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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난 끊임없이 ‘죽으면 어찌될까’하는 생각에 잠겼다. 죽음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무엇을 하던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대학 시절 보림선원에서 만난 백봉 김기추 선생님이 “이 몸뚱이가 있다 할지라도 성품이 없어. 내가 보고 듣는 것은 눈이나 귀라는 기관을 통해서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법신이 보고 듣는 것이야. 다시 말해서 허공으로서 내가 하는 것”라는 설법을 듣는 순간, 이제껏 나는 이 몸뚱이로서의 나로만 단지 생각해왔기 때문에 죽음의 문제를 풀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 이후 나는 매일 저녁과 토요일마다 철야정진에 계속 참석했다. 몇 개월이 지난 그해 여름, 선원대중들이 용인 동두사에서 1주일 철야정진을 했다. 그간 참선을 해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화두를 들어보아도 어찌나 잠이 오는지 나중에는 화두가 들리기는커녕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 상태가 계속 됐다. 또 계속 며칠동안 한번도 눕지를 못하니 허리는 끊어지게 아팠다.
그러나 3~4일이 지나자 조금씩 정신이 차려지고 마음이 점점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도 조금씩 맑아지고 몸도 차차 나아지자 어느 틈에 일주일 철야정진이 지나 가버렸다. 그렇게 1주일 철야정진을 마치고, 도반들과 절 근처에 있는 저수지에 뱃놀이를 가게 됐다. 얼마간 노를 저어갔을 때, 문득 ‘나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 배가 가고오고 한다’는 생각이 확 느껴졌다. 1주일 철야정진이 내게 상당히 도움이 됐다.
그날 이후 4~5년을 토요일 철야정진과 1주일 철야정진을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러다 어느 1주일 철야정진 중이었다. 그때는 앉기만 앉으면 화두가 잘 들렸다. 그 당시 백봉 선생님에게 받은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이란 화두를 가지고 참구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앉기만 앉으면 금세 몸을 잊어버리고 오직 화두만 들렸다.
그러자 어느 순간 화두가 딱 끊어지면서 어떠한 실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때에 심경을 비유해본다면, 포항제철 같은 커다란 공장에서 엄청나게 큰 기계들이 돌아가고, 그 소음에 사람말소리 조차들을 수 없다가 정전으로 갑자기 기계가 딱 멈췄을 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적적함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리고 나자 자신감이 딱 생겨 화두에 대한 “예리한 칼을 들고 쫓고 쫓을 새 갈 곳 없는 ‘동산수상행’이 내 집안 소식을 토하는구나. 산은 푸르고 물은 맑은데 할 일도 많았던 내 집안 일이 하나도 할 일없는 그대로구나”라는 답을 달아 선생님에게 보여드렸다.
그 글을 보시자 선생님께서는 “그렇다. 이제부터 너는 공부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고 하시고 대중 앞에 공표를 하셨다. 그날 그 실감을 경험한 이후, 지금까지도 토요일과 1주일철야정진은 내 불교공부의 훌륭한 방편이 되고 있다.
지금은 백봉선생님 주창한 새말귀(新話頭) 화두를 참구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행하더라도 ‘항상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무상법신이 자체성이 없는 유상 색신(몸뚱이)을 굴린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면, 바로 선이 된다는 화두참구법이다. 이를 통해 난 ‘평상시에 모습을 잘 굴리자’는 생각으로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