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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참선 중에서 간화선으로 가는 방법은 쉽지 않았다. 늘 새로운 마음가짐과 수행법을 갖춰야 했다.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공부의 진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이 기초 선서의 탐독. 먼저 <임제록>을 읽기 시작했다. 한 줄 한 줄 읽다보니 <임제록>을 손에서 뗄 수 없었다. 그간 참선점검표를 써오면서 경험했던 마음공부의 궁금증과 어려움들이 하나하나 해결됐다. 아니 흥미로웠다. 때문에 난 <임제록>을 거의 외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동안 참선수행경험과 공부 됨됨이를 점검받기 위해 서옹 스님을 찾아갔다. 법문도 듣고, 친견의 기회를 수시로 가졌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스님께 이런 질문을 드렸다.
“저는 나름대로 불서를 많이 접해 부처님의 말씀을 더러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저에겐 체험된 것이 아니어서 번잡함만 더해 갑니다. 어떻게 불교공부를 하면 좋겠습니까?”
서옹 스님은 “‘왜? 어째서, 마삼근, 이뭣고’를 불철주야로 의심해 들어가라”고 하셨다. 그 후로 난 주야로 20년간 화두참구를 계속했다.
초기에 한 3년을 쪼아대니, 온 몸이 서늘하고 청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순간순간 인과들이 풀어졌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충동들이 지나갔다. 그렇게 지켜보며 화두에 매달렸다.
어느 날, 다시 서옹 스님을 친견했다.
곧장 난 참선 공부에서 얻은 견처를 말씀드렸다. 그러자 스님은 “그게 다 생각이다. 생각에서 비롯됐으니, 또 생각으로 사라진다”다고 하셨다.
나는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생각이라도 이 미세한 생각은 병이 아닙니다”라고 했더니 스님은 “아, 피로하구나, 쉬고 싶다, 쉬고 싶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나는 그 후로 그 생각도 머물지 않고 그냥 의단(疑團)만 일으시키는 화두생활을 계속해갔다.
참선수행을 통한 마음공부는 내게 간화선에 대한 이해를 높여줬다. 참선은 활발발한 정신을 이어가는 것과 이 활발발한 정신은 부동심(不動心)에서 출발한다는 것.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움직임 없는 마음에서 활발발한 정신이 된다니 이상하지 않는가?’ 왜 그럴까 궁금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런 의문이 조금도 이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움직이기도 하고 움직이지 않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움직일 때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을 때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바로 ‘본마음’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본마음’이 아닌 ‘가짜 마음’은 움직일 때 움직이지 않고, 안 움직일 때 산란해지는 모순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본마음을 발견하는 것이 간화선 수행인가? 다시 고민했다. 또 화두를 집요하게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