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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은 수행이 아니다. 단순히 경전을 베껴 쓰는 서예다.’ 재가불자들에게 자주 듣는 사경에 대한 오해들이다. 그럼 이 같은 생각이 과연 맞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틀렸다’다. 오히려 부처님 말씀을 옮겨 쓰면서 흐트러진 정신을 한곳에 집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수행시 장애가 빨리 오는 초심자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수행법이다.
부처님 말씀 한 자 한 획을 쓰면서 불심(佛心)을 수행자의 마음에 새기는 사경(寫經)수행. 그 수행법의 요체는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사경수행자 송명숙(49ㆍ서울 상월곡동), 이강희(52ㆍ서울 개포동) 씨가 4월 11일 사경수행 전문가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장을 만나 물었다.
# 사경은 힘들다(?)
수첩까지 준비했다. 깨알 같이 적은 질문들에서 이강희씨의 사경수행에 대한 열정이 묻어난다. 간경 수행을 하다 2년 전부터 사경을 시작한 이씨. 수첩을 뒤적이다 첫 질문을 던진다.
“초보자들이 처음 사경을 해보면 어렵다고 말해요. 그래서 시작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사경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화엄경> <법화경> 같이 긴 분량의 경전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그래요. 사실 ‘불(佛)’자 하나만 갖고 계속 써가는 ‘일자불(一字佛)’ 사경도 있지요. 초보자는 짧은 다라니나 게송, <반야심경> 등을 사경하면 돼요. 사경은 얼마만큼 하는가보다 얼마나 깊이 하는가가 중요해요.”
“보통 사경은 사인펜 등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붓 사경과 차이점이 있지 않나요?”
“사경은 느리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펜 사경은 속도가 빨라 집중하기가 힘들어요. 반면 붓 사경은 붓을 올곧게 세우면서 마음을 붓끝에 모을 수 있어 마음공부에 도움이 더 돼요. 되도록 붓으로 사경하는 것이 좋아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사경수행을 권하는데 열심인 이씨. 사실 이씨는 2년 전만 해도 붓 쥐는 법조차 몰랐다. 사경할 경전의 분량만 봐도 ‘다 쓸 수 있을까, 괜시리 사경을 해서 이런 마음고생을 할까’ 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김 회장의 대답이 끝나자 이씨의 표정이 이내 밝아진다. 속이 후련하다는 눈치다.
# 사경은 부처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는 것
올해 초부터 ‘관세음보살 42수 진언’을 매일 다섯 장씩 사경하고 있는 송씨가 질문 순서를 받는다. 곧바로 송씨가 4년간 사경수행을 하면서 겪은 장애와 극복방법을 묻는다.
“사경하면서 중간 중간에 나태함을 경험해요. ‘내가 왜 써야하는지’ 의문까지 들거든요.”
“모든 수행은 ‘현재’에 충실해야 해요. 사경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이 순간’에 온 힘을 다해 사경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편함만을 추구하려는 마장이 사그라져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속적인 재발심을 통해 초발심을 계속 상기시켜야 해요. 사경수행의 핵심은 경전 구절을 쓰면서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마음속에 새기는 거예요. 그래야 부처님 말씀이 확연히 내 마음으로 들어오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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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씨가 묻는다. “사경은 무념무아(無念無我) 상태에서 쓰는 글자와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막상 번뇌 망상 속에서 사경할 때가 많아요. 이렇게 해도 공덕이나 수행이 돼나요?”
“사경 그 자체가 공덕이에요. 또 그 공덕은 수행의 밑받침이 돼요. 때문에 번민 속에 싸여 사경을 하더라도 공덕이 돼요. 중요한 건, ‘부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긴다’는 사경의 목적을 항상 깊이 생각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 사경의 장점, 그리고 다른 수행법과 다른 점은?
질문은 사경수행의 장점과 다른 수행법으로까지 이어진다. 송씨가 먼저 ‘사경수행의 장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꺼내놓는다.
“사경은 간경 염불 절 참선 등의 수행법과 달리 수행의 결과물이 시각적으로 남는다는 점이에요. 또 순간순간 가졌던 마음상태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어 사경 전후의 마음자리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지요. 어느 순간 잡념이 들어왔는지 떨린 획만 봐도 알 수 있거든요.”
“그럼 사경이 다른 수행법과 다른 점은 무엇이 있나요?”
“간경(看經)수행과 비교해보죠. 간경은 눈과 입으로 경전을 읽는 수행법이지요. 그 과정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읽어내지요. 반면에 사경은 육근(六根)으로 수행을 해요. 눈으로 보고 코로 호흡하며 입으로 읽고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생각하고 손으로 쓰는 수행법이기 때문이죠.”
“사경은 어떤 자기변화를 가져오나요?”
“산란심이 없어지고 일심(一心)이 될 뿐만 아니라 주옥같은 경구들을 항상 가슴에 새길 수 있어 정신의 안정에 도움이 돼요. 또 온갖 집착을 떨쳐 버릴 수 있어 부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공덕도 생기지요.”
2시간 넘게 이어진 문답. 마지막으로 김 회장이 갈무리를 한다. 김 회장은 사경수행이 부처님 말씀에 귀의하는 과정이고, 부처님 법을 형상화하면서 내 마음자리에 새기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 사경수행 지도하는 김경호 회장은
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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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특히 지난 2002년 동국대 박물관에서 ‘한국사경연구회원전’을 개최하는 등 사경수행의 대중화에 심열을 쏟고 있으며, 현재는 3백여 명이 활동 중인 사경연구회를 이끌고 있다.
신라 및 고려시대에 제작된 사경 작품을 재현한다는 원력으로 26년간 한 길을 걸어온 김 회장은 조계종포교원 불교제수행법 연구위원, 불자수행프로그램현황 조사위원을 역임했으며, 대구 보현사, 동국대ㆍ연세대 사회교육원, 불교문화센터 등에서 재가불자들에게 사경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02)335-2186
▥ 사경수행 포인트는?
사경수행만이 가지는 특징은 부처님의 말씀을 한 점 한 획을 써가는 과정에서 수행자가 스스로 마음자리를 즉각적으로 확인ㆍ점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들을 부처님의 말씀으로 말끔히 거둬내기 때문이다. 특히 한 자 쓰고 한번 절하는 ‘1자 1배(一字一拜)’의 정신이 사경수행의 핵심 포인트다. 그래서 서예적인 기교는 사경수행에서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 이렇게 사경에 임하면,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법을 새기는 마음이 오롯이 수행자와 하나가 된다. 즉 자신의 본래면목의 자리를 관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장점 중의 하나다.
이런 사경수행은 초심자가 붓이나 볼펜, 종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점. 가령 가정에서 사경수행을 할 때는 삼귀의→사경 발원→입정→사경→사경봉독→사경 회향문→불전 3배→사홍서원 등의 사경의식을 실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사경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매일 근기에 맞게 일정한 ‘분량’과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수행하면서 나타나는 나태함을 극복할 수 있다.
현재 사경수행을 배울 수 있는 단체는 대구 보현사, 서울 능인선원 사경원, 직지사ㆍ통도사 사경반, 동국대ㆍ연세대 사회교육원 등 전국에 10여 곳 정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