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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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경+참선’을 통해 선지(禪旨) 밝힌다.
‘도심수행도량을 찾아서②’, 서울 삼보선원
백발이 성성한 이정화 노보살. 아흔에도 참선 정진 열기가 뜨겁다.
자부심이 대단했다. 첫 출발 때문이었다. 당대 선지식 성철, 청담 스님이 백성욱 서돈각 홍정식 거사 등의 걸출한 석학과 함께 1964년 창립한 ‘삼보장학회’가 삼보선원의 모태였기에 그렇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국 간화선풍을 드날린 성철 스님 등의 ‘봉암사결사’ 정신을 도심 한복판에 지금까지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긍심은 남달랐다.
3월 22일, 서울 정릉에 자리 잡은 삼보선원을 찾았다. 삼보선원의 수행 프로그램 특징은 어떤지, 또 어떻게 간화선 수행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언제든지 서로의 경계를 내보이고 점검한다


삼보선원 3층 선방. 백발이 성성한 이정화 씨(90ㆍ광명자)가 말문을 연다.
“참선 시간은 늘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어요.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 나를 없앨 수 있더군요. ‘이뭣고’ 화두도 잘 들리고요.”
20년 전,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에게 ‘이뭣고’ 화두를 받은 이 씨. 매일 새벽6시 집에서 갖는 참선 시간이면 번뇌 망상이 저절로 없어지는 경험을 한다고 말한다.
“맞아요. 수행은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이뤄져요. 꽉 막히는 데에서 공부가 되거든요.”
삼보선원 초대 이사장을 지낸 조호정 씨(69ㆍ관해)가 말을 받는다.
구참자들간 문답은 이처럼 서로의 안목을 드러내며 공부 됨됨이를 점검해준다. 때론 치열한 선문답도 오가지만, 특별히 문제되는 것은 없다. 30년 넘게 같은 죽비소리에 가부좌를 틀어온 도반들이기 때문이다.
삼보선원은 1995년 개원했다. 얼핏 보면 역사가 짧아 보이지만, 그 전신은 1984년 시민선방에서 비롯된다. 그간 거쳐 간 재가선객들도 많다. 삼보선원의 전신인 삼보법회를 창립한 이한상 거사를 비롯해 선도회 지도법사 박영재 서강대 교수와 권영두 거사 등 쟁쟁한 재가선객들이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


#‘봉암사 결사’ 정신 계승 단체임을 자임


서울 정릉 삼보선원 불자들이 3월 22일 선방에서 참선 정진을 하고 있다. 사진=고영배 기자
삼보선원이 주창하는 수행정신은 ‘봉암사 결사’다. 지난 1947년 성철, 청담, 자운, 우봉 스님이 ‘부처님 법대로 살며 수행하자’는 원력을 세우고 문경 봉암사에서 결사한 이 수행운동을 삼보선원은 근본이념으로 삼는다. 지난 1995년 시민선방을 삼보선원으로 명칭을 전환할 때, 봉암결사에 참여했던 前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을 증명법사로 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삼보선원이 이처럼 봉암결사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봉암결사를 주도한 성철, 청담 스님이 삼보회 전신인 삼보장학회 설립을 선도했기에 그렇다. 삼보선원이 재가선원이지만 그 원력이 큰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독경+참선’을 통해 선지(禪旨) 밝힌다


삼보선원 수행프로그램의 특징은 ‘독경+참선’에 있다. 이는 먼저 선지(禪旨)법문이 오롯이 담긴 경전과 선어록 등을 먼저 배우고 참선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육조단경> <달마혈맥론> <벽암록> <이입사행론> 등이 강의됐다. 현재는 매주 일요일에 <화엄경> <법구경> <사십이장경> 등을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 동국대 박경준, 정병조 교수 등이 강의를 맡고 있다.
삼보선원의 특징은 무엇보다 1대1 지도점검에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반부터 2시간 정도 좌선과 개인점검인 입실지도(入室指導)를 하고 있다. 입실지도는 초대 종달 이희익(선도회 창립자) 거사에 이어 97년 8월부터 정경문(62) 거사가, 선도회 최고령자인 권영두(76) 거사는 입승 소임을 맡고 있다.
특히 최근 수덕사 혜암 스님의 제자인 청봉 스님을 지도법사로 추대해 체계적인 수행지도를 하고 있다. 화두 점검은 매주 일요일(오후2시~4시)과 화ㆍ목ㆍ토요일(오후4시 30분~5시 30분)에 진행된다. (02)913-2859 www.sambobuddha.org
김철우 기자 | in-gan@buddhapia.com
2005-03-23 오후 4:50:00
 
한마디
불교계의 난점이 같은 불자끼리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어느 선지식의 회상에 입문한 불자들은 페를 지어 자기가 받드는 선지식만이 절대로 믿고 다른 선지식은 배척한다는 점이다. 이교도들은 저렇게 교화하는데 정성을 쏟고 협조들하는데 불교도들은 포교할려는 사람을 물고 늘어진다. 이래서 나는 표교를 포기한지 오래되었다.
(2005-03-31 오후 3:42:58)
27
미련한 사람은 뜨거운 솥을 맨손으로 잡아 보고 나서야 뜨거운 줄아나 명철한 자는 불위에 올려져 있는 솥은 뜨거운 줄을 알기에 맨손으로 잡지 않는다. 남산에 구름이 일면 북산에 비오는 도리요. 앞집의 말이 배부르면 뒷집 소가 웃는 도리를 아찌 알거나 ! 빌고 또 빌겠습니다. 삼보선원의 불자님들이 바보가 아니시기를......
(2005-03-31 오후 12:39:58)
28
님이 아마 바른 선지식인듯하니 님의 소재나 이름을 밝혀야 선지식으로 모시지요. 세상이 생사해탈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더구만 따로히 선지식을 구할 필요가 있겠소? 님의 아호를 알려주셔야 내가 선전하여 선지식을 찾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줄 것아니요?
(2005-03-31 오후 12:22:51)
30
이름도 제대로 밝히지 않은 자지만 그 실체는 있는 법!! 삼보선원의 불자들이 바보가 아니라오. 혹 바보라 하더라도 바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했거늘 하물며 명색이 인가를 받았다 하는 분인데 아무려면 배울 것이 없으려고? 그런데 관심 갖는 사이에 저승길이 가깝다오, 님의 글을 보니 아직 까마득한데 화두나 열심히 두시구랴. 나는 시비가 독 공부인 단계는 지나서 이런데 기웃거려도 된다오. 하하
(2005-03-31 오후 12:19:36)
28
이봐요 민수씨! 어느 누가 이런 곳에서 개인을 공격하려 한다는 말입니까?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누가 누굴 깎아 내리려고 이러는 줄로 생각합니까? 삼보선원이라는 곳이 딱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차라리 불상을 잘 조성해 놓고 신심을 돋우는 것이 더 나은 것이지 예를 들자면 외도나 마구니 같은 자를 앉혀 놓고 법을 듣고 그 행을 따라한다치면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는 것이겠습니까? 이런 군소리가 들리면 한번 쯤 다시 생각해서 뒤를 돌아 보는 것이 바른 자세일 것입니다. 생사해탈의 문제라고 말하면서 눈에 동태껍질이 씌인줄도 모르고서 아무나 데려다가 법문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과 남을 함께 끌어안고 지옥으로 가기를 자청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잘 돌아보고 눈 밝은 선지식을 찾으시셔서 지도 법사로 모셔야 바른 길로 인도받게 될 것입니다. 빨대로 내다 보는 그런 안목으로 판단하여 일을 그르치는 것이 바로 중생의 일입니다. 자신의 안목이 그러한 줄 모르니까 그러하겠지만 자신을 모르면 남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그나마라도 다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생사를 해탈코자 법을 구하는 사람의 자세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하고 있어서는 바른 구도자의 자세가 아닐 것입니다. 정신차리시기 바랍니다.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기자님도 삼보선원만 알리고자 했다면 좀 도 신중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승가의 일원임을 잘 인식하시고 바른 정법만을 홍포하여야 한다는 것에 늘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잘뛰는 말도 채찍을 가한다는 말을 아실테니 이만 하겠습니다. 좋은 날되십시오.
(2005-03-31 오전 11:24:17)
28
개인을 공격하려면 정확한 근거를 들어야 합니다. 사감으로 전부를 보는 양 한다거나 몇 평 않되는 몸뚱이로 하는 행을 보고 평가한다면 마음의 세계를 가늠 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대개가 중생심은 상대심의 소유자라 상대심은 윤리나 도덕이나 게율에 중심을 두는 겁니다. 남보기에 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다 계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일겁니다. 기독교는 사랑을 중요하게 하지요. 남과 나 사이의 률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겠지요. 그러나 생사 해탈은 상대와의 관계가 아닙니다.나의 문제이고 확대해서 모두의 문제이지요. 윤리나 도덕이나 계율의 문제가 아닙니다.무인도에 혼자 사는데 계율이 필요할까요? 그러나 죽음.불안.외로움 윤회등은 있겠지요.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느 재가 단체를 이끌고 계시는 문거사란 분이 계시지만 그분도 여자문제나 돈문제로 시끄러운 적이 있지요. 그것과 생사해탈법과의 관련성을 따져봐야 합니다.상황에 따라서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가치관도 있는 겁니다.
(2005-03-30 오전 8: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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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습니다. 고민도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청봉 스님만 생각한다면, 기사를 못 썼을 것입니다. 그럼 왜 취재를 했냐? 이유는 이렇습니다. 삼보선원에 대해 독자님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삼보선원은 청봉 스님과 별개입니다. 어찌됐든 재가불자들이 참선 정진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까? 그 모습만을 기사에 담으려했습니다.
(2005-03-29 오후 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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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스님이 어떤 스님인줄 안다면 지도법사로 추대하지는 않았을텐데... 본래로야 선악이 없다지만 스스로 어리석어서 사람을 속이고 계를 파하는 데야 선악이 없겠는가. 기사를 쓰는 사람이나 그런 승도 아니고 속도 아닌 어리석은 자를 지도법사라고 추대하고 강의를 듣고 배우는 삼보선원이나 똑같군. 어찌하여 사람을 보는 눈이 그렇게도 없을꼬? 딱하고 딱할쎄라. 머지않아 삼보선원에도 말썽이 나겠군. 기자님은 무차별적으로 전파되는 언론의 속성을 잘 아셔야 합니다. 대충 아무거나 공간을 메꾸려 해서는 큰일 낼 겁니다. 사명감을 갖으시고 엄밀하게 사람을 구분하고 기사를 쓰셔야 할 것이빈다. 지금 방배동 불심정사의 속사정을 아시고서 이런 선전글을 쓰시는 겁니까? 제발 언론에서 먼저 정신차리고 삼보선원도 눈 크게 뜨시고 잘 보시기 바라겠습니다. 같은 불자로 딱해서 한마디 했습니다.
(2005-03-29 오후 5: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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