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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대표해서 질문 하도록 하겠습니다. 간화선이 어렵다고 하는데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지환 스님 :
간화선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자기한테 익숙해지지 않은 모든 것은 다 어렵습니다.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온 삶을 참 삶으로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간화선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모든 수행이 다 어렵습니다.
간화선을 할 수 있는 기본토대, 기초를 튼튼히 하지 않으면 간화선은 어렵게 느껴집니다.
땅에 비유하자면 척박하고 자갈이 깔려있는 땅을 파서 돌자갈을 캐내고 땅을 부드럽게 고르고 나서 씨를 뿌려야 하는데 돌자갈과 가시덩쿨이 얽혀있는 척박한 땅을 그대로 두고 씨를 뿌리면 씨가 제대로 나지 않고 씨가 난들 제대로 자라지 않듯이 화두공부를 할 바탕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 화두공부를 하면 화두공부가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불교의 생명은 깨침에 있습니다. 깨치기 위해서는 참선을 해야 합니다. 참선을 하기 위해서는 화두를 받아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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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를 받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준비가 안됐는데 화두를 받아서 ‘이뭣고’한들 의심이 나지 않고 공부에 진전이 있을 수가 없지요.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간화선은 생명력이 없는 것입니다. 최소한 실날 만큼이라도 의심의 뿌리가 났을 때 화두를 들 수 있는 것입니다.
화두 공부를 할 준비가 됐으면 스승에게 찾아가서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받으세요. 반드시 스승의 지시대로 공부해 나가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야합니다. 스승의 점검을 받는 과정에서 화두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수행 하는 사람이 간화선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기초를 소홀히 한 탓입니다. 기초만 튼튼히 하면 아주 쉬운 수행법입니다. 왜냐하면 간화선은 단순명료하기 때문입니다. 화두의심만 일으키면 되는데, 의심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느낍니다.
화두의심을 일으키는 순간 번뇌는 범접하지 못합니다. 간화선을 할 수 있는 기반만 마련되어 제대로 공부하면 간화선이 가장 힘있는 공부고 가장 쉬운 공부에요.
◆ 강설 스님 :
간화선과 관법을 병행해도 되는 것입니까?
◆ 지환 스님 :
병 따라 처방하는 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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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의심이 나지도 않는데 ‘화두를 오래오래 하다보면 나중에 화두의심이 생기겠지’ 이렇게 막연하게 하면 안됩니다.
재가불자 가운데 곧바로 화두공부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선이 좋다고 하니까 그리고 참선을 할려면 화두가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무조건 큰스님한테 가서 화두 타가지고 참선한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의심이 나지 않는 공부를 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해요. 이런 참선공부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탐욕이 많은 사람은 부정관을 한다든지 성내는 진심이 많은 사람은 자비관을 한다든지 산란심이 많은 사람은 수식관을 한다든지 기초단계로 관법을 먼저 닦고 화두공부를 해도 좋다고 봅니다. 누구나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관법은 반야관법이 있습니다. 반야관법과 간화선은 한 흐름이예요. 그래서 화두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관법입니다.
이 반야관법도 반야관법을 먼저하고 화두공부를 해야 할 사람 반야관법과 화두를 병행해서 해야 할 사람...사람따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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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에는 욕계, 색계, 무색계를 벗어나 해탈열반 하려면 아홉까지 순서에 입각한 수행인 구차제정(색계 4禪, 4無色定, 滅盡定 또는 想受滅定)을 닦아야 한다고 합니다. 간화선의 선 수행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지환 스님 :
우리는 하나의 세계 속에 중생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들이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들의 마음에서 세계가 연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이 세계가 있고 고정된 세계 속에 중생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중생들이 사는 세계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구차제정이라는 선정을 통해 중생들의 세계는 중생들의 마음에서 연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구차제정은 부처님께서 연기법이라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수행한 선정입니다. 그런데 이 선정은 단순한 삼매만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불교의 수행은 번뇌가 쉬고 마음이 고요해지는 사마타(止) 다시말해 선정의 측면과, 고요한 마음의 상태로 법을 관찰하는 비파사나(觀), 즉 지혜의 측면을 동시에 갖추어야 합니다.
사마타(止), 선정 속에 비파사나(觀)와 지혜의 내용이 함께 있고, 비파사나(觀), 지혜 속에 사마타(止)와 선정의 내용이 함께 있습니다. 이것을 지관등지(止觀等持), 정혜일체 (定慧一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수행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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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제정은 해탈열반에 이르는 아홉단계의 선정이라고 했는데, 마지막 단계의 멸진정을 통과해야 중생들의 모든 세계가 조작된 유위이며, 연기의 세계라는 연기법의 진리를 확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구차제정이라는 선정을 통해 연기법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데 달리 말하면 지관(止觀)을 통해 연기법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간화선 수행도 이 수행의 원리에 일치하고 있습니다. 화두의단이 뭉쳐지면 화두삼매가 되는데 이때는 번뇌가 쉬어, 고요하고 적적한 상태(止, 定의 측면)에서 화두의심이 뚜렷하게 흐르는 성성함(觀, 慧의 측면)이 있게 됩니다. 즉, 적적성성(寂寂惺惺)이요 성성적적(惺惺寂寂)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관등지(止觀等持), 정혜일체(定慧一체)의 수행입니다.
간화선에서도 은산철벽(銀山鐵壁, 멸진정의 상태)을 투과해야 화두가 타파되어 확철대오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야만 연기실상을 바로 깨쳐서 연기 실상의 흐름, 즉 진여대용(眞如大用)의 자유자재한 깨달음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 설동근 거사 :
대혜 종고스님은 화두 참구의 목적에 관해서 “만약 곧바로 계합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이 한 생각을 단박 부수어 버려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생사에 도달할 수가 있으며 깨달아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 방법으로서 화두 참구를 제시하고 있는데, 왜 견성의 방편으로서 화두를 제시하는가 궁금합니다.
◆ 지환 스님 :
우리의식은 동시에 두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미운 생각을 하면서 이쁜 생각을 할 수가 없지요. 미운 생각을 할 때는 미운 생각만 하게 됩니다. 동시에 생각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찰라가 바뀌는 것이지, 어떤 생각이든 그 생각이 일어났으면 그 생각이 있을 때 다른 생각이 끼어들 수가 없어요.
화두의심은 궁금한 것을 묻는 거예요. 불교의 근본진리가 도대체 뭘까, 아니면 달마대사가 왜 동쪽으로 오셨을까 하고 묻는 거예요. 이 궁금한 것을 물었을 때는 그것을 알고 싶은 거예요.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궁금함과 간절함이 강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매우 강한 집중력을 갖게 해 줍니다.
강력한 집중의 화두의심이 흐르고 있는 화두삼매에는 다른 생각, 망념이 끼어들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 화두의심이 꽉 뭉쳐 있으면 분별망상, 번뇌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의심이 약할 때는 망상이 왔다갔다 합니다.
예를 들면 기름을 계속 부어주면 불꽃이 활활 타오는 것처럼 망상을 피우면 피울수록 망상이 자라는 것입니다. 화두의심이 이어지면 번뇌망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망상이 일어나도록 계속해서 질료를 공급하지 않기 때문에 망상의 세력이 약해지다가 화두의심의 극점에서 미세 망념의 근본뿌리가 공해져 버리게 됩니다. 이때 홀연히 마음 꽃이 활짝 열리게 되는데 이것이 돈오견성입니다. 그래서 화두를 견성의 방편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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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의법사 강설스님
1983년 송담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86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해인총림 동화사 마곡사 불국사 등 제방선원에서 20여년간 참선정진
현 조계종 전국선원수좌회 사무처장
◆ 재가질의자 설동근 거사
행정학 석사
부산광역시 교육위원, 교육감 역임
현 13대 부산시 교육감, EBS 인터넷 수능 자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