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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둘이 아닌데, 어찌 둘이 됩니까?”
“어찌 분별하느냐?”
“스승과 제자가 둘인데, 어찌 분별을 안 하겠습니까?”
“악! 나가거라.”
“어디로 나갈까요?”
보림사 회주 묵산 스님이 지난 1955년 고봉 스님에게 던진 ‘불이법문(不二法門)’ 법거량이다. 전광석화와 같이 오가는 즉문즉답(卽問卽答)에 두 스님의 선기가 번뜩인다.
인가(認可)를 중시하는 선종. 법거량은 화두참구로 깨달음을 얻는 간화선 수행전통에서 중요한 점검법이다. 수행자의 화두타파 유무, 깨달음의 증득 여부 등을 판단할 기준이 법거량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 법거량이 출·재가자들에게 던져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단연 선문답을 통한 자기 공부 점검에 있다. 또 출·재가자들에게 깨달음의 기연을 주는 공부법이 된다.
■ 복원되는 법거량 전통
백양사 고불총림이 1998년, 2000년, 그리고 부산 해운정사가 2002년에 조사선(祖師禪) 선양과 승속의 구별 없이 깨달음을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무차선법회를 봉행했다. 이들 무차선법회는 ‘진정한 고수는 드물고 앵무새만 늘고 있다’는 불교계의 지적을 해소하는 중요한 법회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런 법거량전통 복원 노력은 범어사와 현대불교신문사가 공동으로 봉행 중인 ‘간화선 대중화를 위한 10대 선사 초청 설선대법회’로 이어진다. 간화선 수행법을 일반 재가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알리는 자리라는 점, 특히 5월 7일 마지막 회향법회에는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이 법주로 나서 무차선법회를 연다는 점이 그렇다.
법회는 질의법사 및 재가 질의자가 법회별로 2~3 명씩 지정돼 법문후 청중을 대신해 법주 스님에게 질문해 자세한 대답을 이끌어내고 있다. 질의법사도 수십년 선방에서 공부한 선원장급 구참 수좌와 수십년 수행이력의 재가자들로 구성돼 질문의 수준을 한층 높였다.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 대원 스님은 “오늘날 한국불교계가 문자선, 의리선, 구두선 등으로 ‘말 길’로만 선어록을 외는 법거량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무차선법회 등과 같은 법석을 통해 말 이전의 소식을 보고 들어 마음자리에 곧장 계합할 수 있는 선문답이 활발해 질 것”이라고 평가한다.
'즉문즉답'으로 깨달음 이끄는 공부법 부각
범어사 설선법회, 백양사 무차선 법회 등
큰 스님들께 지도점검 받는 귀한 기회
상대방 근기 따라 깨침 주는 것이 핵심
자신의 공부 미숙함까지 화두 삼아야
■ 법거량(法擧量)이란
법거량은 일반적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뤄진다. 제자는 자신의 깨달음의 경계를 드러내고, 스승은 제자의 공부 됨됨이를 점검한다. 또 이미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은 깨친 법을 서로 확인하기도 한다. 그래서 법거량을 일반적으로 ‘선문답’이라고 한다.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경계를 드러내고 확인하기에 그렇다.
법거량의 방식은 ‘즉문즉답’으로 진행된다. 한 치의 양보도 알음알이도 끼어들 틈 없이 치열하다. ‘할’(喝깨우쳐주기 위해 ‘억!’하고 큰 소리를 지름)과 ‘방’(棒죽비나 손으로 일격을 가해 깨우침을 주는 행위)까지 날린다.
법거량의 이 같은 ‘파격성’은 ‘응병여약(應病與藥)’의 원리에 있다. 즉 말, 행동, 소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자가 앓고 있는 병(의심)에 맞춰 약(점검)을 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근기에 따라 직지인심의 기연을 제자에게 만들어 주는 것이 법거량의 핵심이다.
■ 어떤 가르침을 주는가?
법거량은 수행자에게 화두참구의 필수 조건인 3심(의심, 신심, 발심)을 일으킨다. 스승이 제자에게 발심의 기회, 신심 증대, 의심 해소 등의 기폭제를 준다. 이를 통해 공부의 진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법거량의 이 같은 가르침은 중국 임제 선사가 스승 황벽 선사에게 맞은 ‘30방(棒)’에서도 엿볼 수 있다. 3년을 넘게 공부를 했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자, 임제 선사는 황벽 선사에게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세 번 찾아가 세 번 묻는다. 하지만 족족 30방을 맞는다.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은 임제 선사는 고한의 대우 선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한다. 임제 선사는 “황벽이 그렇게 자비스러운 법을 편다”는 대우 선사의 말을 듣고, “황벽의 불법도 몇 푼어치 안되는구나!”하고 확철대오를 한다.
황벽 선사의 30방은 제자에게 강한 의심을 불러일으켜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알 듯 말 듯 하지만 법거량이 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봉화 각화사 선덕 고우 스님은 “법거량은 법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를 문답을 통해 시험하는 것”이라며 “법의 궁금증을 일으켜 공부하려는 의지를 북돋아줘 조사선 수행점검법의 핵심이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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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거량을 통해 가져야 할 불자의 자세는?
재가불자 간화선 수행모임 선도회 박영재 지도법사는 “법거량은 일종의 ‘응용공안’”이라고 말한다. 즉 법거량은 역대 조사들이 주고받은 공안, 선어록 등의 내용인 만큼 그것들을 화두 참구하듯 공부하는 것이다.
박 법사는 특히 질문의 주체에 따라 법거량의 유형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 먼저 대기설법을 연원으로 한 법거량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그 한계와 문제점을 확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박 법사는 공부의 깊이를 헤아려 본다는 측면에서 법거량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수행이 깊지 못한 사람들이 ‘왜 마음공부에 미숙했는지’에 대한 반성조차 화두참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 수행자는 늘 스스로 여법한 자리에서 법을 올바르게 드러내고 경계나 말에 쫓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시험ㆍ점검해야 한다고 박 법사는 말한다.
이를 위해 박 법사는 수행자들은 우선 스승을 부단히 대면하면서 정기적인 입실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실질적인 실참이 이뤄지고, 궁극적으로는 선교쌍수(禪敎雙修)가 된다는 것이다. 또 법문이나 경전, 선어록 등을 통해 불법에 대한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