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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수행은 하고 싶은데…, 책만 봐서는 잘 모르겠고.” 재가불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재가불자들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수행법별로 전문가를 대신 만나 물어봐줬으면….’
본지가 이런 고민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독자들과 함께 나섰다. 참선이면 참선, 염불이면 염불 등 각 수행법의 핵심과 구체적인 행법을 매월 한차례 지면에 담아 독자들을 찾아간다.
첫 회는 ‘선(線)을 그려, 선(禪)을 본다’는 사불(寫佛)수행의 고갱이를 알아본다. 사불수행 2년차 이현순(54ㆍ경기 마석), 초참자 김영숙(45ㆍ경기 광명) 씨가 3월 16일 사불수행연구회 부회장 법인 스님(서울 공덕사 주지)을 찾아 ‘사불수행의 ㄱㄴㄷ’를 물었다. (02)2066-8061
# 들숨은 ‘깊게’, 날숨은 ‘길게’
먼 길을 달려왔다. 새벽 6시에 경기 마석의 집을 나서 서울 구로구 공덕사까지 오는 데만 4시간이 걸렸다. 왜 그렇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을 찾았을까? 그것도 100일간 한 장씩 그린 ‘관세음보살사불지’를 양손에 들고서.
이유는 간단했다. 법인 스님을 뵙자마자 이현순 씨가 물은 질문에서 그 까닭을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큰 선을 그릴 때 붓끝이 흔들려요. 호흡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호흡을 길게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이현순)
“호흡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지요? 이 불자님의 호흡이 짧아서 그래요. 큰 호흡을 가지려면, 복식호흡을 해야 해요. 평소에도 의식적으로 깊게 들어 마시고 길고 천천히 내쉬는 연습을 하세요.”(법인 스님)
“사불수행을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호흡을 놓치는 일이 있는데요?”(이현순)
“그때그때 호흡을 챙기세요. 깊게 들이쉰 숨을 복부의 단전까지 끌고 내려가세요. 급하지도 늦게도 않게요. 그러면서 자기 호흡을 잘 가다듬으세요. 그런 다음, 들숨에서 한 호흡을 가지런히 가둬놓고 한 획씩 선을 그려나가면 됩니다.”(법인 스님)
그제서야 이씨의 고개가 끄덕인다. 최근 동안거 기간에 맞춰 관세음보살사불 100일기도 마친 이 씨는 사실 2년 전만 해도 붓 쥐는 법조차 몰랐다. 심지어 펼쳐놓은 밑그림만 봐도 어리둥절해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했다. 하지만 물을 사람이 없었다. 때문에 이 씨는 사불수행에 대한 의문을 2년 동안 가지고 있었다.
# ‘어머니’를 생각하듯 불보살을 관하라
질문 바통을 받은 사람은 올해 초 서울 만해대학 불교공예학과에서 사불수행을 시작한 김영숙씨. 눈빛에서 궁금증이 타오른다. 불보살의 모습을 관하는 관상법(觀像法)에 대한 질문부터 던진다.
“관상법이 사불수행의 핵심이라는데, 불보살님들의 모습이 잘 들어오지 않아요.”(김영숙)
“모든 불보살들을 어머니의 모습으로 관해보세요. 어머니가 늘 입는 옷, 짓는 미소들을 연상하면 내 마음에 어머니의 모습이 걸림 없이 들어오죠. 관상법도 마찬가지예요.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처럼 그대로 불보살의 상으로 마음에 옮기세요. 그러면 애써 상을 그려 내려하지 않아도 무의식중에 불보살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돼요.”(법인 스님)
# 사불은 마음에 ‘살아있는’ 자성불 확인
김영숙 씨의 질문이 끝나자, 이현순 씨가 ‘과연 사불로써 선수행이 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꺼내놓는다. 서울 조계사 등에서 10년 넘게 간화선 수행을 해온 이씨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다.
“무슨 말씀을요. 사불수행이 ‘사불선(寫佛禪)’이예요. 부처님을 그리면 부처가 된다는 말이지요. 내 손으로 직접 부처님을 모시면서 ‘내 안의 부처’를 확인하고, 그 자성불(自性佛)을 밖으로 그려내 자신의 눈으로 보며 부처와 하나 되는 수행법이기 때문이에요.”(법인 스님)
김영숙 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스님에게 묻는다.
“그럼, 사불선의 궁극적인 경지는 어떤 건가요?”
“굳이 부처님을 관상법으로 바로 보지 않아도, 붓끝으로 그리지 않아도 부처님이 내 안에 이미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사불선의 경지예요. 선과 부처님그리기가 한 덩어리가 되는 순간이지요.”(법인 스님)
# 감정이입은 금물…내 마음의 거울 보듯 해야
질문은 사불수행 할 때의 주의할 점으로 이어진다.
“사불수행을 하는데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요?”(김영숙)
“감정이입을 해서는 안 돼요. 망상과 번뇌가 관상과 호흡에 장애로 작용하게 되니까요. 초심자는 우선 불보살의 상을 관할 때, 지나치게 그 모습을 집착하면 안 돼요. 자칫 신비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거든요. 중참자의 경우는 관상법에 집착해 불보살을 오랜 시간동안 껴안고 있으면 안 돼요. 내 마음의 거울을 보듯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죠.”(법인 스님)
사불수행에 들 때에는 오로지 그 순간에 다가오는 형상과 호흡에만 집중하고, 순간순간의 변화에만 치밀하게 관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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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불수행 지도하는 법인 스님은 누구?
법인 스님(사진)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불교계에 사불수행 바람을 본격적으로 일으킨 사불수행 전문가다. 또 지난 2002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사불수행 시연회’를 불교계 처음으로 개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특히 이 행사에서는 조계사와 봉은사 신도회, 길상사 청년회가 참가하는 등 사불수행의 대중화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이후 스님은 중요무형문화재 단청장 후보인 박정자 씨와 사불수행연구회를 결성했고, 최근에는 서울에 사불수행전문도량인 공덕사를 창건했다.
지난 81년 강원도 월정사 지현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금강선원, 서울 동산불교대학, 서울 만해대학 등에서 재가불자들에게 사불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 법인 스님이 말하는 사불수행의 포인트
사부수행만이 가지는 특징은 단연 불보살의 모습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을 조성해내는 과정에서 수행이 익어가는 것이다. 분별작용을 오염된 마음을 부처님의 원만 상호인 32상 80종호의 형상으로 깨끗하게 지워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불선에서는 망상의 뿌리를 미리 정화하고 참회를 반복함으로써 능동적으로 망상을 타파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런 사불수행은 초심자가 붓이나 볼펜, 종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일반적으로 재료에 따라 사불수행을 분류하면, 금니사불 은니사불 먹 사불 다색(多色) 사불 등 다양하다. 또 그리는 대상과 발원에 따라 석가모니 관음보살 지장보살 등의 사불이 있으며, 연꽃이나 사천왕상 등을 사불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사불수행을 배울 수 있는 단체는 서울 동산불교대학(722-0108), 만해대학(738-3385) 전국에 10여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