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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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심을 놓으라"
[설선대법회 특집]9-대진 스님이 말하는 '금강경' 선공부


사진은 2004년 서울 보문사에서 열린 대진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경청하고 있는 불자들.


“방아를 다 찧었느냐?”

“다 찧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키질만 하면 됩니다.”

그날 밤 늦게 오조홍인 대사는 혜능 행자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 아무도 모르게 <금강경>을 강의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

혜능은 이 구절에 이르러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이날 밤 홍인 대사는 혜능을 선종의 제6조로 정하고 전법의 징표로 가사와 발우를 물려준다. 육조혜능 스님과 <금강경>과의 기연이다.

“본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과 전등법어로 한다”는 조계종헌의 규정에서 보듯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이자, 불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경전 중의 하나이다.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이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택한 것은 “한 곳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항상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일으키고, 모양으로 부처를 찾거나 보지 말 것을 강조한 정신” 때문이다.

또 인욕, 보시바라밀 등을 강조한 〈금강경〉 실천행 역시 소의경전으로 만든 이유 중 하나에 포함된다. 육조혜능 스님이 <금강경>으로 깨친 후 중시한 것도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서울 보문사에 매년 ‘선(禪)으로 본 <금강경>강의’를 개최해 선객들의 주목을 받은 대진 스님(백장암선원)은 “<금강경> 법문을 듣고 기억하거나 더 알려고도 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무심(無心), 무념(無念)이 되는 것이 <금강경>을 바로 듣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님은 “불법과 세간법에 대한 집착, 열반과 해탈, 깨달음이란 모든 개념을 내려놓고 순결한 텅빔 속에서 침묵과 휴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금강경> 공부의 요체라고 말한다.


다음은 대진 스님의 <금강경> 강의에서 요약한 마음 공부법이다.


‘지금 여기’서 설해진다

<금강경>은 2500년전의 한때(一時)만 설해진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설해지고 있다. 삶에 대한 헐떡임과 욕망, 갈망이 모두 사라졌을 때 부처님의 맑고 빛나는 눈동자와 고요한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귀와 의식을 활짝 열면 <금강경>의 어느 한 구절이 여러분을 일깨울지 모른다. 모든 시비와 분별심을 내려놓고 침묵 속에서 법문을 듣는다면 <금강경>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통해 설해진다.


모양으로 부처를 찾거나 보지말고

순결한 텅빔 속에서 집착없는 삶을



깨달음은 마음과 무관

‘깨달음의 마음’이란 없다. 오히려 깨달음은 마음과 무관하다. 진여심이나 평상심과 같은 마음은 없다. 그런 말들은 대상에 집착하지 말라고 가설한 명칭이다. 이 마음의 이면에 뭔가 있다고 허망한 생각을 버리라. ‘무심(無心)’을 삼독(탐진치)이 없어진 마음이라 말해서는 안된다. 무심이란 말 그대로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이 있는 한 성인과 범부, 선과 악, 번뇌와 보리가 한결같을 수 없다. 마음이 사라져야만 이러한 분별심이 사라진다. 깨달음은 무심이 주는 선물이다. 일심이 아닌 무심, 일념이 아닌 무념, 진심과 보리심이 아닌 무심이 돼야 한다.


‘어떻게’ 하려는 순간 이미 어긋난다

깨달음에서 ‘어떻게?’란 말은 붙을 수 없다. 어떤 의도와 노력으로 자기를 뜯어고치고 향상시키려는 몸부림을 멈추고 침묵 속에서 휴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이미 주어져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고 찾아 헤매는 동안은 깨달음은 없다. 진정한 휴식이 찾아올 때 깨달음의 꽃은 피어난다.


대진 스님.


깨어있는 찰나찰나가 축제

깨달음과 열반은 저 멀리 설정된 이상향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깨어있다면 찰나찰나 축제가 될 것이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기 위해서는 아상(我相)을 내려놓아야 한다. 열반은 이미 주어져 있다. 여러분은 이미 생사를 넘어서 있다. 이 순간 이렇게 피어있다. 내가 있다는 한 생각이 없다면 삶의 애착과 고통, 중생이라는 생각, 열반의 세계가 모두 허구이자 꿈일 뿐이다.



머물 곳을 찾지 말라

여러분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몸의 세포와 맥박은 물론 생각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니 안주할 곳을 찾는 순간 무덤이 된다. 이것이다 싶어 잡으려 할 때는 이미 어긋난다. 머물지 않고 집착이 없을 때 늘 살아있게 된다.



마음은 조복할 대상이 아니다

마음을 항복시키려 하지 말아야 한다. 몸을 항복받은 후 자기 마음과 싸움을 하지만, 이는 자신을 서서히 죽이고 새로운 아집을 형성한다. 존재하지 않는 마음과 왜 힘들여 싸워야 하는가. 하늘 높이 날아 오를 기회의 시간은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고 침묵 속에서 귀기울일 때 주어진다.



자아의식 버릴 때 참된 보시 가능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발동하면 자비심도 사라진다. 이 자아라는 특성은 자기자신 보다 소중한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와 분리된 자아의식이 있는 한 외롭고 빈곤하다.

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형색에 머물지 말고 보시해야한다. 아무 조건없이, 타인의 삶을 그대로 인정한 채 나를 잊고 보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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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2005-04-01 오후 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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