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9. 7.1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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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시절을 웃으며 보낸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마음을 고(苦)로부터 방해받지 않고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괴롭혀지지 않는 처(處)에 잘 머무르게 하는 일체의 노력이 수행이다.
내게 부족했던 것은 몸으로 직접 부딪혀서 업장부터 깨부수는 수행이었다. 그 동안 나는 너무 머리로만 안이하게 불교공부를 해왔다.

아! 얼마나 지금 당장 급히 실천에 옮기라는 부처님의 긴급한 말씀인가. 그래! 지금부터다.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운명이나 업보라는 것에 맞서서 당당히 도전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정면 돌파하는 것이 나, 홍영숙 다운 문제해결방식이다. 더 이상 절망하며 아침이면 차라리 눈뜨지 말기를 바라는 바보 같은 희망 아닌 희망을 바라지 말자. 더 이상 내가 나를 학대하며 나 자신에게 욕을 퍼부으며 자학하는 것을 멈추자.

참 많이도 내가 내 가슴을 치며 모든 것을 후회했다. 긴 세월을 똑똑한 척은 또 얼마나 하며 살았는지….
나는 이 세상이 내가 원하고 노력하면 다 이루어지는 줄로 착각하며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남들이 인정하는 명문학교, 공무원 시험 수석합격, 그리고 입사동기 남자직원들 보다 훨씬 빨랐던 진급 등 항상 머리 좋고 예쁘고 똑똑하다는 칭찬 속에서 아만심은 하늘을 찔러왔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부딪히는 사소한 어려움은 언제나 부끄럽지 않은 당당함과 자존심으로 지켜온 세월이었다.
그러나 50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닥쳐온 큰 광풍의 바람을 극복하기엔 나는 너무나 초라하고 미약한 갈대였다. 갈대는 질기기라도 했지만.

나의 주식투자 대실패로 인한 경제적 혼란과 평소 지나친 음주로 나를 어지간히도 속 썩여 온 남편이 알코올 못지않게 여자에게도 상당한 흥미와 끼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결혼 20여년이 훨씬 넘은 이 시점에 와서야 알았다는 무지몽매한 내가 어찌나 어리석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충격으로 인한 하혈을 몇 달간 계속 하면서도 병원은 찾지 않았다. 무작정 죽고만 싶었다. 이런 지옥의 날을 보내던 어느 날 아침, 식은땀을 흘리며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하늘이 확 열리면서 끝없이 푸른 창공이 펼쳐졌다.

순간적으로 ‘아! 이래서 스님들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며 수행하시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절을 찾았다. 그 날은 마침 정초기도 입재일이었다. 법당에서 부처님께 108배를 하며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일미(一味)를 맛보게 하신 대자대비하심에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내가 불법을 만난 지 15년이 다 되어가지만 내가 알아온 불법은 그간 불교서적 위주의 알음알이에 지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항상 마음속에는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가 내 화두였으며 “참선하지 않으면 모두 천마외도다”라는 성철 큰스님의 말씀이 골수에 새겨져 있었다.

그 날 이후 3년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절에 가서 부처님 전에 참회의 절 수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참선 수행은 이제 머뭇거릴 시간과 여유가 없다는 절박한 내 안의 소리에 따라 무조건 몇 시간이고 앉아 보았다.

처음엔 무릎이 너무 아파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도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찔끔거리면서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가부좌한 다리를 풀지 않았다. 틈만 나면 무조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렇게 며칠을 보낸 어느 날부터인지 다리를 풀 때마다 몸의 어디에선지 심한 악취가 풍겨졌다. 이런 심한 악취는 며칠간 계속됐다. 그런 와중에 남편이 외국 출장을 가기 전날 심하게 부부싸움이 있었고 돈과 관련된 걱정거리도 가슴을 짓눌렀다.

그래도 참선이 업장소멸의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하니 남편이 출장 간 7일을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기로 혼자 결심하고 거실에서 새벽 4시가 넘도록 가부좌를 풀지 않았다.

다리는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처럼 쑤시고 아팠다. 진정한 화두의심이나 의정은 아직 뒷전이고 내가 처한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서 잠도 오지 않을 때였다. 이 길이 아니면 길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과 ‘내 기어이 해결하리라!’라는 배짱만 가지고 눈을 절대로 감지 않고 ‘이 뭣고’하며 앞만 지켜보았다.

앉은지 다섯 시간정도 지나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을 모르고 계속 되풀이되는 생각, 번뇌 망상들도 지쳐 나자빠지고 시간 공간이 딱 멈추는 지점이 느껴졌다. 앞이 텅 빈 것 같았고 목 뒤로 땀이 흐르며 머리는 오히려 맑아졌다.
다리를 풀고 몸을 눕혔다.
아! 잠을 청해 본다.

‘조금이라도 자고 일어나야 우리 착한 아이 밥을 먹여 학교에 보낼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7일을 나 혼자서 철야 용맹정진(?)했다. 마침내 7일 째, 나는 나 자신에게 칭찬의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아침잠 많고 게을렀는데 역시 해냈구나라는 자부심에 환희심이 넘쳤다.

‘해냈다’라는 것의 의미는 화두타파를 했다든지 하는 그런 큰 성취를 이뤄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동안 10년 넘게 ‘참선을 꼭 해야지’ 하는 뜻만 있었지 용기가 없었고 주위스님들에게 참선에 대해서 문의라도 하면 “혼자서 하면 위험하고 상기병이라도 오면 큰일난다”고 하시니까 엄두도 못냈던 일인데 스스로 해낸 것이 대견해서였다.

그간 얼마나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는 나의 복 없음만 원망하며 지냈는가! 너무 오랫동안을 허송세월하며 보냈다는 분심에 무조건 앉아는 보았으나 그래도 이나마 이렇게 내가 나를 앉을 수 있게 잘 안정시켜 나가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불보살님은 불쌍한 중생 생각에 눈물 마를 날 없으시다더니….
인연 시절은 동시에 도래하는가?
때를 맞춰 조계사에서 열렸던 ‘간화선 중흥을 위한 대법회’가 불교방송을 통해 방송되는데 그 법회가 나를 위해 설법해주시는 불보살님들의 감로 법문같았다.

참선 관련 서적은 닥치는 대로 독파하던 중 또다시 범어사 설선대법회가 우리나라 선 수행을 대표하는 큰 스님들의 사자후 법문으로 포문을 열었다. 예쁘게 단장하고 소녀 같은 설레임으로 금정산을 오른다. 금정산은 전생부터 분명 인연 깊은 곳인가 보다. 알 수 없는 환희와 엄마 품 속 같은 포근한 안락이 느껴진다. 범어사 보제루에 도착하면 창원에서 부산까지 토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온다고 노보살님들이 예뻐해 주시며 내 자리를 잡아놓고 반겨 주신다.

큰 스님들께서는 화두를 어떻게 의심해 나가야 하며 꼭 이 공부를 생명 바쳐 해야만 하는 절대적 이유를 설명해주셨다.
“광심돈게(狂心頓偈)”라 유명한 중국 허운대화상의 법문 중 말씀이시다.

얼마나 충격적 말씀인가?
우리 불교에서만 접할 수 있는 절대 진리가 담겨 있는 이러한 멋있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아! 역시 난 복 많은 사람이다’라고 되뇌인다.

그 광심(狂心)으로 인하여 생긴 위험일로의 건강악화도 불보살님의 중생사랑으로 봄바람 눈 녹듯 녹이고 날아갈 듯 가벼운 걸음으로 길을 걸어가면서도 화두를 챙긴다. 불보살님의 중생 생각하는 그 자비와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주루륵 눈물이 흐른다.
나는 이렇게 배신의 계절도 웃음으로 넘기며 내 인생 그 다음 장을 힘차게 열어 가고 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끝)
홍영숙(경남 창원시 대방동) | |
2005-05-25 오후 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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