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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체득하기 위해 사경법회를 여는 초보불자들의 신행모임, 화림선단(花林禪團 또는 花林船團). ‘소수정예’를 꿈꾸는 그들의 모임 운영방식은 남다른 구석이 많다. 서로 다른 직업, 지역, 나이에도 불구하고 법을 나누는 도반이 된 화림선단의 사경법회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물은 대자비로 흐른 지혜의 물이요, 먹은 능엄선정의 굳은 먹입니다. 선정의 먹으로 지혜수를 갈아서 실상법신의 문자를 옮겨 씁니다.”
3월 14일 밤, 12명의 불자들이 외는 ‘사경관념문’이 의왕시 내손동에 위치한 용화사(주지 덕민)의 관음전에 울려퍼진다. “또르륵” 목탁이 일성에 절을 하고 또 한번 울리면 <반야심경> 경구를 독송한다. 다음은 허리를 숙이고 경전을 옮겨 쓴다. 법당안은 사경의 구도열로 뜨겁게 달구어졌다.
이들은 3년전 ‘불교가 좋아서’ ‘실천하는 불자로 살기 위해’ 모인 수원, 의왕, 군포 등 인근지역 직장인들로, 6개월여 전부터 화림선단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졌고 연령층도 30대 초반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사경법회가 열리던 이날, 가장 먼저 법당에 들어선 김성진 교사(제천농고 조경과)가 좌복을 깔고 입정에 들었다. 그는 회원 가운데 가장 먼 충북 제천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왔다. 법우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밤 8시, 용화사 지철 스님의 집전으로 법회가 열렸다. 사경은 <천수경> 독경과 관음정근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야 시작됐다. 막내둥이 손경수 세무사(수원 가람세무회계컨설팅)가 목탁을 들고 회원들의 마음을 다잡는다.
“사경을 할 때에는 청정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경은 불법을 우리 마음에 채우고 자기 것으로 실행하는 기도이며 수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원들은 반듯하게 줄을 맞춰 선 뒤 가져왔던 가방과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하고서야 사경에 임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생각들이 일어났다가 스러지기를 수십번, 한생각 일어날 때마다 참회를 거듭했다”는 이미향씨(요가 강사)는 시종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낼 겨를도 없이 사경에 몰입하고 있었다.
사경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방출장을 취소한 박종설씨(건축사 대표)도 무릎을 꿇은채 한자한자 써내려가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그는 “늘 독송하던 경전인데도 사경을 해보니 뜻을 이해하게 돼 절로 환희심이 일어난다”며 “사무실에서도 마음이 산란할때면 사경을 한다”고 쑥스레 털어놓았다.
초심자가 대부분인 화림선단은 모임이 결성된 이후 경전 독송과 요가를 스스로 익혀왔다. 그러면서도 초청법사의 어려운 법문은 마다했다. ‘법문 없는 법회’로 6개월을 끌어온 것. 그래서 택한 것이 사경이었다.
회장을 맡고 있는 민학기 변호사는 “아무리 좋은 불교라도 그릇이 갖춰져있지 않으면 담을 수 없다는 회원들의 뜻에 따라 공부할 수 있는 그릇을 먼저 갖춰나가기 위한 수행으로 사경을 택했다”며 “알아야 몸에서 우러나는 것처럼 우리는 실천하는 불자가 되기 위해 불교를 배워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2주에 한번 모이는 화림선단 회원들에게 법회는 직장생활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맛보는 시간이다. 늦은 시간,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의 참석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직장불자회와는 달리 직장내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아 회원들의 마음이 한결 편하다.
눈에 띠는 화림선단의 운영준칙 한 가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절대로….’ 어떻게 보면 매정해 보이는 이 준칙을 화림선단은 고수한다.
화림선단은 사경 외에도 요가와 참선을 겸하고 있다. 법회가 끝난 뒤에는 다담으로 그간의 수행과 일상을 교감한다. 10시가 넘은 시각, 그제서야 회원들은 용화사 일주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