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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이다. 고도산업사회로 치닫는 요즘처럼 가정을 되돌아보게 하는 때도 없다. 황금만능주의는 재물 앞에 부모, 자식도 존재치 않게 한다. 이러한 시대에도 우리에게 변하지 않고 자리해 있는 존재가 있다. 어머니다. 아들이 스님이어도 스님에 앞서 자식으로 다가오는 것이 우리의 어머니다. 그 어머니의 뒤안길을 더듬어 본다.
열여섯에 시집가서 열아홉에 첫아들을 낳았다. 귀한 아들이었지만 어려서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다. 그 뒤로 내리 4남 4녀를 낳았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막내만 빼놓고 모두가 서른을 넘기지 못했다. 이렇게 가슴에 묻은 자식이 여덟이다. 어떻게든 막내만은 살려야했다.
“이 아이마저 잃을 수 없다는 일념으로 부처님을 찾았어요. 그저 일만하고 살아 기도가 뭔지도 몰랐는데 스님이‘나무아미타불’을 찾으라고 해서 수명장수를 빌며 아들을 절에 맡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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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 불광사 주지 지범 스님의 속가 어머니 대덕화 보살(90. 이순덕)의 첫마디는 ‘수명장수’였다.
“전생에 업이 많아 가슴이 자식들 공동묘지가 되었다”는 대덕화 보살은 남은 아들의 수명연장을 위해 ‘자신의 삶’ 모두를 바쳤다.
13살 막내가 백양사로 출가하자 아들을 살리고자 곁에서‘나무아미타불’정진을 했다. 절에서 가사불사가 있을 때면 만사를 제쳐두고 절에서 살았다. 스님들 법복인 가사를 짓는 바느질 한 땀 한 땀을 뜨면서 스님이 된 아들의 목숨이 하루하루 늘어나기를 기원하는 정성을 들였다.
어느 날, 가사불사가 끝나고 조계종정을 지낸 만암 스님의 부름을 받았다. “이번 불사에 보살님 정성이 유별나요. 큰 덕이 쌓여 후에 꽃으로 피어날 것이니 ‘대덕화’라 부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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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같은 스님의 말씀 때문인지 막내는 서른도 넘어 쉰을 넘겼다. 아들 지범 스님은 “어머니의 정성이 제불 보살님을 감동시켜 크게 아프지 않고 이렇게 살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지범 스님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다. 출가승이 되어서도 목탁 대신 기타를, 염불 대신 대중가요를 즐겨했다. 백양사 시절 도량석 <천수경>을 나훈아의 노래 가락에 얹어 읊을 정도였다.
그런 스님은 제주에서 ‘노래하는 스님’으로 본격적인 대중교화에 나섰다. 그동안 ‘부처님 마음’ 등 6장의 포교용 앨범을 냈다. 그 가운데 가장 애틋한 정이 담긴 앨범은 ‘부모은중경’이다. 어느 무대에서든 부모은중경을 가사로 한 ‘어머니 은혜’를 꼭 부르곤 한다. 이렇게 지범 스님은 불음포교사가 되어 전국을 다니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부처님 말씀과 선사들의 시를 3~4분간의 노래로 전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효과적인 포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낳아 주시고, 단명인 목숨까지 늘려주셨으니 어머니 뜻에 따라 대중에게 회향할 따름입니다.”
이처럼 더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아들 스님을 보면서 대덕화 보살도 무언가 하기로 마음먹었다.
생각 끝에 바느질 보시를 하기로 했다. 바느질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바느질에 솜씨가 있었고, 젊어서 바느질품을 팔아 가계를 이어왔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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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각을 이어 밥상포를 만들었어요. 사나흘 걸려 하나가 만들어지면 이웃에 줬어요. 이 밥상포를 쓰는 가정에 건강과 수명장수를 빌며 바느질을 했기에 소중히 여겨 쓰라 했지요. 받는 이가 모두 좋아해서 저도 힘든지 몰랐습니다.”
‘일배일자(一拜一字)’ 사경하듯 한 땀 한 땀 ‘건강과 수명장수’를 기원하며 만들어진 밥상포는 인기가 높았다. 대덕화 보살의 밥상포를 받기위해 몇 달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부터 손수건으로 바꿨다. 손수건은 하루에 두 개를 만들 수 있어 하나라도 더 많은 이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덕화 보살의 손수건은 받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절로 우러나게 한다. 하얀 무명천을 직접 떠다가 만든 손수건은 정성이 말로 다할 수 없다.
천을 손수건 크기로 잘라 사방 끝에서 4~5개의 씨실을 일일이 뽑아내고, 다시 날실을 4~5개씩 묶어 모양을 낸 후 꼼꼼한 바느질 마름질로 대덕화 보살의 손수건 하나가 탄생한다.
이제는 노안으로 바느질이 여의치 않지만 염주 굴리며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시간 이외에는 바늘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지난 4월, 백양사 곡우절에 참석한 둥지마을 법현 스님(이천 서광사 주지)일행이 광주 대덕화 보살을 찾았다. 백양사 스님치고 대덕화 보살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가 없기에 대덕화 보살의 집은 백양문중 스님들의 속가나 다름없다.
절에서 30여 명의 집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고 있는 법현 스님이 “어머니 그동안 만들어 놓으신 손수건이 있으면 다 주셔야겠어요. 우리 절에는 식구가 많아 한두 개로는 어림도 없어요”라며 떼를 쓴다.
“있는 대로 다 가져가, 또 만들면 되지. 그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어. 스님이 모두 소원성취하고 수명장수하도록 잘 키워요”하면서 대덕화 보살이 스님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90노객의 어머니는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말끝에 향내 나고, 웃음끝에 꽃이 피고, 몸이 건강해서, 만인이 우러러 보는 큰 재목이 되어주시오”라며 서광사 아이들을 위한 기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