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입문한 지 30년. 난 사실 나와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만 절과 집에서 기도를 참 많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나의 생각은 108° 뒤집혔다. 갑자기 우리 가정에 변고가 생기면서부터였다. 사업의 부도였다. 막막했다. 우리 집은 물론 주변 여러 사람에게도 피해를 입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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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목이 메여오도록 울면서 부도탑을 하염없이 돌았다. 그렇게 기도하고 절에서 내려 올 때, 한 스님께서 이런 말을 해주셨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에게 주는 법입니다. 정진행 보살님 부처님과 인연이 깊어서 그러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집에 돌아오니 모든 것이 언제 그랬냐며 정리가 다 돼있었다. 순간, ‘부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끝없이 감사했다. 또 그간 나 자신을 과시하며 살아 온 내 모습에 한 없이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가족의 안위만을 위해 기도를 한 것도 부끄러웠다.
이후 난 모든 것을 부처님께 의지하고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냈다. 절에 자주 가질 못해도 집에서 기도 시간을 정해놓고 경전을 독송하고 법문집도 시간이 나는 대로 읽곤 했다.
그러나 마음이 모아지질 않았다. 입으로만 기도한다는 자각이 순간 일었다. 공허함이 구름처럼 밀려들었다.
그러던 중, 경전의 한 구절이 마음에 화살처럼 꽂혔다. ‘누구든지 정성으로 사경하여 널리 유포하면, 세세생생 자손은 번창하고 그들의 앞날은 찬연히 열릴지니라’ 라는 말이었다.
그날부터 곧장 사경을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붓을 든 터라 붓으로 사경을 하기엔 힘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붓 펜으로 사경을 시작했다.
우선, 사경에 앞서 난 ‘부처님의 밝은 지혜로 중생들을 보게 하시고 그들에게 밝은 지혜를 베풀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발원을 한 후 사경을 했다.
경전의 말씀을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며 난 부처님과 대화를 했다. 그리하여 삶이 비록 힘들어도 사경수행을 하면서 부처님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삶의 난제들을 풀어나가는 습관을 갖게 됐다. 즉 사경수행은 나의 마음과의 대화였고, 지금은 그것이 ‘참나’를 발견하는 길임을 깨달았다.
사경은 이후, 나에게 보이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었다. 자연, 이웃, 사회, 인연 등등. 부처님 말씀을 통해 조금씩 참나에 접근해 가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큰 소리로 독송을 하며 열심히 사경을 하는 것은 정말로 나 참모습을 발견하는 나침반이었다.
이후 난 <천수경>, <금강경>, <법화경> 등 많은 경전을 읽고 쓰고 외우며 수행을 계속했다. 사경을 끝낸 사경지는 다른 사람들이 재를 지낼 때 영가단에 공양을 올리기도 하고 탑에 봉안하기도 했다. 한 때는 나를 처음 본 어느 스님이 다짜고짜 “보살님은 사경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라며 “사경의 공덕이 얼굴에 보여 향기가 난다”고 하셨다. ‘어떻게 아실까?’ 궁금했다. 그리고 정말 감사했다. 환희심도 절로 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