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힘들어도 오직
| ||||
먼저 난 관법을 하고 한 선 한 선 호흡을 맞춰 부처님을 그렸다. 그렇게 그려 부처님 한 분을 탄생시킬 때면 환희심이 들었다. 그런데 나와 그리는 부처님이 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괴로우면 슬픈 모습의 부처님, 기쁠 때는 웃는 모습의 부처님이 그려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이후 난 늘 웃는 부처님을 그리기 위해 마음을 늘 즐겁게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만약 나쁜 생각을 하면 그대로 부처님 상호에 드러나게 돼 항상 밝은 마음을 유지하려고 마음자리를 단속했다.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 여기고 나를 깨끗이 닦아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난 그전만 해도 법당에서 절하고 염불할 때면 입으로만 수행하는 앵무새였다. 또 머리로는 딴 생각을 하면서 ‘항상 무엇을 달라’고 애원만 했다. 베풀 줄은 몰랐던 것이다. 내 욕심만 채우려 했던 기복신앙을 했던 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닫혔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게 됐다. 모든 사물을 관찰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게 됐고, 우리 식구들만 잘 되게 해달라는 염원이 모든 중생을 행복하게 해달라는 발원으로 바뀌게 됐다.
특히 사불수행의 관상법(觀想法)은 내게 큰 변화를 일으켰다. 그 중 관세음보살 여의주수 진언 ‘옴 바아리 바다리 훔바탁’은 내 마음속에 여의주를 새기게 했다. 여의주의 불빛이 가장 밝게 비추는 상태에서 들숨과 함께 코를 통해서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입→목젖→가슴→심장→명치→배꼽 밑의 단전까지 내려오면서 최고로 배가 불룩 나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날숨을 길게 내보내면서 여의주의 불빛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 어깨, 뒷목머리, 정수리, 양쪽 눈 등을 비춰가며 코로 배출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과정으로 난 차츰 여의주수의 빛이 내 몸속을 빙글빙글 돌면서 세포하나까지 비춰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막혔던 부분도 뚫어지고 몸속의 나쁜 모든 것들이 정화되는 그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호흡법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호흡조절하기가 힘들었지만, 숙달되면서 익숙해졌다. 긴 호흡을 유지하니 선이 바르게 그려졌다. 한 선 두 선 그리면서 불보살님의 지혜를 닮아가는 것 같았고, 정확한 판단과 행동으로 실수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줬다. ‘경책의 빛’이 밝은 광채를 내면서 모든 번뇌, 망상을 소멸시켜주면서 불보살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사불수행은 무엇보다도 세상사 온갖 시름들을 방하착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내가 불보살이 돼 ‘상구보리하화중생’할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해줬다. 사실 사불수행을 하다가 모르는 것이 많아서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사불수행을 할 때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경련이라도 일어나듯이 무엇인지 모를 힘이 생기고 환희심이 일어난다.
그러면서 난 사불수행으로 세상을 보는 눈과 삶을 밝게 보는 자세를 갖게 됐다.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부처님 감사합니다. 천지자연에 감사하고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는 말을 할 정도로 늘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