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을 다녀와서 우울증 약을 먹고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고 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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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약을 1년 넘게 복용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제 암이 온몸에 퍼져서 죽으려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자 묘하게 기분이 편안해졌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50분이었다. 가만히 누워 ‘지금 병원에 가면 담당교수님도 안 계시는 날이고 시간도 너무 늦는데 가야할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무엇인가가 머리 위로 휙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배와 머리가 텅 비는 듯 한 느낌과 함께 배 위를 쳐다보자, 돌부처님 상이 배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 깜짝이야”라고 말하면서 손을 배위에 갖다 대며 일어나보니 한바탕 꿈이었다.
이런 일이 있어서 마음속에 부처님이 있다고 옛 사람들은 이야기했던 것이 아닐까.
눈 깜짝할 새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갑자기 방안이 온통 빛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내가 언제 어둡고 우울하게 살았냐는 듯, 마음이 너무나 벅차고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잊고 있었던 허기가 느껴졌다. 너무나 춥고 아팠던 터라, 기운을 차리고 나자 뜨거운 죽이 먹고 싶었다. 안 그래도 기도하고 내려올 때 스님께서 ‘흰 죽을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다.
따로 죽을 끓일 힘이 없었지만 집에 아무도 없었다. 큰 아들은 늘 공부만 하다가 대학을 막 들어간 터라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였고, 남편과는 이혼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암이라는 것을 알기 전, 몸이 몹시 아파서 가게일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자기 생활만 하는 것이 너무 서운해서 이혼을 결심했던 것이다. 쌀을 직접 씻고 가스렌지에 불린 쌀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방금 전의 가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은 싫지 않았는지 곧 들어오겠다고 했지만 이미 이혼한 상태라 곧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아직 병원을 가기 전, 이혼을 결심했던 4월 달에 곧 이혼하고 6월 달에 암이라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부처님을 만나게 된 인연을 생각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게도 불성이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안 그래도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데 내가 부처님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뭐라고 그럴까.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하며 웃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내 마음 속에도 불성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나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사찰에 가서 절도 많이 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우게 됐다.
그 뒤 절에 갈 때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만 보면 ‘저 사람도 절에 가면 나처럼 부처님을 만나 뵙게 될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고, 풀 한포기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 드는 반면, 지금도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면 안타깝다.
점차 절이 내 집같이 느껴졌다. 요즘에는 꼭 스님 모시고 기도 정진 하는 것만이 불자의 본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비굴할 필요도, 그런 생각이 없는 사람을 업신여길 필요도 없다. 다만 부처님이 하신 일을 널리 알리는 것만이 내가 할 일이 아닐까. 배움도 없고 기도가 뭔지도 모르던 사람이 참 많이 알게 된 셈이다.
요즘의 나는 매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다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다.
선지식들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상근기는 60일, 중근기와 하근기는 90일에서 120일이면 불도를 성취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갖고 있는 것을 다 내놓는 일이 있더라도 한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교대학에서 강의 들으며, 졸립지도 않은데 자꾸만 눈이 감길 때마다 바짝 눈을 뜨고 긴장하느라 힘들기도 했고, 마침내 마곡사로 졸업여행을 떠나면서 무념무상을 느끼기도 했다. 무념무상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도, 마음이 마냥 편안하면서 ‘이것이 무념무상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3년 6개월 동안 아름다운 연꽃 봉오리들을 본 기분이다. 미세한 번뇌가 없어지면서 법신을 알고 자비를 알게 됐다.
2002년 구정 다음 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남편은 술을 마시고 귀가했고, 나는 밥도 약도 못 먹은 채로 있었는데 약이 너무 독해서 빈속에 먹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야채를 갈아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해서 함께 마시려고 했더니 남편이 피곤하다며 짜증을 부리며 야채를 갈아주기 시작했다.
‘기왕에 하는 거 잘해주면 얼마나 좋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국을 데워서 상을 차린 후 식사를 하고 누워서 잠깐 졸았다. 갑자기 꿈속에서 부처님이 나타나 부처님 특유의 미소를 보여 주시며 서운했던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다. 내가 꿈을 꾸면서 “부처님 미소, 미소…”라고 중얼거리니까 남편이 “어디, 어디?”라며 일어났다. 나도 순간 꿈에서 퍼뜩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다시 부처님의 미소를 뵙고 나니 부처님이 더욱 함께 계신다는 생각이 강하게 스쳤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나는 그런 일이 있고도 3개월 쯤 지나자 다시 믿음이 약해 지고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때마다 스님께서 도와주셔서 지금까지 부처님 가피 속에서 살아오고 있다.
사찰에 갈 때마다 역대 조사님들과 스님, 그리고 이곳 운주사의 큰 법당을 창건하신 분들께 날마다 감사 기도를 올리고 있다. 항상 스님 곁에서 어려움을 함께 하는 신도들께도 감사기도를 올리고, 조석으로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온 세계로 전파되어 모든 생명이 속히 고통에서 벗어나 불국정토를 이루기를 서원한다.
이렇게 부처님 만나 뵙고 무념무상으로 기도하고 법문을 들으면서 일심으로 참선한 뒤로, 나는 점차 우울증을 벗어나게 됐다.
우울증 때문에 그간 30년 넘게 고통 속에서 살아온 것을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18살 때 의식을 두 번 잃고, 한때는 자살하기 위해서 고향으로 내려간 적도 있을 정도였다.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찾아뵙고 마음을 돌리기는 했지만, 암 투병을 하면서 우울증은 더욱 심해져만 갔다.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 뵙고 강한 믿음으로 낫겠다고 결심하며 1년 넘게 복용하던 수면제와 우울증 약의 복용을 중지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약을 끊어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지끈하며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차츰 좋아지더니 마침내 잠도 잘 오게 됐다. 아마도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마음도 안정되어 한결 더 건강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약을 복용할 땐 백혈구 수치가 많이 떨어져서 약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는데 한의원에서 체질검사를 하고 몸에 맞는 음식을 꾸준히 섭취했다. 요즘은 음식보다 참선으로 얻는 것을 마음의 양식 삼아 살아가고 있다.
서울에서 처음 암 치료를 받을 때만 해도 수치가 7.8이었는데 부처님을 처음 만나 뵌 뒤 25.7에서 멈추고, 3개월 뒤 검사하니까 수치가 10으로 내려가 있었다. 3개월 후 다시 검사하니 수치가 5로 내려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검사한 수치가 0.9였다.
항암치료 끝나고 회복기간도 없이 바로 암수치가 30이면 다시 독한 주사를 맞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들었던 터였다. 나는 우울증이 심해서 그런 치료를 병행해나갔으면 아마도 내 몸과 정신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부처님을 만나 뵌 덕택에 암수치가 25.7에서 멈추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금만 늦었어도 30이 될 뻔 했는데, 이렇게 힘들게 살아도 부처님을 만나게 되어서 행복하다.
특히 나는 참회기도를 하며 내 참모습을 찾는 것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참회가 업장을 녹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공부할 기회가 닿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건강도 되찾고, 나아가 자기 내면과 바깥이 하나 되어 삶과 죽음의 고통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