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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 광주 무등산 증심사(주지 진화)에서는 매달 보름달이 뜰 무렵 주말이면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무등산 풍경소리(www.pgsori.org)’가 그것이다. 지난 3월 26일, 서른번 째 공연으로 ‘새 봄맞이 행사’가 열렸다. 공연의 막은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 ‘무등산 숲 탐방’으로 시작됐다.
“봄 숲은 밑바닥부터 파릇해지고 나중에 나무에 잎이 돋아납니다. 봄의 전령인 야생화가 먼저 피도록 나무가 햇빛을 양보해 주는 것입니다.”
숲 해설을 맡은 김영선 씨(생명을 노래하는 숲 대표)는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개불알꽃을 가리키며 “봄은 발아래를 내려다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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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사람이 편하게 걷는 속도로 다가온다. 남녘에서 시작한 꽃피는 소식이 매일 2~30km 위쪽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봄이 오는 소리는 어떠할까. 숲 해설가는 그 소리를 들려주겠다며 일행을 버드나무쪽으로 이끈다. 청진기로 먼저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게 한 후 나무에 청진기를 들이댄다.
“꾸륵 꾸륵, 타다닥 탁…”
“어! 정말 들려요”
화순에서 어머니와 함께 풍경소리에 참가한 김찬중(만연초 6년) 군의 탄성에 숲 해설가는 “이렇듯 자연은 인간의 심장소리와 같은 소리를 내며 살고 있으며, 그러기에 자연은 함께 살아야할 생명이다”고 강조했다.
‘무등산 풍경소리’는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이들의 작은 음악회이다.
2002년 7월, 당시 증심사 주지였던 故 일철 스님과 임의진 목사(남녘교회)를 비롯해 원불교, 천주교 성직자들이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종교인 모임’을 갖고 무등산 보호운동으로 시작했다.
여기에 무등산 보호단체협의회, 무등산 공유화재단, 생명나눔실천본부가 합세해 증심사 주차장의 아스콘을 걷어내고 잔디와 들꽃을 심어 문화마당을 꾸몄다. 첫 무대는 강원도 산골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가수 김두수 씨와 소설가 한승원 씨를 초대해 환경과 생명을 노래하며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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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광주의 가수 김원중 박문옥 한보리 씨를 비롯해 음유시인 백창우 박남준 김남주 시인과 YMCA, 증심사 합창단, 티베트 명상음악가 나왕케촉, 노래하는 범능 스님 등 소박하고 정감 넘치는 이웃들이 무대를 이어갔다.
풍경소리 전담 사회를 맡고 있는 최명진 목사(꿈이 있는 교회)는 “작은 음악회가 다달이 끊이지 않고 이어온 것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각기 다른 성향의 지역 종교인들이 모였지만 어울림의 소리를 내고자 했던 것이 30회를 이어온 장수 비결이란다.
풍경소리는 추운 겨울날이나 비가 오면 무대를 야외에서 증심사 법당으로 옮기고, 연말이면 교회와 성당에서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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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번 째 음악회도 꽃샘추위에 밀려 증심사 취백루에서 열렸다. 무등산에 어둠이 깔리고 푸짐한 달빛이 쏟아지면서 산사에서의 작은 음악회가 본격적으로 달아올랐다.
이달의 무대꾼은 채식운동가이자 오카리나 연주자인 정인봉 씨와 생태사진 전문가 오영상 씨. 정인봉 씨는 연주에 앞서 ‘오카리나’에 대해 “흙(地)을 물(水)로 반죽해 불(火)에 구워 사람의 입김(風)으로 자연과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내는 악기다”고 소개했다.
오카리나의 편안한 소리만큼이나 풍경소리의 무대와 관객은 거리감 없이 어우러졌다. 새를 주제로 한 연주에서는 갖가지 새소리가 무등산을 일깨웠다. 드라마 ‘대장금’을 비롯해 각종 애니메이션을 배경 화면으로 즉석 영상음악이 펼쳐지고, 국악가요에서는 추임새와 함께 으쓱거리는 몸동작이 춤으로 이어졌다.
풍경소리는 음악과 이야기가 어우러진 무대이다. 한차례 음악이 흐른 뒤, 탐조가 오영상 씨의 ‘전라도 새 이야기’가 주목받지 못한 우리 주변의 새들에게 구수한 입담과 함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풍경소리는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문화운동입니다. 사찰에서 열리는 음악회라고 부처님을 말하거나 목사님이 사회를 본다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이 자리는 오직 무등산 품에 안겨 살아가는 생명들이 같은 맥박소리를 느끼며 함께 살아가는 친구임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일철 스님에 이어 2대 풍경소리 지기를 맡은 증심사 주지 진화 스님의 소박한 꿈이다. 스님은 무대를 마련하고, 공연에 앞서 저녁공양을 제공하는 등 궂은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공연장에서는 흔한 인사말도 하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내지 않는다.
무등산 풍경소리의 정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모습이 지역에서 단발적인 공연에 그치지 않고 4년째 꾸준히 음악회를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광주에서 수많은 음악회가 생멸을 거듭하는 동안 풍경소리는 광주를 대표하는 작은 음악회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달 들어 무등산 풍경소리는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주 5일 근무제에 발맞춰 행사를 금요일로 옮겼다. 작은 음악회에 앞서 생명과 환경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역 예술인과 후원단체의 참여를 확대해 ‘함께하는 열린 문화행사’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여기에 무등산을 시민의 공간으로 환원하기위해 무등산 공유화재단과 함께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달 빛 어스름 한 밤-중에 / 깊은 산 길-걸어가-다 /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가…”
신바람 난 관객들이 더 이상 ‘끼’를 감추지 못하고 일어섰다. 창작국악동요 ‘산도깨비’에 맞춰 어깨춤을 추었다. 원효 대사가 깨달음에 취해 추었다는 ‘무애춤’을 추며 산도깨비를 맞이하고 있었다.
■ 2005년 무등산 풍경소리 예정표
날짜───이야기───손님───노래손님───이벤트
31회 4월 22일───도법 스님/고진하───박강수───등불에 소원적기
32회 5월 15일───이해인 수녀/박석무───이성원───창포물 머리감기
33회 6월 17일───이성부───이정열───맨발로 숲길걷기
34회 7월 15일───김유진───김의철───황토물 염색/별 관찰
35회 8월 19일───유종화───박문옥───풀잎공예/달빛산행
36회 9월 16일───김현장───윤진철/범능스님───샤먼(고래춤)
37회 10월 14일───나종영───인디밴드(임의진)───사진,그림전시
38회 11월 18일───박그림───신명───동물의 발자국전시, 그리기
39회 12월 16일───김민해 목사───김용우───평화기도/자유명상
무등산 풍경소리(www.pgsori.org) 062-2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