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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좌선 할 때에는 아무리 해도 집중이 안 됐다. 아침식사도 거른 채 1시간 동안 잠만 잤다. 점심 식사 후 오후 수행은 불만족 그 자체였다. 집에 있는 건지 수행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온갖 생각을 했다. 밤에 자지 않고 철야수행을 했다. 평이한 방법으로 수행해서는 나의 틀을 깨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섯 째날, 철야하면서 새벽 3시경 경행하는데 발이 아주 가벼워졌다. 마음이 미세해지면서 새벽 5시경에는 더욱 발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옛날의 일, 몇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사라지곤 하는 것을 봤다. 점심을 거르고 스님의 지시대로 1시간 30분 동안 눈을 붙였다.
저녁에 스님은 법문을 끝낸 후, 수행자들에게 3시간 연속 좌선을 하라고 하면서 지키고 계셨다. ‘큰 일 났다’ 생각하고 ‘어쨌든 현재만 보면서 좌선하면 된다’고 믿고 배의 팽창과 수축에 알아차림을 온힘을 두었다.
2시간이 되니 다리의 통증이 심각했다. 그러나 통증은 통증 자체로만 보게 되니 그렇게 괴롭지 않았다. 아니 괴롭기는 하지만 괴로움을 괴로움 그 자체로 보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통증이 있어도 나와 관계없이 저만치 떨어져 있다가 3시간 될 무렵에는 통증 자체가 거의 사라졌다. 통증을 정복한 쾌감은 대단했다.
수행이 끝나는 마지막 날은 집에 간다는 생각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됐다. 그래도 좌선과 경행을 하면서 끝까지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을 두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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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나로서는 치열했던 2001년의 수행일기를 들쳐보면서, 혹시나 다른 수행자들에게 위빠사나 수행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데에 도움이 될까 해 적어 보았다. 그 후로도 나는 매년 1주일씩의 집중 수행에 참가하는 것을 빼놓지 않고 있다.
수행의 결과는 나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이제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만들었다. 다만 나의 마음속에 선한 생각이 많이 자리 잡기를 바라게 될 뿐이다. 불선업의 생각이 없어지고 선업만을 쌓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살게 했다. 무엇보다도 항상 수행을 벗으로 삼고 불만족도 나의 친구로 삼고 지낼 수 있게 만들었다. 위빠사나 수행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켰다 생각하니 그 환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 크다. 또 앞으로 더 클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