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현신(現身)이나 다름없는 경전. 그래서 경전은 법보(法寶)라 한다. 법보를 외면하고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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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혜능 스님은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는 <금강경> 구절을 듣고 단박에 느낀 바가 있어 출가를 했다. 그리고 스승에게 인가를 받는 자리에서 <금강경>의 대의를 전수 받았다. 경전공부 즉, 간경(看經)은 수행자에게 깨달음의 기연을 던져준다.
간경수행의 원리는 무엇인가, 또 어떻게 경전을 읽어야 할까? ‘읽고 깨달아 진리의 실상을 바로 보라’는 간경수행. 5월 24일, 간경수행자 조희준(49ㆍ원화), 박미경(49ㆍ길상화) 씨가 대한불교보림회장 성상현 법사의 자택을 찾아가 간경수행의 요체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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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전에서 진리의 실상(眞實相)을 본다
조희준 씨의 첫 질문은 직접적이었다.
“간경은 왜 합니까?”
“부처님의 의취(義趣), 즉 부처님이 정말 표현하고자 한 뜻을 알고자 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글자에만 매달리는 것처럼 겉도는 느낌을 가질 수 있지만, 경전을 자꾸 읽고 들으면 그 뜻이 드러나게 돼요. 그러면 부처님의 뜻이 내 안에 새겨져 나중에는 내가 불법에 감화되는 체험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간경을 해야 합니다.”
<반야심경>을 10년 넘게 아침마다 읽고 있다는 조씨.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경전은 너무도 많습니다. 한 권의 경전 정도는 외면 좋다고 하던데, 분량이 많은 경전은 외기가 힘듭니다.”
“그냥 읽고 외면 그것은 지식일 뿐예요. 가령 <금강경>을 다 왼 사람에게 <원각경>을 외라 하면, 금세 <금강경>은 다 잊어버리게 돼요. 한 경전을 다 왼다고 다른 경전을 동시에 외기는 어렵지요. 그럼 안 잊어버리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경에서 진리의 실상(眞實相)을 찾아야 해요. 예를 들어 ‘부처님이 중생계로 와 네게 가르쳐 주겠다’는 경구가 있다면, ‘내안 있는 자성자리를 비춰주겠다’는 말로 그 진실상을 드러내야 해요.”
읽어야 할 경전의 분량만 봐도 ‘다 읽을 수 있을까, 제대로 뜻은 읽어낼 수 있을까’ 하고 속만 끓었던 조씨의 얼굴이 이내 밝아진다.
# 선지식에게 묻되 읽고 또 읽어라
올해 초부터 매일 아침 <법화경> 사경과 함께 간경수행을 시작한 박미경 씨가 경전 읽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어려운 불교용어, 난해한 번역문 등이 초심자에게는 간경수행에 걸림돌이 됩니다. 경을 보는 안목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경이 어려운 이유는 뜻을 올바로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부처님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올바로 알아야 뜻을 제대로 알 수 있어요. 안목을 키우려면, 반드시 선지식에게 법문을 청해 들어야 해요. 또 스스로 읽고 외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독경삼매에 들어 뜻이 저절로 명확해지고 환해집니다. 육조 스님이 ‘모든 경전은 하나로 관통된다’는 말처럼, <아함경>에서 <열반경>에 이르기까지 간경을 하면, 참선 못지않은 독경삼매를 경험하게 돼죠.”
성 법사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박 씨가 곧장 질문을 던졌다.
“간경수행을 잘 하려면, 선지식에게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바른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까요?”
“경전에 통달한 스승을 만나야 해요. 육조 스님도 ‘경을 모르면 절대로 견성하지 못 한다’고 했잖아요. 경을 완전히 이해해 뜻을 열어 보이고(開示), 깨달음에 들어간(悟入) 스승에게 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해요. 가령 <금강경>을 달달 외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상(相)을 여의지 못하고 아만심만 가득 차 있다면, 스승은 그에게 하심(下心)의 도리를 가르쳐 줘야 해요. 스승은 수지독송을 통해 이런 이치를 알려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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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여기’ ‘지금’이란 마음자세로 해야
질문은 간경 수행할 때 가져야 할 자세로 이어졌다.
“어떤 자세로 간경을 해야 합니까?”
“경전을 ‘남의 것’ ‘저기’ ‘옛날 글’ 등으로 여겨 읽으면 안 돼요. 그것은 불교도 아니고, 간경수행도 아니에요.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내 것’ ‘바로 여기’ ‘지금의 목소리’로 생각하고 읽어야 해요. 그러면 여설수행(如說修行)의 자세가 갖춰져요. 즉 단순히 경전의 내용을 아는데 머물지 않고, 읽고 왼 것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 가르침 그대로 행하게 되는 거죠.”
곧이어 조씨가 간경 수행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 묻자, 성 법사가 이렇게 대답했다.
“경을 잘못 읽으면 경이 나를 굴리게 돼요. 내가 직접 경을 굴릴 줄 알아야 해요. 그런데 흔히들 경에게 굴림을 당하죠. 경전을 왼다는 상이 가득 찼기 때문에 그런 거죠. 수행을 위한 간경은 전경(轉經)이 돼야 해요. 경을 읽고 그 뜻을 마음으로 깨달아 경에 통달해야 해요.”
2시간 남짓 진행된 문답. 성 법사는 마지막으로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문자를 쓰지 않고, 따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리를 전한다)’ 등을 강조하는 선수행 풍토가 간경수행을 낮춰보려는 불교계의 편견을 경계했다. 간경수행의 핵심은 알 ‘지(知)’를 지혜 ‘지(智)’로, 알 ‘식(識)’를 지혜 ‘혜(慧)’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식을 지혜로 변화시키는 것. 성 법사는 “간경이 지금 부처님을 친견하고 직접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수행법”이라고 말했다.
▤ 간경 수행의 포인트는?
염불 참선 등과 함께 3대 방편문의 하나인 간경수행을 독경(讀經)과 혼동하면 안 된다. 독경은 소리 내어 경전을 읽기만 하는 것인 반면 간경은 소리를 내지 않고 경전을 읽으며 그 뜻을 음미하는 과정을 수행으로 삼는다. 물론 경전의 뜻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정도 포함된다.
간경수행법을 안내하는 <중변불변론 무상승품>의 ‘십종수지(十種受持)’ 또는 ‘십종전통'(十種傳通)’에 따르면, △쓰고 베낌 △공양 △베풀어서 남에게 줌 △다른 이가 읽고 외면 한 마음으로 들음 △자신이 읽음 △자신이 이치대로 이름과 글귀와 맛과 뜻을 취함 △도리 그대로 이름과 글귀와 맛을 나타내 설명함 △바른 마음으로 듣고 욈 △조용한 데서 이치대로 헤아림 △이미 알게 된 뜻을 잊어버리지 않게 닦아 익힘 등이 있는데, 이 중 수행자는 인연 닿은 법을 선택해 간경수행을 하면 된다.
이와 함께 간경수행 초심자는 먼저 불교의 기본교리를 담은 <아함경>→ <능엄경>→견성을 위한 <금강경>→깨달음에 들어가는 <원각경>→부처의 세계인 화엄을 표현한 <화엄경>→최상승경전인 <법화경>→<열반경> 등의 순서로 간경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 성상현 법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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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불과 몇 년 만에 <아함경> <능엄경> <원각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열반경> 등 7보 경전을 모두 암송할 정도로 간경수행에 몰두하고 있는 성 법사는 25년 전 조계종포교사대학에서 <법화경> 첫 강의를 시작했다. 이후 보림회, 유마힐 법회, 서울 연신내 금강법회, 서울 수안사, 청량사, 자비사 등 전국 30여 사찰 및 불교대학에서 스님과 재가자를 위해 경전강의를 했다. 현재는 보림회 법회, 원주 구룡사 불교대학에서 <금강경>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