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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수행을 제대로 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고.” 갓 수행에 입문한 사람들은 물론 간화선 중참자들이라도 갖는 고민거리다. 게다가 직장과 가정 등 일상생활을 하는 재가자들로서는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그럼 간화선 수행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구체적인 실참법, 화두 선택법, 수행과정에서 생기는 병통과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 등을 조계종이 발간 준비 중인 ‘(가제)조계종 수행지침서 간화선’과 관련 서적을 통해 알아본다.
■ 좌선 자세
좌선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을 집중하여 삼매에 드는 것이다. 좌선자세는 명상과 정신집중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 자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가부좌를 하고 호흡을 조절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번뇌나 망상 속에 헤매거나 주위의 경계나 사물에 집착하지 않도록 자신의 본래면목을 되찾는 훈련이다.
좌선의 구체적인 자세는 고요한 곳에서 두터운 방석을 깔고 하며, 발은 두 발을 반대편 넓적 다리 위에 놓는 가부좌가 기본이다. 이 때 어느 쪽 발이 위로 와도 상관없지만 몸 전체의 균형을 위해서는 두 발을 번갈아 위에 두는 것이 좋다. 또 두 발은 ‘일(一)’ 자가 되어 몸이 정삼각형을 이루어야 하며, 다리가 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두 손은 포개서 발 위에 편하게 놓는데 위에 두는 손은 발의 순서와 일치하면 된다. 이 때 두 엄지손가락 끝은 서로 맞대야 한다. 눈은 지그시 떠서 졸음을 쫓아야 하며 시선은 몸을 앞으로 구부려서 손끝이 닿는 지점에 고정시키는 것이 좋다.
다리가 아플 경우는 살며시 바꾸어 놓아도 무방하다. 망념이 일어나면 다만 망념인 줄 알아채면 저절로 사라지니 절대로 붙들고 씨름할 필요가 없다.
좌선 끝낼 때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집단으로 좌선하는 선방에서는 끝내는 신호에 따르기만 하면 되지만 혼자서 좌선하고 있을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좌선이 끝나 일어설 때에는 천천히 몸을 움직인 후에 편안히 일어나고 갑자기 일어서서는 안 된다. 좌선에서 일어난 뒤에는 어느 때나 항상 좌선의 방법에 의해 선정(禪定)의 힘을 보호하고 유지하기를 어린애를 돌보듯 해야 한다.
스승이 내린 화두 자신에게 맞다 안 맞다 판단해서 안돼
두 발 반대편 넓적 다리에 올리고 다리 들리지 않게 주의
■ 화두의 결택
화두의 생명은 무엇인가. 철저히 상대적 개념의 세계를 벗어난 자리에서 모든 것을 보고 행동하는 선의 특징에 있다. 화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말로 몸과 마음에 의심의 열기를 가득 채워, 마침내 그 의심의 둑이 터지는 경지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화두도 발심이 온전히 안 된 상태에서는 소용이 없다. 자신이 깨닫고자 하는 간절한 목마름의 단계인 발심이 없이는 화두를 들 수도 타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발심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발심은 생사 고를 뛰어 넘어 근원적 자유를 실현하겠다는 간절한 염원이 있어야 한다. 특히 화두참구는 삶 속에서 자신의 본래면목에 대한 진정한 의심이 일어나면 기필코 해결해 내리라는 마음을 내고 물러섬 없이 몰입해 들어가야 한다.
화두의 결택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화두 자체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사람에 따라 더 잘 들리는 화두가 있고, 그렇지 않은 화두가 있을 뿐이다. 수행자의 타고난 됨됨이나 살아온 과정 등에 따라 간절한 의심을 촉발시킬 수 있는 화두가 분명히 있다. 때문에 수행자의 기틀에 맞는 화두를 잘 선택해 줄 수 있는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야 한다.
수행자는 스승이 선택해준 화두를 붙들고 한결같이 참구해야 한다. 어떤 화두든 하나의 화두만 꿰뚫으면 공안의 깊고 낮음, 어렵고 쉬움, 같고 다름에 관계없이 모든 화두를 타파하게 된다.
특히 화두를 선택할 때는 대개 자신의 근기에 맞게 택하고 걸고리에 물리듯 걸리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자신의 화두가 된다. 일단 한번 정한 화두는 함부로 바꾸지 말고 의심의 끝을 타파하려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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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두 선택시 주의할 점
자신에게 꼭 맞는 화두를 고집하면 안 된다. 화두는 옛 선지식이 저마다 다른 수행자의 기틀에 맞춰 적절하게 쓴 영약이다. 선지식은 무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그 집착을 깨뜨리기 위해 화두를 주고, 유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그 유를 깨뜨리기 위한 화두를 줬다. 때문에 수행자는 선지식이 제시한 화두에 쉽게 의심이 걸리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는 스승이 내려준 화두에 대해 ‘그것이 자신에게 맞다 안 맞다’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화두의 내용을 의심해야지 그 자체에 시비를 삼는 것은 발심이 잘못돼 있거나 스승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에 그렇다.
화두는 확고한 발심이 됐을 때 참구해야 한다. 발심이 안 된 상태에서 억지로 조급하게 화두를 들게 되면 병통이 생긴다. 그래서 화두는 선지식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가르침 속에서 받아야 한다. 진정한 선지식이 자신의 온 생명을 내걸 수 있는 화두를 제시했을 때만이 그 화두는 활구로서 작용하게 된다.
화두는 오직 한 화두만을 들고서 지속적으로 공부해 나가야 한다. 화두를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 화두 하나를 타파하면 다른 화두도 자연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화두를 바꿔 가며 참구할 필요가 없다.
큰 믿음·분심·의심이 ‘한소식’ 열어줘
수식관 때 호흡 세다가 숫자 잊으면 다시 시작
'빨리 이뤄야겠다' 조급하면 신경 날카로워져
■ 호흡
수식관(數息觀)은 좌선을 하고 있는 자기의 호흡을 하나하나 세는 관법인데, 호흡을 세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 하나는 단전호흡을 하고 있는 자기의 호흡을 하나에서 열까지 혹은 스물까지 마음으로 관찰하면서 숫자가 틀리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시켜 세어 보는 것이다.
호흡은 한 번 들여 마셨다가 내쉬는 것을 하나로 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혹은 스물까지 틀리지 않고 세었다면 다시 열이나 스물에서 거꾸로 세어 내려온다. 중간에 잡념이 일어나 숫자를 잊어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또 다른 수식관은 숨을 천천히 들여 마시면서 ‘하~나’하고 단전에 완전히 들여보내고 잠시 단전에 머물게 한 뒤, 숨을 천천히 내쉬면서 ‘두~울’하면서 마음속으로 자기의 호흡을 관찰하며 세어 보는 방법이다.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체질과 호흡의 리듬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세어 본다.
이 방법이 초보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잡념이 들어갈 시간적인 여유와 공간을 두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자기의 호흡과 일치되어 삼매에 들 수 있다. 이렇게 반복하여 자신의 호흡을 마음으로 관찰하는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세고 있는 마음의 목소리를 마음의 귀로 또렷하게 듣고 자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 참구법
화두참구의 핵심은 간절한 의심을 일으키는데 있다. 가령 ‘이뭣고’ 화두를 예로 든다면, ‘이 뭣고’ 할 때 ‘이’를 약간 길게 하면서 마음속으로 ‘이~’하는 그 놈이 ‘뭣고?’하며 의심을 일으키든지, 아니면 ‘이~뭣~고?’하면서 의심을 길고 간절하게 가져가면 된다.
이렇게 의심을 강조하는 이유는 의심이 몰록 터져 나와야 망념이 달라붙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화두를 들며 역력하게 깨어있게 되면 망념이 정지되는 순간이 거듭 오게 된다. 이런 상태가 굳건해져 어떤 경우라도 ‘이뭣고?’ 하고 드는 화두를 놓치는 일이 없게 돼 오고 가는 생각의 길이 단절돼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을 일컬어 의심덩어리 곧 의단(疑團)이라 한다. 이 의심덩어리를 타파하면 확철대오하게 된다. 여기에 화두참구의 단계에서 중요한 것이 삼심(三心)이다. 첫째로 화두에 큰 믿음을 가져야 하는 대심신이고, 둘째는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 자책감을 치밀어 오는 대분심이다.
마지막으로 화두에 대해 철두철미한 의심하는 대의심이다. 이 세 가지가 마치 솥발처럼 작용해야 한다.
■ 화두참구 시 주의할 점
화두를 참구(參究)하는 것을 화두를 관(觀)하는 것과 혼동하면 안 된다. 화두참구는 화두에 의정을 일으킨다는 뜻이고, 관한다는 것은 화두에 정신을 집중한다는 의미다. 화두는 참구해야지 그냥 집중만 해서는 진정한 의심이 일어나기 어렵다. 참구란 오롯이 의정을 이룬 상태에서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인 반면 관이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계속 집중해 관찰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왜 화두를 관해서는 안 되는가. 화두를 관하면 나와 관찰되는 화두가 서로 나눠지게 된다. 즉 주객이 분리된 상태에서 화두를 대상화해 관하면 그것을 화두를 드는 것이 아니다. 화두를 따라가며 관찰하는 것이다. 나라는 주관과 화두라는 객관이 나눠져 나와 대상, 주관과 객관, 나와 화두가 분리된다. 화두참구는 화두가 나와 하나가 돼 삼매에 들어야 한다. 요컨대 화두를 대상으로 관하면 나와 화두가 분리돼 타성일편이 되지 않는다. 관념으로 화두라는 하나의 허상을 만들어내 그 허상과 일치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둘째 화두가 들리지 않을 때 주력이나 화두를 입으로 소리 내어 외거나(誦話頭), 마음속으로 외면(念話頭) 안 된다. 화두참구의 생명은 의정을 일으키는 것인데, 만약 의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화두참구라 할 수 없다. 비록 잡념 없이 연이어 외워 화두에 지속적으로 몰두 할 수 있더라도 그런 방법으로는 절대로 화두를 타파할 수 없다.
■ 병통의 극복
좌선을 할 때에 여러 가지 장애가 생긴다. 이것을 ‘마군의 장애’라고 해서 ‘선병’이라고 한다. 진각 혜심 선사는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에서 ‘조주 무자’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열 가지 병통(十種病)을 말하고 있다. △있다ㆍ없다로 이해하지 말며 △이치로 이해하지 말고 △분별의식으로 헤아리거나 알아맞히려 하지 말며 △눈썹을 움직이거나 눈을 깜빡거리는 것에 알음알음를 두지 말고 △말과 글의 틀로 살림살이를 짓지 말며 △아무 일 없는 속에 빠져 있지 말고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을 항해 알려고 말며 △문자를 끌어와 증거 삼지 말고 △유무를 초월한 참된 무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말며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라고 강조한다. 이상 10가지 병통은 말 길과 생각의 길이 끊긴 곳에서 공부하지 않은 데에서 기인한다.
특히 ‘어서 빨리 이뤄야지’ 하는 속효심(速效心)을 내서는 안 된다. 속효심은 상기병을 유발하기도 하고 성급한 마음만 키워 신경을 날카롭게 한다. 이런 속효심이 생길수록 화두공부는 더디게 된다. 속효심을 내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른 발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깨닫고자 하는 그 마음이 망상이 돼 오히려 깨달음을 방해하고 마음만 조급해지게 한다.
병통 가운데 가장 큰 선병이 상기(上氣)다. 상기는 기운과 열기가 머리로 오르는 것을 말하는데, 발심이 안 된 상태에서 화두를 급히 든다든가 과격하게 혹은 억지로 들 때 머리가 깨질 듯 아프게 한다.
그럼 상기를 다스리는 법은 무엇인가. 우선 몸이 화끈화끈 해지면 바깥으로 나와 바람을 쐬고 마음을 쉬고 가다듬어 조용히 화두를 든다. 그래도 상기가 돼 머리가 아프면 새벽시간에 호흡법을 통해 상기를 내리도록 한다. 또 허리를 곧게 펴면 호흡이 자연스러워져 상기를 방지할 수 있다. 만약 상기병이 악화돼 도저히 화두를 들 수 없을 경우에는 절 수행으로 상기병을 고칠 수 있다.
또 화두를 빈틈없이 챙기지 못해 오는 ‘혼침(정신이 몽롱한 상태)’과 ‘도거(마음이 산란하여 들떠는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음식물의 종류와 양을 조절하거나 자세를 바르게 하거나 잠자는 시간을 잘 조절하면 된다. 이외 ‘수마(잠 마군)’와 ‘색욕’은 화두 수행자가 반드시 이겨내야 할 장애다. 먼저 수마를 다스리는 법은 참선할 때 반드시 눈을 뜨고 해야 한다. 그리고 음식을 알맞게 섭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