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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는법문-"우주법계는 내 마음과 한 덩어리"(2005.1.24)
하동 칠불사 운상선원 선원장 지옹 스님
수행자는 죽고 사는 길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 지옹 스님. 사진=박재완 기자

지옹 스님의 법문 동영상 보기
평생 ‘선방수좌’로 살았다. 19살에 산문을 두드린 이후, 61년 동안 수좌로서의 본분을 한번도 잃지 않았다. 그 흔한 주지 소임도 맡지 않았다. 오직 화두만 들었다. 1970년에는 해남 대둔사 북암 옆에 토굴을 손수 짓고 13년간 몸과 마음을 혹독히 화두로 달궜다. ‘수도하다 죽으리라~’ 라는 일념(一念)으로 사무치게 수행했다.

지옹(智翁) 스님. 1월 19일 경남 하동 칠불사에서 만난 스님은 법명처럼 ‘지혜로운 늙은이’의 모습이었다. 눈꺼풀을 가릴 만큼 자란 백미(白眉), 그리고 삭발 머리를 덮은 잔설(殘雪)이 그대로인 노사(老師)의 그것이었다.

뵙자마자 물었다. “수행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

다시 물었다. “평생 모범적인 수행자의 자세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데요. 수행자가 갖춰야 할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수행자는 오로지 수행하는 사람이야. 그럼 왜 수행을 할까? 생사를 벗어나기 위해서지. 죽고 사는 문제는 일대사야. 수행자는 죽고 사는 길을 밝혀야 해. 그 길을 알려면, 청정계행을 굳건히 지켜야 해. 그렇지 않으면 수행할 수가 없어. 되지도 않아. 설사 금생에 수도를 마치지 못한다 해도, 내생에라도 수도를 마쳐야 해. 그때까지 딴 마음 먹지 않고 수행해 나가야 해. 이것이 수행자의 본분이야.”

노사의 일침이었다. 으레 묻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뜨끔했다. ‘그럼,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까?’ 곧바로 여쭸다.

“수행하는데 참선이 가장 유익해. 그렇다면
취재가 끝나자 스님이 곧장 선방으로 돌아가셨다.
선이란 어떻게 생겼는지, 또 최초의 선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알아야겠지. 우주가 벌어지기 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 그때는 막막하고 아득해 분별해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지. 최초에 무엇이 벌어졌을까. 자연적 이치로 물기(水)가 갑자기 생기고, 그 다음에 바람(風)이 생겨 그 수분과 한 덩어리가 됐지. 그 다음에는 불기운(火)이 생겨 그 앞에 물, 바람 불기운과 한 덩어리가 됐어. 그리고 땅기운(地)이 생겨, 자연적 이치로 한 덩어리가 됐지. 사대가 한 덩어리가 된 것이야. 이 사대가 우주에 한 덩어리로 모여 밝은 ‘둥근 달’이 됐어. 실상도 헛된 상도 없고 유무의 관계하지 않는 ‘둥근 달’이지. 그대로 우주법계야. 이것이 선의 당체(當體)지. 그 당체는 사대가 뭉쳐서 화현됐고, 이것이 우주가 됐어. 선은 이 둥근 달을 관조하는 거야. 그것을 보는 것이 선이지. 마음을 알려고 것이 선이 아니거든.”

선뜩 이해가 되지 않았다. 스님이 말하는 ‘둥근 달’은 무슨 의미일까. 다시 여쭸다.

“사실 선을 알기는 힘들어. 선에는 말이 붙지 않아 그 모습을 제대로 보기 어렵거든. ‘우주가 한 덩어리’라는 당체를 알면 돼. 그러면 딴 길로 나가려고 해도 딴 길로 가지질 않아. 또 분별할 물질도 없게 돼. 즉 상대가 없어진다는 소리야. 그러다보면 병통도 없어져. 화두가 잘 되도 잘 된다는 생각이, 안 된다고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거든. 오직 ‘그것뿐’이 돼.”
선에는 우주도 세계도 상대도 벌어진 것이 없다는 스님. 그래서 취하려 해도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도 역대 많은 조사들도 이렇게 깨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오늘날의 불교현실을 지적했다.

“지금은 역대 조사와 선사들이 자기식으로 해석해 법문하다보니, 선이 어지러워졌어. 하근기들은 제대로 선을 배울 수가 없게 됐어. 그러니 요즘 사람들이 불법을 믿어도, ‘어떤 것을 믿어야 옳을까’ 하고 불법의 정체를 못 잡아내고 있어. 역대 조사와 선사들이 지껄어댄 법문들이 불교를 망쳐놓았기 때문이야. 불교를 발전시킨다는 것이 오히려 불교를 망쳐 놨어.”

그럼, 선수행을 어떻게 해야 할까? 스님은 ‘저울의 비유’를 들었다.

“저울에 근을 달 때는 한 쪽으로 기울지 않게 반듯이 달아야 해. 선수행도 마음을 잘 조절하면 돼. 너무 급하게도 늦게도 하면 안 돼. 마음만 조정하면 선수행을 순조롭게 하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선수행법에 대한 법문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하다보면, 마장도 어김없이 오게 돼. 그때는 망상을 가만히 놔둬. ‘선이 잘 되고 못 되고’ 하는 분별심에도 치우치지마. 잘 돼도, 잘 못 돼도 그대로 놔둬. 가만히 마음만 들여다보면, 망상이 선과 한 덩어리가 되거든. 즉 ‘무자’든 ‘이뭣꼬’든 화두 들기 이전의 내 마음을 관하면, 망상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으면서 내 화두 ‘한 생각’만으로 걸어 나가는 길이 와. 반드시 그 길은 오게 돼 있어. 안 오는 사람이 없지. 그러면 망상이 그대로 없어져. 화두 들고 나오는 ‘한 생각’만이 쭉 나오게 돼. 그때를 기멸(起滅)이 끊어졌다고 하지. 그런 경지에 도달하면 화두를 타파했다고 하는 거야. 깨달았다고 하는 거지.”

스님은 ‘실상도 헛된 상도 없는 당체, 그 우연적인 사대(四大)가 한 덩어리로 뭉쳐 유무를 초월한 달이 됐다’는 화두를 들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기멸을 끊었다는 화두 타파는 ‘유무를 초월한 달’을 관한 것이다. 여기서 ‘화두를 타파했다’는 것은 본래 있는 달을 봤다는 뜻으로, 이것이 바로 성불의 당체다. 달리 말하면, 달을 향해 바로 보라는 말이다. 가리키는 손가락은 필요 없다는 의미다. 기멸이 끊어진 데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만 의심이 없어지고, 우주법계가 자성체와 한 덩어리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자 화두가 이런 도리고, ‘이뭣꼬’가 이런 도리라는 것을 아는데 아무런 막힘이 없다. 이 때를 견성했다고 한다. 삼라만상은 물론 먼지 하나도 모두 다 부처라는 것을 보게 된다. 모두가 ‘본래성불’이라는 것을 견성해서 ‘바로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다.


불교를 널리 알리는데 수고한다는 스님이 본지 신문을 들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 ‘아이고, 부처님 말씀이 필요 없는 것인데, 괜히 쓸데없이 고생했구나. 부처님이 나를 애 먹인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이야. 그렇다고 그 생각에 머물지는 않았어. 점검을 받았지. 화두를 바로 깨친 사람을 찾아가서 물었지.”

스님은 75세 때 구례 화엄사에서 오도송을 짓고, 인천 용화사 송담 스님을 찾아가 점검을 받았다. 이후 그 날로 안거 결제날에 맞춰 용화사로 찾아간 스님은 법문만 하고 나가는 송담 스님을 붙잡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도송을 얼른 내보였다.

‘전하지 못하는 묘한 이치는(不傳之妙)
모든 부처님도 알지 못했으나(諸佛不知)
우주 만상 모두가 똑 같이 갖춰져 있어(萬相具足)
봄날은 따뜻한데 꽃과 잎이 피었도다(春陽花草)’


“스님이 ‘됐다’고 하더군. 웃으시더군. 송담 스님과 인연은 30년 전에 용화사에서 함께 살면서부터야. 법거량도 많이 했었지.”

스님은 이어 견성에 대해 말했다. 선수행을 마치는 것은 본래 자성을 보는 견성이고, 견성한 당체는 실상도 헛된 상도 없는 둥근 달이 화두임을 본 것이라고 했다. 선은 그것을 바로 보는 견성법이라는 것이다. 가령 돈오돈수의 뜻을 ‘본래 깨달아 있고 본래 닦을 것도 없는 근본 자리를 견성한다’는 것으로, 이를 보면 공부를 마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 견성한 다음에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스님은 그 다음 공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견성 이후 공부는 다생겁래 익힌 업장을 녹이고, 용무생사(用無生死: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하는데 있어. 즉 깨달음 이후의 공부는 ‘뜻대로 모든 만법을 자유자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한 것’이야. 이것을 보임(保任)공부라 해. 만법을 뜻대로 자유자재로 해 막힘없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보임공부를 마친 것이고, 이 때를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라고 하는 거야. 그 때를 불법을 다 공부한 단계라고 말하지.”

스님의 말끝에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간화선 수행법이 과연 현대인들에게 잘 맞을 수 있을지 궁금증이 일었다. 곧장 재가불자들이 쉽게 할 수 수행법에 대해 여쭸다.

“물론 간화선 수행이 힘들어. 잘 되지를 않아. 그런데 염불선(念佛禪)은 재가불자들의 수행법으로 바람직해. 재가불자들의 생활방도로써, 염불선을 하루 한번 15~20분 정도, 아미타불을 간절히 불러. 일평생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선을 하는 거지. 이것이 염불선이라 하는 거야. 염불선은 이렇게 하면 돼. 첫번에는 고성지(高聲持)로 해야 해. 큰소리로 부르는 것야. 그렇게 익혀서 조금 힘을 얻게 되면 옆에 사람이 들을까 말까 하는 미성지(微聲持)로 하고, 그래서 힘을 얻어 나가면 혓바닥을 놀리지 않아도 되는 비동설지(非動舌持), 즉 혓바닥을 놀리지 않아도 저절로 염불이 나간다는 경지야. 자꾸 그렇게 해 나가다 보면 힘이 생겨. 그렇게 힘을 얻으면 금강지(金綱持)로 들어가게 돼. 금강지로 들어간다는 것은 염불할 것도 없고 선정할 것도 없고 하려고 할 것도 없이 자연적으로 저절로 되는 경지야. 그게 염불선이야.”

스님은 참선하다가 생멸이 끊어지면 견성하는 것처럼 금강지에 들어가면 아마타불을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아미타불이 충만하게 된다고 말했다. 간화선은 처음에는 큰 것을 들고 나가는 것이지만, 염불선은 처음부터 자신의 업을 살살 녹여 금강지로 들어가 선의 이치를 알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쉽다고 말했다. 재가불자들은 물론 수좌들에게도 바른 수행방편이라고 당부했다.

지옹 스님의 법문 동영상 보기

하동 칠불사 운상선원(雲上禪院) 선원장 지옹(智翁) 스님은?

스님은 인터뷰 내내 좀처럼 틈을 주지 않았다. 말끝에 의심이 일어나도 묻기 무섭게 자르셨다. ‘왜 그리고 어떻게’로 머릿속이 꽉 찬
눈꺼풀을 가릴 만큼 자란 백미(白眉)와 삭발 머리를 덮은 잔설(殘雪). 법명처럼 지혜로운 늙은이(智翁)의 모습이었다.
기자의 물음들이 연신 겉돌았다. 대신 스님은 간화선과 염불선 수행법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셨다. 문답에는 찰나의 알음알이도 허락하지 않는 선가의 전통을 몸소 보여줬다.

스님의 수행이력은 송담 스님과의 인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송담 스님이 “지옹 스님이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사람을 보니 늘 진실해보여 항상 오기를 기다렸다”고 했다고 한다. 또 송담 스님에게 오도송을 보였을 때도 “뭐 아는 사람끼리는 말할 필요가 없지. 이심전심이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스님의 수행은 선원 대중들과 똑같이 생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까마득한 후학들과 함께 안거 때 방부를 들이고 흔들림 없는 수행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80회향 증도가’ 쓰고 전국 선방에 3천여 권을 법보시한 스님은 요즘 당찬 원력을 세웠다. 앞으로 100세까지 20년을 더 포교하겠다는 것. 전법도량을 지어, 사부대중을 가리지 않고 함께 공부하는 도량을 만들 생각이다. 이를 통해 부처를 만들어내는 선불장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1925년 경북 울진에서 나서 44년 금강산 마하연에서 철해 스님을 은사로 출가, 47년 상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은 스님은 해인사, 통도사, 봉암사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김철우 기자 | in-gan@buddhapia.com
2005-01-25 오전 11:01:00
 
한마디
노스님!! 원담 입니다. 운상선원에 계시다는걸 알고 다시금 기뻣습니다. 법체는 어떠신지요. 관심행과 찾아 뵙겠습니다. 법체 보중 하십시요...
(2005-01-25 오후 12:16:33)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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