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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론 정립이 반밖에 되지 않은 상태로 불교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수행법으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인연을 맺은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 염송을 했다. 진언수행의 기본은 몸으로 결인(비로자나불 수인과 결가부좌)하고, 입으로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고, 뜻으로 관(마음으로 법신불을 관함)하면서 부처님의 몸과 입과 뜻을 좇아 이 몸 이대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언수행의 시작은 의문투성이였다. 내가 부처님의 말과 행동과 정신을 흉내 내는 것 일뿐 ‘내가 부처’라는 말은 동의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일상생활 속에서 입과 몸과 뜻으로 짓는 죄업이 많은데, 어떻게 내가 법신불이 되겠어’ 하며 의심만 키워갔다. 또 불공의 의미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미연(未然)의 복 심고 미맹(未盲)의 화 끊는다’라는 진각종 교리를 집약한 <진각교전(眞覺敎典)>의 구절처럼, 눈앞에 닥친 일들(시험, 입학, 취직 등)을 해결하는 데만 급급한 나를 볼 때마다 푸념이 커져만 갔다.
10년을 넘게 이렇게 진언수행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수행의 문제점을 깨닫게 됐다. 원인은 내가 진언수행을 너무 기복의 수단으로만 여겼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시험을 잘 보고 싶다거나 원하는 소원이 있다거나 할 때, 염송과 희사를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소원도 커지고 바라는 것도 많아지면서 점점 희사와 염송이 수단이 되어 간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난 삼밀관행(三密觀行)의 요체는 어떤 것일까. 또 어떻게 육자진언을 염송해야 하고, 육자진언의 뜻은 무엇일까? 진언수행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렇게 진언을 간절히 외는 어느 순간, 내가 지은 모든 악업에 대한 참회가 들었다. 그러면서 진언수행이 악업의 연으로 맺게 될 나쁜 일들을 현명하게 헤쳐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결국 난 ‘내가 법신불’이라는 의미를 체득할 수 있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시방삼세 하나이라 온 우주에 충만하여 없는 곳이 없으므로 가까이 곧 내 마음에 있는 것을 먼저알라”는 <진각교전>의 말처럼, 아집을 버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마음속엔 이미 부처님의 마음이 들어와 있었다. 또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도 불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언수행은 하면 할수록 내 속의 불성을 생각해보고 깨닫게 하는 시간을 늘려줬다. 특히 죄를 짓기 쉬운 몸, 입, 마음(三業)은 다시 생각하면 더 큰 복을 지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된다는 것이 진언수행의 삼밀(三密)관행의 핵심이라는 것 또한 깨달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