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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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불길, 억겁의 눈물"
[나의수행법]김기현 변호사(下)


김기현 변호사.
화두 참구 이레째, 스님은 “화두 기운이 폭포 밑에 머물러 있을 때는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가만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은 지루하고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언제 나타날지도 모를 그것을 기다리며 시간과 싸우고 있는데, 어느덧 선방에는 나를 포함하여 십 오명만 남았다. 남들은 모두 화두 공부상의 맛을 보고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나는 아직도 헤매고 있으니.

난 이 공부와 인연이 없는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저녁 늦게 쯤 알 수 없는 기운이 솟구쳐 오를 기미가 보였다. 뭉쳐진 화두 기운에 온 힘을 집중하니 온몸과 머리가 심하게 요동쳤다. 화두 의심으로 비롯된 기운과 씨름하기를 수십여 차례. 그리고 어느 순간 제게 편안함이 찾아왔다. 아니 앓던 이가 빠지는 통쾌함이라고나 할까? 이것이 화두 공부의 맛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기숙사로 돌아와 다시 화두를 들어보니 아직도 화두기운은 폭포 밑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두 공부 맛을 조금이라도 보면 천근의 짐을 내려놓듯 마른 하늘에 벼락 치듯 매미가 허물 벗듯이 시원하고 통쾌하다”고 했는데, 내겐 아직 그런 통쾌함 정도는 없었다. 다시 밤을 세워 정진했다. 그러나 더 이상 진전은 없었고 이젠 다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하루가 더 남아 있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 됐다. 그래 첫 날 화두 받았을 때 그 마음으로 다시 화두를 들자! 다시 다짐했다.

화두 참구 여드레째, 오후에 스님이 공부 점검을 해줬다. 그래서 어제 일어난 현상을 말씀 드렸더니, 좀 더 공부하라고만 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자기소임을 다하는 것이 용맹이니 다시 한번 용맹을 떨쳐보라”, “마지막 관문을 넘는 것은 산모가 아이를 낳는 것보다 더 힘이 드니, 죽을 각오로 다시 용맹을 떨쳐라. 절대로 죽지 않는다”며 격려해 줬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도 화두 공부의 맛을 못 보면 올 여름에 계획한 내면으로의 여행은 실패다. 그래 크게 한 번 죽어 보자! 어차피 스님께서 참선 공부 중에 잘못되는 일은 없다고 하셨으니 믿어보자’라고. 다시 좌복을 가지런히 하고 화두 참구에 들어갔다. 화두 의심으로 비롯된 기운을 살피면서 그 기운에 온 힘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힘이 빠지면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힘을 쓰길 몇 번.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갑갑한 기운이 정수리를 통해 밀려 나간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정말 끝났구나! 하는 확신이 밀려들었다.

동시에 가슴속에 뭉쳐있던 갑갑함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9일이라는 긴 여행을 마쳤다는 생각’, ‘화두공부를 통해 대자유인으로 갈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는 생각에 가볍게 선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스님께 공부 점검을 받고 앞으로 어떻게 수행해 가야 하는지 지도를 받았다.

9일간 간화선체험은 많은 경험을 주었다. 우리 내면에는 불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에는 그런 것이 있겠지 정도만 믿었는데, 이제는 간화선 체험을 통해서 의심의 여지없이 이를 믿게 됐다. ‘우리 각자는 미래의 부처님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법당에서 절을 하는 것도 미래의 부처님인 우리 자신에게 절을 하는 것이고, 현재 모든 사람은 미래에 부처님이기에 현재의 모든 사람은 위대하고 소중하다’는 확신. 짧은 기간동안 스님의 집중적인 지도와 점검을 통해서 이제 좌복에 앉지 않아도 삶의 현장 곳곳에서 참선을 할 수 있게 됐다. 물질세계만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내 자신에게 무한한 정신세계가 있음을 알게 돼 기쁘다.
김기현 변호사 |
2005-02-11 오후 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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