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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부처님 가르침에 눈을 뜰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모두 내겐 고맙고 소중한 존재이며 스승이었다.
현실은 그대로지만 마음이 바뀌니 세상이 달라보였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차츰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것도 알아차리는 훈련을 통해 줄일 수 있었고 아예 108배나 명상을 통해 흐트러지려는 내 마음을 다스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생기는 문제들은 초월하기 힘들었다. 특히 생활의 기초가 되는 부분들이 해결이 되지 않을 때는 비참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집안이 힘든데 무슨 마음공부를 할까’ 싶은 마음이 들어 명상이나 염불마저도 귀찮기까지 했다.
어느 날 한 번은 개학을 앞두고 큰 아이를 미장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돈이 없어 난감했다. 남편에게 짜증을 냈더니 남편은 대꾸도 않고 나가버리고, 난 돈 만원이 없어 이런 궁상을 떨며 살아야 하는 내 처지가 한심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베개를 흠뻑 적시도록 울고 또 울었다. 당장 생계가 걱정인 판에 부처님도 관세음보살님도 다 무슨 소용인가! 절에 다니고 싶어도 돈도 없고 여유도 없던 내게, 그 순간은 종교도 사치처럼 느껴졌고 다 귀찮게만 느껴졌다.
이런 내 기운을 알았는지 아이들은 셋이서 떠들지도 않고 조용히 놀기만 했다.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크는 아이들이 대견하면서도 내가 클 때보다 더 궁핍한 생활을 하는 애들 생각에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저녁때 쯤 남편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나는 혹시나 하고 있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남편을 보자 화가 치밀어 왜 왔냐며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대꾸도 없이 마당으로 나가더니 “연화야, 우리 공주님. 아빠가 머리 잘라줄게”하며 아이들을 불렀다. 난 어이가 없어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데 아이들은 “아빠, 아빠가 머리도 자를 수 있어요?”하며 좋아서 우르르 나갔다.
남편은 의자에 큰 아이를 앉히고 보자기를 어깨에 둘러 주더니 정말로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큰 아이는 속도 모르고 아빠가 머리를 잘라준다는 소리에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두 녀석들은 깔깔거리며 무엇이 그리 좋은지 턱을 괴고 않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는 돈이 없어 미장원에도 못 데리고 가는 현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데 역으로 아이들은 신나는 이벤트인양 즐거워했다. 똑같은 상황인데 아이들은 신이 나 있고 나는 세상이 다 무너진 거처럼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 예쁘게 잘라주세요.”
“그럼, 우리 공주님 아빠가 최고로 예쁘게 잘라 줄게.”
“야! 우리 아빠 최고다!”
마당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졌고 덩달아 신이 난 바둑이까지 멍멍 짖어 대며 깡충깡충 뛰어 다니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난 내 괴로움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오늘 왜 그토록 절망했었는지 의아해 졌다. 내가 만일 오늘 돈이 있어 미장원에 데리고 갔더라면 우리아이들이 만들 추억은 없었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오늘 우리 아이들은 평생 해보기 힘든 이벤트를 가진 것이다. 돈이 없는 것 자체는 물론 슬프고 괴로운 일인 것 같지만 조금만 마음을 바꾸면 슬퍼만 할일도, 괴로운 것만도 아닌데 돈이 없어서 얻을 수 있는 행복도 많다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 다섯 식구는 아직도 한 방에서 살고 있다. 좁은 방에서 다섯 식구가 자다 보니 아이들이 밤잠을 설치기가 일수다. 그렇지만 한방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니 가족애도 남다르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작은 아이는 내 품을 찾아든다. 나는 아이의 냄새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작은 아이는 내 체온을 느끼며 만족해한다. 얼마 전 아이들 방 공사를 시작해서 며칠 후면 완성이 된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자기네 방 꾸밀 생각에 부풀어 있고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방을 선물해 줄 수 있어 행복하고 모처럼 부모노릇 한번 한 것 같아 뿌듯하다.
남들에겐 당연한 일 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런 것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값지게 느껴진다. 우리에게 돈이 많았다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소중한 행복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조건이나 실체가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진정으로 느끼고 깨닫는 순간 진정한 행복도 자유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거창하게 불교란 어떤 종교라고 감히 이야기 할 순 없지만 불교라는 종교가 파국으로 치달을 뻔 했던 한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건져 낸 것만은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으리라. 불교의 힘은 부처님께 어떤 것을 바라고 비는 것만이 아닌 스스로의 불성을 깨우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인생을 보다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살게 하는 타 종교와는 다른 그 무엇을 일 것이다.
나는 주기적으로 절에 가지도 않고 십재일도 챙기지 못하고 살고 있지만 난 내 종교가 불교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불자라는 생각이 나를 뿌듯하게 한다. 요즘 나는 번뇌에 시달리다 지치면 <금강경>을 읽거나 잠시 면벽자세로 좌선을 한다. 혹 <법구경>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려보기도 한다.
부처님께 혹은 관세음 보살님께 무엇을 빌거나 매달려 보지는 않는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고 난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할 뿐 집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모든 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한 줌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게 하려고 한다.
그것이 이젠 내 삶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이렇듯 불법은 내 삶의 전부다. 한순간도 숨을 쉬지 않고 살수 없듯 불법을 떠나서는 하루도 버티기가 힘이 든다.
불교와 인연을 맺게 해 준 부모님과 언니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돈이나 그 어떤 물건을 물려주신 것보다도 나에게 불법을 알게 해준 것이야 말로 진정 나에게 값진 유산이 될 것이다.
지금의 순간 언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보살이라는 칭호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분이니까 마음을 잘 다스려 조카와 맺은 모자의 인연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 전 전화 통화에서 언니는 조금도 그 어떤 동요나 흔들림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침착하고 차분했다.
그렇지만 그 차분함의 뒤편에 숨겨져 있을 언니의 아픔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온다. 염주를 돌리는 내 손이 빨라지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소리도 같이 빨라진다.
전생의 어떤 인연으로 조카와의 인연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의 이 소중한 인연에 대해 감사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조카나 언니 모두에게 내 기도가 힘이 되어 주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불법의 인연을 맺고 나니 어려운 일도 두려운 일도 많이 없어졌다. 두려움이나 겁을 내개 전에 난 모든 것을 근본자리로 되돌리고 그 안에서 녹이고 자비를 감싸고 보듬다 보면 세상의 모든 일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찰나요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느껴본다.
그렇지만 난 아직도 하고 싶은 일도, 바라는 것도 많다. 그것 때문에 지금도 많이 힘들다. 특히 두터운 업 때문인지 참회가 부족해서인지 내 자신에 대한 집착은 좀처럼 끊기가 힘이 든다. 내가 없으면 나라는 생각이 없다면 고통도 번뇌도 모두 사라질 것 같지만 난 나에 대한 모든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열심이고 부지런을 떨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욕심도 번뇌도 친구로 여기다 보면 없애려는 것 또한 모순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난 얼마나 웃고 울며 살아가게 될까? 혹 울어야 할 일이 웃어야 할 일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웃음도 눈물도 난 여유로움으로 맞고 싶다. 그래서 내가 혹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게 되더라도 좋다는 생각 싫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불법으로 승화시켜 내 남은 모든 업장과 같은 근본자리로 되돌려 보내고 싶다.
내가 중년이 되고 할머니가 되어 죽음을 맞을 때도 슬퍼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묵묵히 받아들이고 싶다. 떠날 때를 기약할 수 없으나 세상에 태어난 그 때처럼 떠날 때도 천진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떠날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리라. 불법은 그런 내 마지막 순간까지도 함께하며 나의 든든한 벗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