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을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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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으로 고생하던 나는 부처님을 마음의 도피처로 삼았다. 생활이 힘들어 부처님께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날마다 조그만 사찰에 나가서 공양간 설거지를 돕고 법당청소, 화장실 청소를 했다. 막연한 기대감에 부처님께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법당에서 들려오는 <천수경> 소리를 나도 모르게 따라서 독경했다. ‘도량청청 무하예 삼보천룡 강차지 아금지송 묘진언 원사자 비밀가호’란 이 소리를 듣는 순간, 힘들고 괴로운 생각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병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모르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쳤던 내 모습들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이후 난 마음의 갈등과 채워지지 않는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좋다는 수행방법은 다 찾아다니며 배웠다. 선지식들의 책도 수없이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때 뿐’이였다. 이해는 안 되고 낯 설은 글귀들만 많았다. 자성불(自性佛)은 찾지 못하고 3년 동안 밖으로만 찾아다닌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안타깝다. 속담에 업은 아이 3년을 찾은 격이 되었다고 할까.
그러던 중, 한 스님에게 ‘산 부처부터 챙기라’는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 그 때부터 절에 가는 횟수를 점차 줄여 나갔다. 그렇다고 마음속에서 부처님을 지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절에 계신 부처님은 그만 돌보고, 집에 ‘산 부처님’이 넷이나 되는데 남편, 아들이라는 ‘산 부처님’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난 그 이후로 내가 처한 상황에 당당히 맞서가면서 부처님을 마음속에 담기 시작했다. 절에 가지 않아도 마음속에 담아 둔 부처님의 형상은 늘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부처님을 붓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젊었을 때, 수묵화를 했던 것을 기초로 해서 아끼는 부처님을 그림으로 그려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부처님을 뵐 때마다 부처님께 당신을 그리게 해달라고 원력을 모았다.
난 오직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부처님! 당신을 제 손으로 그려보고 싶습니다’, ‘관세음보살님! 당신의 평온하고 포근한 모습을 내 손으로 그려내고 싶습니다’ 라는 생각을 갖고 곧바로 서울 동산불교대학 미술반에 등록을 했다. 본격적인 사불수행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사불수행은 만만치 않았다. 단순히 부처님을 그리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만 사경을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또 관법과 호흡을 무시하고 그림이 좋아서 그려보고 싶은 충동심으로 아무 생각 없이 손만 놀리는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하려 했던 것도 한 이유였다. 게다가 하려는 마음만 앞서다 보니 젊은 사람보다 손도 느리고 서툴러 번뇌만 일어났다. 부처님의 평온한 모습을 담고자 시작한 일인데 번뇌라니. 걱정이 밀려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