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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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수기특별상, '기도에관한 몇가지 소고'下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는가? 인터넷으로 뽑은 아비라 기도 안내문을 들고 씩씩하게 산길을 올라갔지만 뜻밖의 난제에 부딪혔다. 선배에게 물어물어 구입한 법복은 일단 복장 불량으로 찍혀서 해우소 갈 때를 제외하곤 사용할 수가 없었다. 저고리가 달린 광목 법복만이 유용하다는 것이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 중 설마 나 하나쯤이야 하던 생각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여비를 털어 구입하자니 서울 갈 차비가 없어서 막막해 하고 있을 무렵, 보살님 한분이 한 번도 입지 않은 자신의 여벌옷을 빌려 주시어 기도 내내 그 옷에 의지하여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인도 보살님’이라 불리던 그 분은 정말 인도사람처럼 이국적인 외모를 지니고 계셨는데 하루는 고무장갑을 끼고 해우소청소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백련암 직원이었나 보구나.’ 생각하였는데 나와 다르지 않게 기도접수를 하고 오신 분이었다.
1년에 4차례 아비라 기도를 빠지지 않는다는 그 신도님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분이야말로 이 절의 주인이로구나. 나는 객이지 아니한가?’ 순간 고개가 절로 수그러졌다.

‘아비라’는 내가 해 본 그 어느 기도보다도 힘든 수행이었다. 108참회는 하겠는데 장궤합장을 하고 30분간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법신진언을 암송하고 나면 무릎이 깨어질 듯 아팠다. 좌복 밑에 담요를 겹겹이 깔아도 식탐의 무게만큼 고통의 무게도 가산되었다.

‘남은 인대마저 끊어져 내 몸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오늘 이 자리에서 한 공부하지 않으면 물러나지 않으리라’ 이를 악 물고서 법당 중앙에 걸린 성철스님의 사진을 쳐다보며 다짐 또 다짐했다.

기도는 서울처녀에게만 힘든 것은 아니었나 보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와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도반의 고통이 있었기에 진언을 외우는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목덜미에 흐르는 땀방울을 음미하기란 세상을 살면서 쉽지 않은 일인즉 앞에 앉은 도반의 흐르는 땀은 또 하나의 경책이 되어 마음을 잡아주었다.

앞에서 기도하신 노 보살님은 3박 4일 내내 서울에서 멀리 가야산으로 공부하러 온 젊은이를 고마워 하셨다. 기도가 끝나고 나선 내 손을 잡고 암자 곳곳에 계신 부처님들께 인사를 다니시었다. 콩을 배꼽에 넣고 그 기운과 더불어 수행하셨는데 그 소문이 퍼져 여기저기서 콩을 주문하는 소리가 빗발쳤다. 한참을 다니시다가 다음에 올 땐 콩을 가져오지 않겠다고, 이 담에 큰스님 앞에 가서 야단맞겠다며 수줍게 웃으시던 모습이 참으로 곱고 아름다웠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연세가 지긋한 중년이나 노 보살님이셨기에 몸보신할 비상식량을 소지하고 계셨다. 나 같았으면 며칠을 두고 먹어야 할 양식이라 쉽게 내주지 않을 텐데도 먹을 것이 있는 자리엔 꼭 나를 불러주셨다.

나는 이틀 내내 아비라 기도의 고통으로 흐느꼈는데 옆에 계셨던 보살님이 포도즙을 챙겨주셨다. 포도의 힘은 위대했다. 포도의 위력을 절감한 나는 포도를 즐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에 돌아와 거봉 한 박스를 사서 먹었다.
박카스에 두유, 건빵 등 평소엔 먹지 않던 식품들이 수행중인 내게는 절실했다. 한 그릇에 돌아가며 커피를 얻어먹어도 더러운 줄을 몰랐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
“아난아, 대중에게서 무엇을 얻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절반쯤을 얻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틀렸다. 대중으로부터 전체를 얻느니라.”

회향 후 종정스님의 하안거 해제법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내려왔다.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가 큰 님을 뵙는 것보다 젊은 내가 뵈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의식이 끝난 큰절은 썰렁했다. 인도보살님이 나의 처진 어깨를 쓸어주시며 말씀하신다.
“다시 오라는 부처님의 뜻이야. 다음에 꼭 와.”
“예” 하고 희미하게 대답하였으나 중생계에 매인 몸이 언제 또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열차에서 보는 세상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구름이 어제와 다르게 보이고 초록색 논밭이 아름다웠으며 산천초목이 모두 불국토였다.
꿈같은 3박 4일이 지나고 또다시 넉 달여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직도 베갯머리에선 백련암이 떠오르고 보살님들께 받았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큰스님들을 찾아다니며 법 동냥이라도 해야 하고 <대불정능엄신주> 또한 숙제로 남아 있다. 수선회에 동안거 방부를 들여놓고 참선중이며 <선가귀감> <육조단경> 등 선에 관한 서적들을 보고 있다.
불교에 귀의한 지 10여 년 만에 나는 원하던 책을 손에 쥔 셈이다.
원장님께서 “내년에도 주임이 싫으냐?”고 물으시면 못 이기는 척 수락할 생각이다. 그리고 아기부처님들과 열심히 땀 흘리며 생활할 것이다.

“본래 한 물건이 있어 그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르는데 물건을 잡아 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입니까? 아니면 객입니까?”

선계와 속계가 공존하는 곳 백련암. 구름과 가까이 위치한 선계에는 수도승과 고수인 수행자들이 청정도량을 지키고 있고 산을 내려다보면 전등 빛이 하나 둘 켜졌다 꺼졌다 하는 속계가 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그 길이 깨끗함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 길을 갈 수 없는 건 중생의 두터운 업이리라. 내 이생에서 할 일을 마친 후에 구석의 한자리를 얻어 앉아 더불어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끝)
서경자(서울시 은평구 불광1동) | |
2005-02-01 오후 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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