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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단순히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얼만큼’ 일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더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느림’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통영 외딴 섬에 수행도량을 세운 오곡도명상수련원 장휘옥 원장과 김사업 지도법사, ‘새벽정진’ 24년째인 우리은행 외환서비스센터 이재상 과장, 그리고 6년 전 귀농한 윤덕영ㆍ김춘희 부부. ‘깨어있는’ 삶을 향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그들의 삶은 어떨까?
# 수행은 ‘억지로’ 느릴 필요도 ‘부자연스럽게’ 빠를 필요도 없게 해
경남 통영 오곡도명상수련원 장휘옥 원장과 김사업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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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들은 모든 알음알이들을 거둬낸 그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었을까? 일본 도쿄대 인도철학ㆍ불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 교수로 지낸 장 원장, 그리고 서울대 영문과 졸업 후 대기업을 다니다 사표를 내던지고 동국대 불교학과에 편입, 일본 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금강대 교수 생활을 했던 김 법사가 선택한 것은 바로 ‘수행’이었다.
“남에게든 내게든 ‘왜 자유롭지 못하고 괴로울까. 거기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은 잘 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정작 제 자신은 부자연스러웠어요. 정신적 자유는 오히려 더 멀어지는 듯했지요. 문제가 있음을 절감했죠. 그 순간, 진짜 불교공부를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장 원장의 첫 일성이었다. 불교학 강의를 20년 넘게 해왔던 김 법사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괴롭고 얽매이는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간 쌓아올린 학문적 기반과 안정된 조건들을 포기하고 이곳에 온 까닭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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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오직 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이들에게 ‘느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엉뚱한 질문부터 던졌다.
“여기서 살면, 정말로 느릿느릿 살 것 같은데요?”
“천만해요. 수행은 치열함에 그 생명력이 있어요. 그런데 ‘느리다 빠르다’로 나누어서 어느 한쪽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않아요. 수행은 모든 것과 하나가 되게 해요. 모든 것과 하나가 됐을 때 느리고 빠른 것이 어디에 있겠어요?”
김 법사의 대답은 단호했다. 빠르고 느림은 속도개념일 뿐, 집착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 ‘억지로’ 느릴 필요도 ‘부자연스럽게’ 빠를 필요도 없다는 것이 김 법사의 말이다.
“마치 물과 같아요. 높이와 그릇에 따라 완급과 모양이 있을 뿐이지요. 그저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빠르게도 느리게도 살 수 있는 것이 불교적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매일 5시 새벽 예불, 한 번에 1시간 이상 네 차례 하는 좌선, 그리고 농사와 집관리 등 널려있는 수련원의 소소한 일들. 어느 것 하나 이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지만, 결코 이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스럽게 빨라야 할 때 빨라지고, 느려야 할 때 느려지는 지혜를 수행에서 얻었기에 그렇다.
“순간순간 삶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요. ‘자신의 처지에 맞는 여유’라고 할까요. 융통성 있는 이 여유가 바로 느림과 빠름에 끄달리지 않게 하지요.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단순한 이 이치를 깨달으면 그만이죠.”
장 원장의 ‘느림’에 대한 생각. 이어 김 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행으로 ‘느리게’ 살아가는데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했다.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한 아집과 욕망의 제거를 강조했다.
“빠름에서 느림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면 생활이 윤택할 것이라는 생각은 결국 욕망의 대상이 전환됐을 뿐, 그 집착하는 마음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수행이 중요해요. 나를 비우듯이 느림과 빠름도 버렸을 때,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거지요.”
삶의 패러다임을 바꾼 장 원장과 김 법사. 이들은 그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느림이든 빠름이든 결국 그것은 속도에 대한 상대적인 체감도일뿐, 문제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통영 오곡도=김철우 기자
# 새벽정진 통해 직장과 가정에서 삶에 여유 찾아
- 일상 속에서 느림 실천하는 우리은행 이재상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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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일하는 이재상 과장(49).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입사 후 5년 동안 번개처럼 빨리 돌아가는 외환시장에 끄달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수 십 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 이 때문에 집에 가서도 늘 신경이 곤두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진정한 나를 되돌아 볼 여력은 더더욱 없었다.
“새벽정진요? 처음엔 꿈도 못 꿨죠. 그런데 밤샘 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새벽기도를 끝내고 법당을 나오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이 과장은 그 후 1981년부터 24년 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조계사 법당에 나와 108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또 2시간 넘게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부지런함 속의 느림’을 실천했다.
“하루 26시간을 살게 됐죠. 이렇게 정진하고 일터에 가면 맑은 마음으로 하루 일을 시작할 수 있어요. 이뿐인가요. 업무 능률과 건강도 같이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예요.”
매일 3시간 먼저 세상을 여는 삶. 그것은 생활에 쫓겨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활의 주도권을 잡게 했다. 바쁜 와중에도 새벽정진은 눈 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직장생활을 미리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는 촉매제였다.
“나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름이라면 느림은 매순간을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적극적인 행동이죠. 마치 차를 타고 가다 멋진 풍경을 만나 차에서 내려 그것을 만끽하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새벽정진 후 가정이나 직장에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됐다는 이과장. 그가 말하는 부지런함 속에서 ‘느리게 사는 삶’이 읽혀졌다.
노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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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가 함께 농사지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기쁨 커
귀농인 윤덕영ㆍ김춘희 부부의 귀농의 삶
도시인의 보람과 기쁨이 내 집 마련과 불어나는 적금통장이라면, 귀농인의 그것은 무엇일까.
귀농인 윤덕영(39)ㆍ김춘희(41) 부부는 바로 다재다능한 자연인으로의 변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논ㆍ밭농사와 집수리는 기본 비닐하우스 짓기, 가사도구 만들기 등 손끝으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기에 그렇다. 개수대 배수구만 막혀도 수리공을 부르는 도시인들의 삶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지난 1999년 귀농운동본부에서 만나 그해 부부의 인연을 맺은 윤씨 부부. 도시의 번잡함을 털어 버리고 경기도 여주로 짐 싸들고 들어 간 까닭이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귀농 전 윤씨는 5년간 검도학원 사범으로, 김씨는 잘나가는 입시학원에서 10년 동안 강사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 중산층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도시생활은 가슴 한구석엔 뭔가 허전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게 했다. 그때부터 고민은 시작됐다.
‘어떻게 삶을 잘 살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윤씨 부부는 자연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월급이 적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삶, 쫓기지 않고 느리게 사는 삶,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어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는 농사일을 선택하는 것이 평생 후회 없는 일이겠다 싶었죠.”
부부가 사계절 함께 일하면서 정담을 나누고, 식사시간은 자신들이 키운 유기농 야채로 밥을 먹는 전원의 삶. 육체적 건강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기에 충분했다.
“도시인들은 꽃병속의 꽃을 감상하지만, 전원생활은 온 주변이 꽃이니 꽃병이 필요 없죠. 또 이웃들과 함께 땅을 일구고 추수를 하는 기쁨은 도시인이 월급봉투에서 느끼는 행복 그 이상입니다.”
만원버스에 파묻혀 허둥지둥 바쁘게 사는 도시인들에게 윤씨 부부는 말한다. 가능하면 입은 다물고, 대신 눈을 열어 주변을 둘러보라고. 그리고 몸이 느림을 향할 때 정신은 더욱 깨어나고 삶의 깊은 의미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여주=노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