만한 새로운 지도법 또는 방편법이 필요하다고 보는지요?
박영재 : 방편과 지도법에 선행되는 것이 있어요. 만공 선사가 주장한 ‘도사(導師), 도량(道場), 도반(道伴)’ 이에요. 이 중, 현대인들에게 도량이 제일 중요해요. 먼저 도량은 접근이 용이해야 돼요. 산중의 선원은 특별히 시간을 내지 않으면 찾기 힘들어요. 선도회는 각 지부모임을 이끄는 법사가 ‘있는 그곳’에서 수행을 해요. 서강대 모임은 서강대 성당 기도실 온돌방을 빌려 매주 화요일 참선모임을 하고 있죠. 이제는 선방이란 개념을 달리 해야 돼요. 기존의 있는 공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이 필요해요. 사실 안타까운 것은 재가에 있으면서 자기 전문직에는 소홀히 하고, 산중으로 선원으로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가장 제일 안쓰러워 보여요.
성태용 : 선생님은 ‘화두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말했어요. ‘사회문물의 발달에 따라 생활면의 각 분야는 분주하다. 이 분주한 생활선상에서 얽고 읽힌 인생인지라 화두를 순일하게 가질 수 없는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결국 내가 져야 한다. 때문에 과감하게 화두를 대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모습을 잘 굴리자는 새말귀’라고 했어요. 새말귀를 이렇게 수행하면, 나와 남, 사회를 완성시키는 방편이 된다고 강조했죠.
박영재 : 화두에 대한 어려움은 일반인들, 특히 초심자들이 많이 느껴요.
성태용 : 제가 우스운 말로 재가자들이 화두를 들다보면, 자존심만 심하게 상하고 결국은 의지가 꺾여 ‘나는 안 된다’는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해요. 지극히 잘못됐어요.
박영재 : 맞아요. 그것은 지도의 문제에요.
성태용 : 지도의 문제죠. 왜냐면 의심도 안 생기는데 화두를 들라고 하면, 나중에는 의심은 안 생기고 머리만 아파 상기병에 걸리기 십상이죠. 이것이 참 큰 병에요.
박영재 : 입실점검이 상설화돼야 돼요. 스승에게 입실점검을 받으려 가는 순간은 초긴장 상태에요. 그 초긴장 상태가 계속 유지되다보면, 화두가 안 들리려야 안 들릴 수가 없게 돼요. 선생님은 ‘보보청풍기(步步淸風起)’란 선어를 즐겨 썼죠. ‘걸음걸음마다 가는 곳에서 청풍이 일어야지만 그것이 선풍으로 휘날리는 거지, 가는 곳마다 죽을 쓰면 누가 그 사람을 보고 선수행을 하겠느냐’고 늘 강조했죠.
성태용 : 보림회는 선생님 열반 20주기를 맞아 제자들이 수행담과 수행체험수기를 모으고 있어요. 나중에 선수행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자극제와 격려가 될 것으로 기대돼요. 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숨통과 지혜를 틔워주는 그런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해요.
박영재 : 선도회는 올해로 선생님 열반 15주기이에요. 일반인들에게 널리 선도회를 알리기 위한 사업으로 사단법인화를 추진할 계획이에요. 또 종달 선생님의 어록집을 10권으로 묶어 선수행에 요긴한 내용을 담아 편찬할 예정이죠.
성태용 : 오늘 백봉 선생님과 전혀 다른 족적을 남긴 종달 선생님의 제자인 박 교수님을 만나서 서로 다른 면서도 뭔가 접근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느꼈어요. 무엇보다도 재가자로서 출가자보다 몇 배 단단한 각오로 수행에 달려든 백봉 선생님과 종달 선생님의 정신이 정말 재가자의 선수행에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됐어요.
박영재 : 앞으로 두 단체가 자주 만나 선수행에 대한 귀중한 법담을 나눴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