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디에 고통 없는 삶이 있을까. 부석사 돌계단에는 내 눈물이 고여 있다. 지나간 날을 뒤돌아보면 안개 드리워진 숲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내 자신이 있다. 인간 세상에 고통이 없다면 부처님은 안계셨으리라. 나는 자신에게 물어 본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간사한 인간이었는가를….
그러나 지금은 나날이 즐거운 날이다. 내 가슴속에 부처님이 계시기에 언제나 즐거움만 넘친다. 법당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저절로 흐르는 눈물, 나 같은 미천한 것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어여삐 여겨주신 부처님 전에 이 마음을 드린다. 마음이 더 없는 행복감과 평온함으로 가득찬다. 내가 진실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고 이 세상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히리라.
나는 어릴 적에 염주를 목에 걸고 다녔다.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는 국민학교 3학년 무렵부터 염주를 목에 걸고 다녔는데, 그때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부모님이 그렇게 해주시니까 자랑 삼아 걸고 다녔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장난치고 놀다가 어떨 때는 염주 끈이 끊어져 알맹이를 잃어버린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어머니는 예전부터 부석사에 다니셨는데 내가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이다.
절에 가실 때마다 어머니는 밤새 무엇을 하시는지 새벽녘에 잠깐 눈을 붙이고는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절에 갈 준비로 분주하셨다. “부처님한테 갈 때는 몸도 깨끗해야 하고 마음도 청결해야 한다.” 어머니는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은 팔순이 가까운 연세이신 어머니가 절에 다니기 시작한지는 오래 전부터라고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절에 다니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도 하였다. 언젠가 나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다가 이틀 밤을 절에서 보낸 적이 있다. 사월 초파일을 하루 앞두고 어머니는 광목 자루에 쌀 몇 되를 넣고 나를 앞세워 부석사로 갔다. 하루 한번 다니는 버스를 타고 부석에 내려서 절까지 3킬로 정도 걸어갔다. 계곡 오솔길 양쪽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활짝 웃음을 터트리고 반가워라 손을 흔들었고, 어머니는 무엇이 즐거운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 했다. 한참을 걸어 절에 도착 했을 때 어느새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처음 가보는 절, 나에겐 너무나 신기한 모습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법당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덜컹 겁이 났다. 지은 죄가 너무나 많아서 부처님 앞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부처님, 저는 평소 잘못한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집에 어떤 스님이 오셨는데 목탁을 두드리는 것이 무슨 의미인 줄 도 모르고 그 스님을 놀리다가 어머니한테 야단맞았습니다. 정말 잘못 했습니다. 부처님…’ 나는 고개를 숙이고 부처님의 모습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절을 하는 동안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어머니는 부처님께 절을 하면서도 매번 자세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무슨 잘못이 그렇게 많아서 절을 하고 있는 걸까? 어머니는 무서움도 없고, 지은 죄도 없는 줄 알았는데…’ 얼마 후 어머니는 부처님 앞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방금 울었죠?” 어머니는 말없이 빙긋 웃기만 하셨다. 법당을 나와 잔디밭에 앉아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초여름 밤의 향기를 마셨다.
산사의 밤은 점점 깊어 가고 어머니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내가 처음 이 절에 왔을 때 너는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단다. 돌이켜보면 까마득한 옛날 일이지. 네 아버지를 만나서 시집 온 이후 줄 곳 이곳을 다니다가, 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로 나는 부처님께 의지하여 살아왔지. 그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아 준 것도 부처님의 보살핌이었지.”
어머니는 오랫동안 절에 다니신지라 절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절간 여기저기로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 저런 것을 가르쳐 주기도 하셨다. 그날 밤 나는 그 곳에서 동자승을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한테서 늘 말로만 듣던 동자승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되자, 왠지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워졌다.
“동자승은 여기에 있으면 학교는 어디에 다녀요? 그리고 머리 빡빡 깎고 창피해서 어떻게 학교에 다녀요?”
내가 그렇게 묻자 어머니는 “쉿!” 하면서 조용하라고 하셨다.
동자승은 아홉 살이라 했는데, 어머니를 보자, “보살님?” 하면서 응석 부리 듯 다가왔다. 어머니는 두 팔로 동자승을 껴안고 한참 서로의 얼굴을 비볐다.
“보살님, 지난번에 저한테 주신다고 약속하신 염주는 어떻게 되었어요?”
“네, 여기 있지요. 자…”
어머니는 가방에서 염주를 꺼내 동자승의 목에 걸어 주었다.
“아이고, 우리 스님. 예쁘기도 해라.”
동자승의 손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눈가에 눈물이 글썽글썽 하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절에 다니면서 눈물만 늘었는가 봐. 왜 저렇게 잘 우실까?’
산사의 밤은 깊어 가고 나는 커다란 방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잠을 자야 했다. 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 한쪽에서 종이에 무엇인가 글을 쓰고 있었다.
삐뚤삐뚤 써 내려 간 글씨를 보며, “어머니, 제가 써 드릴게요.” 하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한사코 자신이 쓰겠다며 나에게 얼른 잠이나 자라고 하셨다. 새벽이 가까워지고 아직 어둠은 걷히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세수를 하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동자승을 옆에 앉히고 무어라 이야기를 하더니 가방 속에서 옷 한 벌을 꺼냈다. 동자스님의 옷이었다.
“우리 스님 드리려고, 내가 손수 만든 건데. 자, 입어 봅시다. 스님.”
“아이고, 스님 참말로 근사하네… 이 보살님이 항상 '동자, 동자' 하더니만 스님 옷 한 벌 해 왔네. 동자스님은 참말로 좋기도 하겠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웃으면서 어머니한테 인사를 했다. 나는 하룻밤 사이에 너무나 다른 세상 구경을 한 것 같았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머니의 우는 모습, 그날은 몇 번이나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가 항상 밝게 웃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하였다.
날이 밝자 나는 동자승과 함께 어머니를 따라 어제 저녁에 들렀던 법당으로 갔다. 촛불은 낮에도 변함없이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 부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법당에 고요가 흘렀다.
‘부처님, 지금까지 제가 잘못한 거 어젯밤에 다 말씀 드렸는데, 이제 저를 용서 하신 거죠? 우리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부처님께 진심으로 잘못을 빌면 부처님이 다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거든요.’
나는 부처님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기도를 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머니는 몇몇 사람들과 동자승을 데리고 뒷산 길을 걸었다. 소나무 뿌리가 흙 밖으로 삐죽이 튀어 나와 지나가는 발길에 걷어 채이자 어머니는 낙엽을 긁어 나무뿌리를 덮어 주었다. 산길을 조금 올라가다 널따란 바위 앞에 자리 잡고 앉은 어머니는 오래 전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 오래 전 일이지… 내가 처음 이 절에 왔을 때, 노스님 한 분이 계셨어. 그 스님은 내가 마음이 답답하여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어떻게 아셨는지 내게 ‘마음을 다 버리고 살게나. 아직도 마음속에 무슨 욕심을 그렇게 담고 사는가. 그것이 괴로움을 낳는 것일세. 어서 버리게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는구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스님이셨지. 마음이 흔들려 갈팡질팡 하고 오락가락 하던 나를 붙잡아 주셨던 스님이셨는데, 지금은 극락세계에 계실 거야.”
어머니는 먼 산을 바라보며 지난날을 회상하고 계셨다.
“그리고, 한 오년 전인가, 여기에 있는 동자스님을 만났지. 그 때 동자스님은 코흘리개였는데, 하루는 밤에 잠을 자다가 일어나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고 그렇게 울었단다. 주지 스님도 나서서 달래고 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달랬지만, 동자 스님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지. 그러던 중에 내가 ‘동자 스님, 엄마 여기 있다.’ 하면서 내가 동자 스님을 품에 안고 달래자 그때서야 울음을 뚝 그치고 그 길로 잠이 들었지. 그때 나는 동자 스님이 내 아들같이 느껴졌어. 너무나 슬피 울던 동자 스님의 모습. 이튿날 아침 나는 부처님 앞에서 동자 스님을 내 아들로 보내 준 인연에 감사한다고 기뻐하며 많이도 울었단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있던 동자스님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아들 동자스님, 부처님이 계시는데 울긴 왜 우나요.”
어머니는 옷소매로 동자스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머니가 항상 내게 들려 주셨던 동자승의 이야기는 바로 여기 있는 동자 스님이었다. 절에 가면 아들이 있다고 종종 말하시던 어머니는 절에 다녀오실 때마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보였다. 한 손에는 동자 스님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내 손을 잡고 산길을 내려왔다.
청설모 한 마리가 산길을 쪼르르 올라오다가 우리 일행을 만나자 꼬리를 치켜들고 황급히 나무 위로 올라갔다. 밝은 햇살이 내리는 산사의 푸르름은 어제보다 더해가고 그윽한 향내음은 코끝을 지나 산천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동자승의 하얀 고무신은 어머니 앞에서 사뿐 거리고, 웃음 머금은 어머니 얼굴에는 초파일의 밝은 태양이 내리고 있었다.
부석사에 올 때마다 그때의 일이 눈앞에 그림처럼 떠오른다. 그때의 동자 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이 땅에 살아가는 헐벗고 굶주린 모든 이들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