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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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는 위빠사나
나의수행법 김경종 판사의 위빠사나 수행기(상)


서울고등법원 김경종 부장판사
위빠사나 수행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지난 1999년. 보리수선원장인 붓다락키타 스님을 어느 작은 암자에서 만난 이후부터였다. 스님은 그 곳에서 오온(五蘊:色受想行識)에 대해 법문 하고 계셨다.

당시 스님은 “오온은 무상(無常)한 것이고 무상은 직접 체험할 수 있으며 무상뿐만 아니라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체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불교의 가르침을 체험할 수 있다’는 스님의 말. 나는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 후로 난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수행법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다.

위빠사나 수행법은 쉽게 말하면, 나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행이 쉽지 않은 것은 우선 우리가 몸과 마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모든 현상에 대하여 의미를 붙여서 받아들이는 것이 습관이 돼 있다. 그래서 몸의 현상에 대하여도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함께 섞여 있으며, 마음의 현상에 대하여도 의미를 부여하고 좋은 생각은 붙잡으려고 하고 싫은 생각은 배척하려는 습관이 있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마음의 현상이 단순하지 않고 뒤죽박죽이 돼있다.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위와 같이 형성된 선입관에 뭐가 뭔지 모르고 끌려 다니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하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달리 해 볼 방법도 없다. 이러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부처님의 참 가르침인 위빠사나 수행법이라고 생각한다.

1999년 이후로 나는 위빠사나 수행법을 익히기 위해,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1주일간 보리수선원의 집중수행에 참가했다.

첫해 집중수행 때는 ‘어떻게 7일을 견디느냐’가 관심거리였다. 새벽 3시 30분의 예불부터 밤 10시 잠들 때까지 식사시간과 식후의 휴식시간을 합한 3시간을 제외하고는 ‘경행과 좌선’을 한 시간씩 번갈아 가면서 하는 수행 프로그램을 어떻게 따라가느냐가 문제였다. 또한 수행기간 내내 묵언을 해야 한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내가 과연 이를 이겨낼 수 있을까’ ‘내가 이 극기 훈련을 잘 버틸 수 있을까’ 난 이런 의문과 걱정을 내게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위빠사나 수행을 극기 훈련 프로그램쯤으로 생각한 내 생각은 이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빠사나 수행은 한 가지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재 나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때문에 당초 극기 훈련식의 인내체험 프로그램으로 여겼던 내 생각은 보기 좋게 어긋나 버렸다. 더욱이 저녁 시간에 스님 법문을 듣고 나니 다시 힘이 솟아서 수행을 하게 했다. 첫해의 집중수행은 위빠사나 수행의 방법을 익히는 정도로 끝났다.

이후 2000년의 집중수행은 처음 2ㆍ3일간은 현실의 온갖 잡념과 걱정거리 때문에 집중이 안 돼 힘들었다. 그러다 넷째 날에는 울음이 나와서 울음을 감추느라고 코를 훌쩍거리면서 법당 구석에 가서 경행과 좌선을 했다. 다섯째 날에는 처음으로 고요함을 경험했다. 좌선을 하면서 배의 팽창과 수축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지면서 수행하는 나 혼자 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계속>
김경종(법조인) |
2005-05-19 오후 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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