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생사문제는 선수행의 시작과 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발심하는 것을 선의 시작이라 한다면, 깨달음을 얻어서 생사를 초탈하고 자재하는 것은 수행의 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일이 무엇이겠어요? 돈, 명예, 권세, 행복한 가정생활 어느 한 가지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인생대사라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렬한 일은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죽는 일입니다. 내가 없는 세상이 무슨 뜻이 있으며 소용이 있겠습니까?
요즘 KBS에서 ‘생노병사의 비밀’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요. 이 육신은 아무리 잘 먹이고 잘 관리하고 좋은 약을 써도 결국 목숨이 다하면 끝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병들지 않고 몇 년 더 생명이 연장될지는 몰라도 늙음과 죽음의 고통을 면치는 못합니다. 생사문제는 외부의 어떤 힘이나 물리적인 작용에 의해서도 면할 수가 없어요. 그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죽음이라는 역경에서 해탈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은 것을 저 허공중에 구름이 일고 흩어지는 것으로 비유해 말씀 하셨어요. ‘제행(諸行)’은 ‘무상(無常)’이고 ‘생자(生者)’는 ‘필멸(必滅)’이라 했습니다. 죽음은 가장 비참하고 괴롭고 허무한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석순’보다 산 돼지가 낫다는 말도 있습니다. 석순은 중국 진나라 때 아주 유명한 부자였답니다. 그런 석순도 죽으면 산 돼지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지 않고 눈물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부처님뿐 아니라 수많은 수행자들이 이 생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출가의 길을 나섰습니다. 이 생사문제야 말로 불교에서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생사의 문제가 해결될까요? 답은 오직 주인공, 즉 마음을 잘 닦아야 됩니다. 마음을 잘 닦아서 삼매의 경지에 들어야 합니다. 그럼 삼매는 뭐냐? 신심이 일여(一如)된 상태 즉,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과 하나가 되고, 화두하는 사람은 깊은 선정에 들어 화두와 내가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합니다. 즉 점심공양하고 막 염불한 것 같은데, 참선에 들었는데 실제로는 몇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것처럼, 자기의 존재나 시공을 초월한 상태를 삼매라고 합니다. 삼매경지를 지나서 언어도단(言語道斷), 말길이 끊기고 마음작용이 멸한 그곳에 도달해야 참으로 생사를 초탈할 수 있습니다.
| ||||
그렇게 되려면 반드시 수행을 해야 됩니다. 수행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중에서 최상승 수행이 바로 화두선입니다. 요즘은 화두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많지만 저는 자신 있게 화두선이 최고의 수행법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깨치면 바로 부처님의 경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화선이 뛰어난 겁니다. 이미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들이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간화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간화선은 간절하게 의심을 일으켜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듯이 성실하게 화두를 참구하는 것입니다. 깨치고 생사를 초탈하는 것은 출ㆍ재가의 구별에 있지 않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 가운데 나는 신도이기 때문에, 나는 재가자이기 때문에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수행은 초학 후학이 없으며, 막 시작한 분이나 몇 십 년 공부한 분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러 생의 훈습도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순간 깨치는 것은 오직 그 당사자의 포부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간절하고 간절해서 마구 눈물이 날 정도로 간절하게 들어야 합니다. 옛 어른들은 며칠 굶은 사람이 밥 생각하듯, 어머니가 집 나간 아들 생각하듯 아주 간절하게 화두를 챙기라고 했습니다.
화두참구자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을 하거나 묵묵히 있거나 움직이거나 가만히 서 있거나 언제 어디서든 늘 한결같이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이, 막 부모의 상을 당한 듯이 오직 화두만 들어가야 합니다. 한번을 들더라도 처음이 곧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서 작품을 만들 듯 정성껏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화두가 간절하게 들리면 선악의 망상도 떠나게 되고 해태(懈怠) 방일(放逸) 무기(無記)에도 떨어지지 않아요. 간절함이 있어야 화두가 잘 들려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한번 뛰어넘어서 여래지에 도달하는 큰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화두는 열심히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화두참구 할 때는 보통 공부한다는 예사로운 생각을 마시고 내 생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각오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이 비참하거나 괴로울 때, 혹은 자신의 처지가 사면초가로 속수무책일 때 오직 나를 살릴 길은 오직 이 뿐이라는 생각으로 애쓰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이 공부는 자기 능력 이상으로 애쓰고 노력하는데 큰 뜻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도를 구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정성을 다해라. 정성을 다하면 능히 ‘도과(道果)’를 얻는다고 말씀 하셨어요. 꿈을 꾸어도 화두참선 꿈을 꾸고 망상을 피워도 화두 망상을 피우고요. 어쩌다가 괴로울 때는 옛날 초등학교 시절 동요가 생각날 때 그 동요 가락에도 화두가 올라가야 됩니다. 이렇게 애를 쓰다보면 어느 순간 화두가 간절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화두가 힘을 얻어요. 흔히 ‘득력(得力)’을 한다고 합니다. 화두에 힘을 얻을 때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심할 때는 목이 꽉 막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경지에서는 화두를 일부러 들지 않아도 절로 들어지고 의심하지 않아도 절로 의심이 됩니다. 그래서 놓으래야 놓을 수가 없어요. 항상 소소영영하고 현전합니다. 이와 같이 화두가, 의심이 간절해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을 ‘진의(眞疑)’ 났다고 합니다. 이럴 때야 말로 용맹정진 필요할 때입니다. <선요>를 쓴 고봉 스님은 학인들의 공부를 깊은 연못에 빠진 기와장이 곧장 바닥으로 가라앉듯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애쓰다 보면 깨달음에 가까워집니다. 지혜가 나오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참으로 생사를 해탈하게 됩니다. 이처럼 불교의 이상은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서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생사자재에 대한 옛 어른들의 일화를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삼조인 승찬대사는 수많은 대중이 모인 가운데 법회를 열고는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큰 나무 밑으로 가서 합장을 하고 그대로 열반에 들었습니다. 이처럼 선불교가 활짝 꽃을 피웠던 당ㆍ송나라 시대는 무수한 도인들이 경쟁하듯이 저마다 특이한 모습으로 입적했습니다. 당시에 큰스님이 돌아가시면 객승이 묻는 첫마디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묻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선가에서는 죽음을 옷을 갈아입는 것쯤으로 비유 했습니다. 또 조선시대 기화 스님은 부스럼 딱지를 없애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기도 했지요.
여러분 생사문제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는 명제이고, 극복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과제임을 꼭 아시기 바랍니다. 수행을 열심히 해 죽음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법신의 탄생이며 열반의 기쁨이라는 것을 꼭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모든 존재하는 것은 무상하다. 지금 내가 건강한 몸이지만 무상하여 변하는 것을 면치 못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해야 된다. 부지런히 공부해야 된다. 속히 생사의 불구덩이해서 벗어나기를 구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일체중생 성청정 종래무생 무가멸
(一切衆生 性淸淨 從來無生 無可滅)
여당일념 자지비 홀단윤고 생락반
(汝當一念 自知非 忽斷輪苦 生樂般)
일체 중생의 성품이 청정해서 본래부터 생겨남도 멸함도 가히 없는 것.
그대가 만일 한 생각의 허물을 안다면 문득 윤회의 고통을 끊고 극락에 태어나리라.
성불하십시오.
| ||||
▶ 무여 스님은
ㆍ1940년 경북 김천生.
ㆍ희섭 스님을 은사로 오대산 상원사에서 출가.
ㆍ동화사 송광사 해인사 칠불사 망월사 등에서 40여년 수선안거.
ㆍ칠불사 망월사 선원장 역임.
ㆍ1987년부터 봉화 축서사 선원장으로 제방납자 지도.
ㆍ현 조계종 기초선원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