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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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수행지침서' 주요 내용요약
기초-실참-깨달음 단계별 구성, 4월 중순 발간


간화선 지침서는 재가불자들의 참선지도에도 도움을 줄 전망이다. 현대불교 자료사진.
조계종 불학연구소가 발간을 준비 중인 <간화선 수행지침서>는 선 수행의 초심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화선 기초’ ‘실참’ ‘깨달음’을 단계별로 서술, 총 3부 13장으로 구성됐다. 제1부는 조사선과 간화선의 형성과정과 기본적인 이해를 중심으로, 간화선이 왜 대승불교의 최상승 수행법인지에 대해 밝히고 있다. 본격적인 화두의 결택과 참구 등 실참을 다룬 제2부는, 특히 스승의 역할과 수행과정에서 생기는 병통과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을 사례별로 설명했다. 마지막 제3부는 궁극적인 깨달음이란 무엇이고 이를 점검하고 인가하는 과정, 깨달음 이후의 중생교화와 사회적 역할 등을 상세히 밝혔다. 4월 중순 발간을 앞둔 <간화선 수행지침서>의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제1부 기초단계
제1장 조사선의 그 역사적 전개


조사선은 역대 조사들이 ‘본래성불(本來成佛)’ 자리를 있는 그대로 보인 것이다. 이는 말과 생각의 길을 끊어 본래자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성도후 45년간 쉼없이 법을 설하면서 자신의 깨달은 세계를 마하가섭에게 전하셨다.

조사선은 인도에서 건너와 중국 조사선 초조가 된 달마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으로 이어진 33조사는 중국 선종의 큰 물줄기를 형성했다. 이렇게 역대 조사가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온 선이기에 이를 조사선이 한다. 이러한 조사선을 실질적으로 정착시킨 것은 육조 혜능이다.

한국은 9세기경 신라말과 고려초의 당나라 유학승들로부터 전해진 육조 혜능의 조사선 전통을 이어받았다. 이들은 고려에서 구산선문을 열어 한국 조계종의 선맥을 확고히 했다.

간화선의 정착은 고려말 태고보우, 나옹혜근, 백운경한 세 선사에 의해서다. 조계종의 중흥조로 인정받는 보우는 화두참구-깨침-본색종사-구경결택의 간화선 수행체계를 명확히 밝혀 간화선을 한국선의 주된 수행법으로 정착시켰다.


제2장 간화선의 개관


간화선이란 ‘화두를 간(看)하여 본래 성품자리를 곧바로 보는 것’이다. 간화선이 모든 수행법 가운데 뛰어난 것은 화두를 들고 그 자리에서 견성성불하기 때문이다. 화두를 드는 요령은 조주의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무(無)”라고 답한 것을 놓고 ‘왜 무(없다)라고 했는가?’를 끝없이 의심해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의심으로 몰입되는 과정을 ‘참구’라고 한다. 조사선과 간화선의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적인 구조는 같다. 시대적 의미가 그렇게 구분을 나눴을 뿐, 간화선 속에는 조사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만 간화선은 ‘화두’라는 것을 방편으로 ‘정형화’ 하고 ‘체계화’ 한 것일 뿐이다.

간화선이 대승불교의 최상승 수행법인 이유는 간화선이 부처님과 가섭으로부터 이어져온 조사선의 전통을 가장 잘 지켜오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법과 행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구하고자 하는 그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롭다. 또 화두 참구를 통해 분별의식의 흐름을 끊는 뛰어난 힘을 갖추고 있는 수행법이다.

간화선이 본래성불을 강조하는 이유는 부처님께서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보고, 연기를 보 는 자는 법을 보리라”고 설한 것처럼, 법이나 진리는 닦아서 얻는 것이 아니라 본래 구족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화선 수행은 거울에 끼어 있는 먼지를 털어내면 본래 거울의 참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3장 부처님의 가르침과 간화선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깨달으신 존재의 실상을 중도ㆍ연기ㆍ무아ㆍ공으로 표현했다. 선은 부처님께서 밝힌 이 진리를 당장 이 자리에서 환히 드러내 보이는 길이다. 선가에서는 언어를 통한 가르침뿐만 아니라, 가섭을 위해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염화미소를 보이고,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만들어 앉히며,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 후 두발을 관 밖으로 내보이신 일 등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일화로 이심전심의 법을 가섭에게 전했던 부처님의 마음은 간화선의 뿌리로 여겨진다.

경전 밖에 따로 문자를 전하지 않는다는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가르침은 중도ㆍ연기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선이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는 수행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조사선의 전통속에서 형성되었으며, 그 어떤 수행법 보다 가장 빠르게 단도직입적으로 마음 본자리를 밝히는 길이다.


제4장 간화선의 기초수행


선에 들기를 원하는 초심자는 본래불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비ㆍ지혜ㆍ원력을 세우고, 불퇴전의 정진력, 계율의 실천, 화두 참선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 마지막으로 정견을 확립해야 한다. 법에 대한 바른 안목과 크나큰 신심, 원력의 바탕이 되는 ‘정견’을 통해 불교의 핵심을 정확히 인식하고 수행자로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명확히 아는 힘을 갖춰야 한다.

선 수행에 앞서 교(敎)와 계(戒)에 대한 이해도 분명히 해야 한다. 사교입선은 말에 말리지 말라는 뜻일 뿐 교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며, 간화선 수행자라 해서 계율을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참선 수행자에게 계는 굳이 지키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제2부 실참 단계
제1장 화두의 결택


‘화두(話頭)’란 단순히 ‘말’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유와 분별의 통로를 막기 위해 선사들이 사용하던 말이다. 일상적인 생각으로는 그 뜻을 파악할 수 없는 화두는 공안(公案) 또는 고칙(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의 생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말로 몸과 마음에 의심의 열기를 가득 채워, 마침내 그 의심이 둑이 터지는 경지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이 화두도 발심이 온전히 안 된 상태에서는 소용이 없다. 자신이 깨닫고자 하는 간절한 목마름의 단계인 발심이 없이는 화두를 들 수도, 타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발심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발심은 생사 고를 뛰어 넘어 근원적 자유를 실현하겠다는 간절한 염원이 있어야 한다. 화두는 발심 후 선지식으로부터 내려 받게 되는데, 대개 자신의 근기에 맞게 탁하고 걸고리에 물리듯 걸리는 것이 자신의 화두가 된다. 일단 한번 정한 화두는 함부로 바꾸지 말고 의심의 끝을 타파하려 노력해야 한다.
제2장 지도자의 역할

선수행에 있어 스승은 한수행자의 온 생명을 좌우 할 만큼 중요하다. 발심하고 스승에게 법을 묻고, 참구를 통해 의단을 풀고, 다시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는 단계를 거치는 선수행 공부는 스승의 올바른 지도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어록에는 제자가 선지식을 만나서 깨치는 과정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이는 수행을 하다보면 만나게 되는 순경계와 역경계를 헤쳐 나가는데, 눈밝은 선지식의 가르침은 필수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선지식을 찾기 위해서는 신심과 발심, 깨달음을 위해서라면 몸과 마음도 놓아버릴 수 있다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대체로 선지식의 법맥과, 구참수좌들의 조언, 선지식의 언행의 일치여부를 통해 자신을 올바로 지도해줄 스승을 찾으려는 노력도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선지식이 멀리 있거나 찾기 어려운 경우, 선방 구참의 조언을 듣거나 도반끼리 탁마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선지식이 선원마다 머물면서 적절한 가르침과 수행의 점검해 주는 것이다.


제3장 화두의 참구 단계


화두 참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무(無)’자 화두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초심자는 우선 무자 화두의 무자 앞에 ‘전제’를 붙여 들든지, 아니면 좀 막연하게 ‘무’ 그대로(단제)를 든다. 참선을 시작할 때는 ‘전제’와 ‘단제’를 섞어 사용하지만 조금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단제 만을 들게 된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조주 스님은 “무”라고 대답한 것을 놓고 참구할 경우, ‘무라?’ ⇒ ‘왜 무라 했을까?’ ⇒ ‘왜 무라…’ ⇒ ‘왜…’로 지극한 의심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이 화두를 참구하기 위해서 <선요>는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화두공부를 통해 반드시 깨칠수 있다는 믿음, 나도 깨칠수 있다는 분심, 깨달음을 위한 간절한 의심이 화두공부의 필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화두를 올바로 들기 위해서는 ‘의정(疑情ㆍ의심이 일순하여 끊어진 상태)’과 ‘의단(疑團ㆍ의정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는 단계)’의 상태를 거쳐야 한다. 의정에 넘쳐 다른 무엇도 범접하지 못하는 상태를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하는데 이경지에 이르면 다시 ‘은산철벽’을 뚫고 ‘확철대오’ 해야 한다.

이때 화두를 ‘참구’하는 것과 ‘관’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화두를 관하는 것은 참구하지 않고 단지 집중한다는 것으로 진정한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 화두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이뭣고’나 ‘무’를 염송하듯이 외우거나 주역에 몰두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화두 참구자는 끈질김과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제4장 병통의 극복


알음알이로 분별하는데만 익숙한 수행자가 처음 화두를 들었을 때 병통을 일으키게 된다. <서장>은 ‘무’자 화두의 예로 이러한 10가지 병통을 해결하라고 일러주고 있다. 대혜 스님은 ①있다ㆍ없다로 이해하지 말라 ②이치로 이해하지 말라 ③분별하여 헤아리거나 알아맞히려 말라 ④눈썹 움직임이나 눈 깜박임에 알음알이를 두지 마라 ⑤말과 글의 틀로 살림살이를 짓지 말라 ⑥일없이 머물러 있지 말라 ⑦의정 없이 화두를 들어 알려고 하지 말라 ⑧문자를 끌어와 증거삼지 말라 ⑨유무를 초월한 참무가 있다 생각 말라 ⑩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라는 것으로 병통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쳤다. 병통은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곳에서 공부하지 않아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급한 속효심으로 기운과 열기가 머리로 오르는 상기병을 앓지 않도록 선지식이나 구참의 지도아래 분발심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밖에 화두를 빈틈없이 챙기지 못해 오는 ‘혼침(정신이 몽롱한 상태)’과 ‘도거(마음이 산란하여 들떠는 상태)’, ‘색욕’과 ‘수마(잠 마구니)’는 화두 수행자가 반드시 이겨내야 할 장애다.


제5장 일상생활에서 화두 참구법


화두가 고요한 곳에서는 잘 들리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약하거나 희미해질 때가 있다. 초심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일을 하며 화두를 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두 따로 생활 따로가 되어서는 선수행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선승이나 재가자는 더 힘써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를 들어야 한다. 걷거나 차를 타거나 누구를 기다릴 때도 틈만 나면 화두를 들어야 한다. 물론, 안거를 끝내고 만행을 떠나는 납자들도 마찬가지다.

화두를 참구하는 과정에서 역경계와 순경계를 극복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역경계에 마음을 빼앗겨 공부를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순경계에 마음을 풀고 거기에 매몰되어서도 안된다. 역경계든 순경계든 세간일들은 실체가 없는 연기이므로 집착을 버리고 오직 화두공부에만 집중해야 한다.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는 수행에 출ㆍ재가의 구분이 없다. 재가자들의 경우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받으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30분씩 거르지 말고 참선에 들어야 한다. 초심자에게는 이것도 쉬운일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평소 한 두 시간의 좌선이 규칙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시민 선방의 철야정진에 참여해 볼 것을 권한다.


제6장 화두 참구와 삼매의 단계


화두 공부가 조급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아서 공부의 힘(得力處)을 얻게 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화두를 들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화두가 깊어지면 망상이 사라지고 의정이 일순해져서 아무런 맛도 재미도 못 느끼는 ‘몰자미(沒滋味)’상태가 온다. 고려말 나옹선사는 이 몰자미 상태에서 화두 참구를 쉼 없이 밀어 붙일 것을 강조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더욱 공부하면 은산철벽을 뚫게 된다.

나와 대상이 하나가 되어 고요하며 흔들림 없는 경지를 삼매라 하는데, 임제는 주관은 없고 객관만 있는 경우, 객관은 없고 주관만 있는 경우, 주객이 모두 사라진 경우, 주객의 양변이 모두 사라진 뒤 다시 주객의 작용이 일어나더라도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경우를 선의 진정한 삼매라고 했다. 이는 가는 곳마다 ‘주인’이고, 선 자리마다 모두 ‘진리’인 경지다. 선에서는 이런 삼매의 경지도 그 정도에 따라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항상 밝고 깨어있는 ‘동정일여(動靜一如)’, 화두가 꿈속에서 변함이 없는 ‘몽중일여(夢中一如)’, 깨어있거나 잠들었거나 항상 화두가 들리는 ‘오매일여(寤寐一如)’로 구분하고 있다.


제3부 깨달음의 세계
제1장 점검과 인가


점검은 수행자가 선지식에게 자신의 공부정도를 물어 확인 하는 것이다. 선에서 인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다. 깨달은 자인 ‘본분종사(本分宗師)’ 스승은 수행자가 화두를 깨쳤는지 못 깨쳤는지를 점검하여 깨달음을 인정하고 점두(點頭)해 준다. 수행자는 자신이 경험한 깨달음을 제아무리 확신한다 할지라도 그것의 옳고 그름을 확인하는 절차를 통해 삿된 길로 들어서는 불행을 경계해야 한다.

수행자가 참구한 화두를 놓고 선지식은 깨달음의 정도를 정확하게 판별하기 위해 감변(勘辨)하는데, 이때 선지식은 수행자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해 그 정도를 확인한다. 이것을 통해 공부가 모자라면 다시 정진하고, 인가를 얻으면 스스로도 한점 의혹 없이 ‘확철대오’하게 된다.

<선요>를 저술한 대혜의 경우, 37세 되던 해에 스승 원오의 설법을 듣다 홀연히 경계를 끊는 경지를 맛보게 된다. 이후 대혜는 수시로 스승의 방을 찾아가 자신의 화두에 대한 문답을 하지만 매번 “틀렸다”는 대답만 듣는다. 그러나 끈질기게 화두를 거량 하던 차에 궁극의 깨달음을 얻는다. 이렇게 공부의 점검은 선지식에게 받는 것이 원칙이나 사정이 마땅치 못할 경우 조사어록을 의지해 스스로 공부를 점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결코 자신을 속이지 않고 냉정한 판단이 필수다. 대혜의 <서장>, 서산의 <선가귀감>, 나옹의 <나옹어록>에는 이러한 공부점검법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영명의 <종경록>에는 이 깨달음의 경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기준 10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①완벽하게 견성해 대낮에 물건을 보듯 지혜가 밝은가? ②사람을 만나고 상황에 대처하며, 색깔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발을 들고 내리며 눈을 감거나 뜨는 것이 모두 도와 상응하는가? ③ 부처와 조사의 말을 깊이 듣고도 두려워 않고 , 이들의 모두 살펴도 의심스러운 곳이 없는가? ④온갖 질문에도 능히 사변(四辯)을 갖추어 모든 의문을 풀어 줄 수 있는가? 등이다.


제2장 깨달음의 세계


화두를 타파하여 깨닫게 되면 꿈에서 깨어난 듯 하고 하늘에 백천개의 해가 비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깨달음은 역경계(逆境界), 순경계(順境界), 선경계(善境界), 악경계(惡境界) 고요한 경계나 시끄러운 경계 그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는다. 대립이나 시비ㆍ갈등 없이, 나와 남에게 한없이 자애롭고, 순역의 경계에도 걸리지 않는 대자유인이 된다.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역동적인 경지다. 그렇다고 해서 이 깨달음이 어떤 별천지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현실의 삶이지만 추호의 의심도 없으며,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할지 그 길이 정확하고 또렷해진다. 이러한 깨달음은 선사들뿐만 아니라 방거사, 한퇴지, 백낙천, 배휴, 소동파, 부설 거사 등 재가자이면서도 선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많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깨침과 닦음의 문제는 일찍부터 논란이 되었다. 육조 혜능의 남종선은 ‘돈오’를, 신수의 북종선은 ‘점오’를 주장했다. 돈오돈수는 단백에 깨치므로 더 이상 닦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만, 돈오점수는 단백에 깨닫더라도 미세한 습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점차로 더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혜능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본분 자리를 단박에 보는 돈오는 마치 꿈에서 깬 것과 같아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다는 입장인데 반해, 보조는 어린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양육의 기간을 거쳐야 어른이 되는 것처럼 깨달은 후에도 수행이 필요성을 주장했다.


제3장 간화선과 중생교화


부처님은 고행끝에 깨달음을 이루고 45년간 중생들을 교화했다. 깨달은 이가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깨달음의 두 축은 지혜와 자비다. 나와 남,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깨고 자타불이의 세계를 체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깨친이의 삶은 그 자체가 동체대비의 실천이다. 세간과 산속, 승과 속을 나누어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깨달은 이는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앉으면 법당이요 머물면 도량이 된다. 일거수일투족이 무진법문이기에 수많은 중생을 구제해야 한다.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간화선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이 적극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간화선이 성립되던 북송은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사회가 어지럽고 피폐한 백성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였다. 오늘날 사람들이 겪는 정신적 공허, 화, 스트레스, 대립, 갈등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 수행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 다만 우리나라 수행자들의 삶과 수행이 일치되지 않고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는 법을 중심으로 사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종단 사부대중의 겸허한 반성과 뼈를 깎는 정진이 필요한 부분이다. 한국불교가 가진 뛰어난 선수행 전통을 널리 펼치기 위해 개인과 시대를 아우르는 출ㆍ재가 수행자들의 모범적인 참선수행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선의 무애자재하고 활발발한 기운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전파되어 각자의 마음이 평화롭고 지혜롭고 자유로워지는데 기여해야 한다.
조용수 기자 | pressphoto1@hanmail.net
2005-03-07 오후 1:53:00
 
한마디
경허스님참선곡을 펼쳐놓았구먼.
(2005-03-14 오후 10: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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