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신행 > 수행
[봉축특집]'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사람들
【느림특집】 느리게 사는 사람들
경남 통영의 외딴 섬에 자리잡은 오곡도명상수련원 전경. 사진=김철우 기자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사람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부지런히’, ‘단순히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얼만큼’ 일을 했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더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느림’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통영 외딴 섬에 수행도량을 세운 오곡도명상수련원 장휘옥 원장과 김사업 지도법사, ‘새벽정진’ 24년째인 우리은행 외환서비스센터 이재상 과장, 그리고 6년 전 귀농한 윤덕영ㆍ김춘희 부부. ‘깨어있는’ 삶을 향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그들의 삶은 어떨까?


# 수행은 ‘억지로’ 느릴 필요도 ‘부자연스럽게’ 빠를 필요도 없게 해


경남 통영 오곡도명상수련원 장휘옥 원장과 김사업 지도법사

귀농인 윤덕영ㆍ김춘희 부부.
지난 2001년, 잘나가던 교수직을 내버리고 경남 통영 외딴 섬에 수행도량을 세운 장휘옥 오곡도명상수련원 원장과 김사업 지도법사. 4월 28일 수련원에서 만난 이들은 시쳇말로 ‘먹물’이 다 빠져있었다. 밥 짓고 청소하는 공양주 일로 “살 찔 겨를이 없다”는 장 원장의 말이나, 햇볕에 검붉게 그을린 김 법사의 목덜미가 그랬다.

그럼 이들은 모든 알음알이들을 거둬낸 그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었을까? 일본 도쿄대 인도철학ㆍ불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 교수로 지낸 장 원장, 그리고 서울대 영문과 졸업 후 대기업을 다니다 사표를 내던지고 동국대 불교학과에 편입, 일본 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금강대 교수 생활을 했던 김 법사가 선택한 것은 바로 ‘수행’이었다.

“남에게든 내게든 ‘왜 자유롭지 못하고 괴로울까. 거기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은 잘 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정작 제 자신은 부자연스러웠어요. 정신적 자유는 오히려 더 멀어지는 듯했지요. 문제가 있음을 절감했죠. 그 순간, 진짜 불교공부를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장 원장의 첫 일성이었다. 불교학 강의를 20년 넘게 해왔던 김 법사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괴롭고 얽매이는 자신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간 쌓아올린 학문적 기반과 안정된 조건들을 포기하고 이곳에 온 까닭이 엿보였다.


수행은 억지로 느릴 필요도 부자연스럽게 빠를 필요도 없게 한다는 장휘옥 원장(오른쪽)과 김사업 지도법사.


잠시 후, 오직 수행에 전념하고 있는 이들에게 ‘느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엉뚱한 질문부터 던졌다.

“여기서 살면, 정말로 느릿느릿 살 것 같은데요?”
“천만해요. 수행은 치열함에 그 생명력이 있어요. 그런데 ‘느리다 빠르다’로 나누어서 어느 한쪽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않아요. 수행은 모든 것과 하나가 되게 해요. 모든 것과 하나가 됐을 때 느리고 빠른 것이 어디에 있겠어요?”

김 법사의 대답은 단호했다. 빠르고 느림은 속도개념일 뿐, 집착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 ‘억지로’ 느릴 필요도 ‘부자연스럽게’ 빠를 필요도 없다는 것이 김 법사의 말이다.

“마치 물과 같아요. 높이와 그릇에 따라 완급과 모양이 있을 뿐이지요. 그저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빠르게도 느리게도 살 수 있는 것이 불교적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매일 5시 새벽 예불, 한 번에 1시간 이상 네 차례 하는 좌선, 그리고 농사와 집관리 등 널려있는 수련원의 소소한 일들. 어느 것 하나 이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없지만, 결코 이들이 시간에 쫓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스럽게 빨라야 할 때 빨라지고, 느려야 할 때 느려지는 지혜를 수행에서 얻었기에 그렇다.
“순간순간 삶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요. ‘자신의 처지에 맞는 여유’라고 할까요. 융통성 있는 이 여유가 바로 느림과 빠름에 끄달리지 않게 하지요. 쉴 때 쉬고 일할 때 일하는 단순한 이 이치를 깨달으면 그만이죠.”

장 원장의 ‘느림’에 대한 생각. 이어 김 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행으로 ‘느리게’ 살아가는데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했다.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한 아집과 욕망의 제거를 강조했다.

“빠름에서 느림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면 생활이 윤택할 것이라는 생각은 결국 욕망의 대상이 전환됐을 뿐, 그 집착하는 마음은 그대로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수행이 중요해요. 나를 비우듯이 느림과 빠름도 버렸을 때,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거지요.”

삶의 패러다임을 바꾼 장 원장과 김 법사. 이들은 그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느림이든 빠름이든 결국 그것은 속도에 대한 상대적인 체감도일뿐, 문제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통영 오곡도=김철우 기자



# 새벽정진 통해 직장과 가정에서 삶에 여유 찾아

- 일상 속에서 느림 실천하는 우리은행 이재상 과장

새벽정진으로 일터와 가정에서 느림을 실천하고 있는 이재상 우리은행 과장. 사진=노병철 기자
우리은행 외환서비스센터. 1초가 멀다하게 바뀌는 환율 전광판 아래 외환딜러들의 눈빛이 매섭다. ‘속도’와 ‘경쟁’의 치열한 일상 속에서 숨 가쁜 하루를 사는 이들. 과연 ‘느림’이란 말이 이들에게 가능할까?

이곳에서 일하는 이재상 과장(49).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입사 후 5년 동안 번개처럼 빨리 돌아가는 외환시장에 끄달려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수 십 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 이 때문에 집에 가서도 늘 신경이 곤두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진정한 나를 되돌아 볼 여력은 더더욱 없었다.

“새벽정진요? 처음엔 꿈도 못 꿨죠. 그런데 밤샘 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새벽기도를 끝내고 법당을 나오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이 과장은 그 후 1981년부터 24년 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조계사 법당에 나와 108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또 2시간 넘게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부지런함 속의 느림’을 실천했다.

“하루 26시간을 살게 됐죠. 이렇게 정진하고 일터에 가면 맑은 마음으로 하루 일을 시작할 수 있어요. 이뿐인가요. 업무 능률과 건강도 같이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예요.”

매일 3시간 먼저 세상을 여는 삶. 그것은 생활에 쫓겨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활의 주도권을 잡게 했다. 바쁜 와중에도 새벽정진은 눈 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직장생활을 미리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는 촉매제였다.

“나태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름이라면 느림은 매순간을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적극적인 행동이죠. 마치 차를 타고 가다 멋진 풍경을 만나 차에서 내려 그것을 만끽하는 것과 같은 이치예요.”

새벽정진 후 가정이나 직장에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됐다는 이과장. 그가 말하는 부지런함 속에서 ‘느리게 사는 삶’이 읽혀졌다.

노병철 기자




장휘옥 원장과 김사업 법사가 법당에서 좌선 정진을 하고 있다.


# 부부가 함께 농사지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기쁨 커

귀농인 윤덕영ㆍ김춘희 부부의 귀농의 삶


도시인의 보람과 기쁨이 내 집 마련과 불어나는 적금통장이라면, 귀농인의 그것은 무엇일까.

귀농인 윤덕영(39)ㆍ김춘희(41) 부부는 바로 다재다능한 자연인으로의 변신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논ㆍ밭농사와 집수리는 기본 비닐하우스 짓기, 가사도구 만들기 등 손끝으로 모든 것을 만들 수 있기에 그렇다. 개수대 배수구만 막혀도 수리공을 부르는 도시인들의 삶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지난 1999년 귀농운동본부에서 만나 그해 부부의 인연을 맺은 윤씨 부부. 도시의 번잡함을 털어 버리고 경기도 여주로 짐 싸들고 들어 간 까닭이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귀농 전 윤씨는 5년간 검도학원 사범으로, 김씨는 잘나가는 입시학원에서 10년 동안 강사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 중산층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도시생활은 가슴 한구석엔 뭔가 허전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게 했다. 그때부터 고민은 시작됐다.

‘어떻게 삶을 잘 살 수 있을까.’ 고심 끝에 윤씨 부부는 자연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월급이 적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삶, 쫓기지 않고 느리게 사는 삶,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어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는 농사일을 선택하는 것이 평생 후회 없는 일이겠다 싶었죠.”

부부가 사계절 함께 일하면서 정담을 나누고, 식사시간은 자신들이 키운 유기농 야채로 밥을 먹는 전원의 삶. 육체적 건강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기에 충분했다.

“도시인들은 꽃병속의 꽃을 감상하지만, 전원생활은 온 주변이 꽃이니 꽃병이 필요 없죠. 또 이웃들과 함께 땅을 일구고 추수를 하는 기쁨은 도시인이 월급봉투에서 느끼는 행복 그 이상입니다.”

만원버스에 파묻혀 허둥지둥 바쁘게 사는 도시인들에게 윤씨 부부는 말한다. 가능하면 입은 다물고, 대신 눈을 열어 주변을 둘러보라고. 그리고 몸이 느림을 향할 때 정신은 더욱 깨어나고 삶의 깊은 의미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여주=노병철 기자



김철우, 노병철 기자 |
2005-05-09 오후 5:27: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