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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화사 선덕 고우 스님은 전국선원수좌회가 3월 1일 오전 8시 합천 해인사 보경당에서 개최한 ‘선화자(禪和子) 법회’ 특강에서 수행자가 가져야 할 공부자세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스님은 “간화선 수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조사선의 올바른 이해”라며 “조사 스님들이 화두를 제시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깨달아야 하고, 못 깨닫는 이는 부득히 참구를 해야 한다”고 법문했다.
스님은 이어 “역대 조사 스님들이 화두를 준 것은 곧바로 수행자가 그 자리에서 깨닫고 체험하라는 것이지만, 그것을 못 깨닫는 수행자가 있어 부득이 참구(의심)를 하라고 했다”며 “화두는 깨달으라고 주는 것이지 참구하라고 주는 것이 아닌 만큼, 수행자는 의심하기 위해서 의심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고우 스님, 특강 법문
성철 스님은 20년 전 해인사에서 열린 선화자 법회의 성격을 사상정립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상정립은 수행자가 공부하기 전에 정견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성철 스님은 선적인 차원에서 정견을 올바로 세우는데 선어록 강의가 필요하다며 당시 <육조단경>을 강조했다.
수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출가할 때 초심을 잊지 않는 것이다. 출가초심을 유지하려면, 세속의 행복 조건들을 내 밖에서 찾으면 안 된다. 부처도 조사도 행복의 조건들을 밖에서 찾지 않았다. 내면에서 찾으라 했다. 팔만대장경도 이런 가르침을 보여주고, 그것이 바로 불교의 가치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안팎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출가 수행가 만약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그건 역수행을 하는 것이다. 수행자는 밖으로 주어지는 행복조건들에 흔들리지 말고, 당당히 수행의 길을 가야 한다.
특히 수행자는 불법을 통해 국가간 민족간 종교간 개인간 겪고 있는 온갖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열쇠를 줘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즘 수행자들은 ‘자기와의 갈등’도 해결하지 못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불법에서 보면, 갈등을 해소할 가르침이 있는데, 우리 내부에서도 끊임없이 갈등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간에서는 ‘수(數)’와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다. 불법과 상반되는 가치다.
간화선 수행자는 바로 깨쳐야 한다. 그 깨침은 체험이다. 이해의 부분이 아니다. 요즘 제3수행법이 각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간화선 수행풍토 진작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선원에 조실스님이 정견을 세우고 수행자들에게 공부를 독려했다. 그런데 요즘은 공부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또 내부적으로 정견에 대한 혼란을 빚고 있으며, 밖으로는 제3 수행법이 범람하고 있다. 과거에는 선지식들이 많아 수행자가 스스로 정견을 세워 정견이 수행자에게 스며들 환경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럼 이러한 상황에서 수행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조사선의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조사 스님들이 화두를 제시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깨달아야 한다. 못 깨닫는 이는 부득히 참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조사 스님들이 화두를 주는 것은 곧바로 수행자가 그 자리에서 깨닫고 체험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못 깨닫는 수행자가 있어 부득히 참구(의심)을 하라고 했다. 화두는 깨달으라고 주는 것이지 참구하라고 주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의심하기 위해서 의심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다. 알면 바로 깨닫고 모르면 의심을 해 알려고 공부하는 것이다.
후학들의 공부 자세는 이처럼 의심하기 위해서 의심하는 공부를 하면 안 된다. 화두는 바로 깨달으라고 주는 것이지 참구하라고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혜 종고 스님 이전에 조사선은 모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의심하게 했다. 그런데 이 의심을 정형화시켜 놓았다. 그러면서 깨치는 사람이 오히려 줄어들었다. 의심을 하기 위한 의심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두참구하는 자세는 정견을 바로 세우는 데에서 출발한다. 참구하면서 의심을 하는 사람은 순맥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수행자는 끝없이 발심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먼저 수행자는 간화선이 최상승선이라는 것과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이 최상근기라는 자만심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수행자는 삼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선에서 삼매는 의심하는 그 자리에서 생각의 길도 말 길도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 만약 그 자리에 조금의 알음알이가 붙으면, 삼매가 아니다. 삼매는 생각과 말이 끊긴 그 순간이다. 그 때 의심이 일어나 알고자 하는 강렬한 마음이 바로 삼매다. 때문에 수행자는 화두를 통해 알고자 하는 의지를 길러야 한다. 이렇게 수행자가 지속적인 삼매를 유지할 때 비로소 은산철벽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자리는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 자리다.
그럼 선수행과 제3수행법에서 깨달음의 세계는 같은가 아님 다른가? 선종에서는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과정이 화두를 통해 제시된다. 순간적으로 깨닫는 것이 선종의 핵심인 반면, 다른 수행법은 각 단계별로 깨닫는 과정이 있다. 하지만 구경에 가서는 주관과 객관을 초월한다는 차원에서 비슷하다. 다만, 방법과 근기에 다를 뿐이다. 그런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또 다른 수행법을 하고 있는 수행자들에게 빠른 깨달음의 길인 간화선으로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수행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한국불교의 간화선에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한국불교 간화선은 조사선 전통이 살아있는 정통 선수행법이다. 이를 더욱 활발히 살려내 조사선 전통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수행자들이 해야 할 사명이자 의무이다. 한국불교에는 순수한 조사선의 전통을 살릴 토양이 남아있다. 중국과 일본에는 이미 사라진 조사선의 전통이 한국에는 있다는 말이다. 수행자는 불법에 대한 안목을 높이고, 정견을 세우는데 끊임없이 정진을 해야 한다. 또 이런 한국불교의 선정통을 수좌들은 물론 재가불자들이 생활화하고, 능력껏 사회화할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