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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본성은 마음 하나로 만들어졌다’
화엄경 법문은 대장경의 핵심입니다
“마음이 우주의 근본이다.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다. 응당 우주의 본성을 살펴보니 일체가 오직 마음 하나로 만들어졌도다.”
부처님의 이와 같은 <화엄경> 법문은 팔만대장경의 핵심이며 골자입니다. 유물론에서는 물질이 근본이라 하여 유기적 정신작용도 무기적 물질(無機的 物質)이 고도로 발전한데서 나오는 것이라 하니 과학적 인과법칙 상에서도 크게 불합리한 사상입니다. 무기적 물질은 아무리 발달을 해도 물질이지 유기적 정신체가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사상을 뒤집어서 물질이나 정신의 근본이 한 마음이니 물질과 마음이 둘이 아닌, 색공불이(色空不二) 색심일여(色心一如)의 도리를 설하신 것입니다.
불법은 바로 이 마음도리를 이론만이 아니고 실제로 깨닫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이 도리를 깨닫고서 선언하시되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고, 유정 무정이 모두 부처를 이룬다(一切衆生 悉有佛性 有情無情 悉皆成佛)”고 하셨습니다.
후대의 조사스님들도 이 진리를 깨달아 증득하신 것이니 조동종의 유명한 천동정각(天童正覺) 선사께서는 그의 <묵조명·默照銘>에서 “일체 만상삼라가 광명을 내며 설법하고 있으니 각각 서로 증명하여 밝고 맑게 드러났다” 하시고, 유명한 송나라 때의 대문호 소동파 거사도 이 마음도리를 실제로 깨닫고 오도송에서 “시냇물 소리가 바로 부처님 설법이요, 푸른 산빛은 어찌 부처님의 청정법신이 아니랴. 깊은 밤에 깨달아 얻은 팔만사천 도리를 뒷날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까?(鷄聲便是長廣說 山色豈非淸淨身 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 하였습니다.
나는 출가 전 세속에서 부처님의 마음법에 대해서 처음 접했을 때 이치적으로는 크게 수긍이 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마음이 우주만유와 유정 무정의 근본이며, 초목와석과 산하대지가 방광설법(放光說法)을 하고 있는가, 이 마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의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서(禪書)를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보조국사의 <수심결>과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등에서 “이 마음은 텅 비어서 고요하되 신령스럽게 알고, 죽어서 깜깜하지 않고, 초롱초롱 살아 있다(空寂靈知 惺惺寂寂)”고 하신 말씀에 놀랐습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일부러 짓는 마음이지 저절로 성성적적한 본래의 마음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서 심히 가슴이 답답하고 의심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칠일칠야를 대의심삼매(大疑心三昧)에 들어 식음을 전폐하였으니, 타고난 약체인지라 신체의 수기(水氣)가 마르고 화기(火氣)가 치성하여 머리는 불덩이 같고 눈에서는 불이 왔다갔다 하는 대열병을 앓았습니다. 이때 일본 임제종의 중흥조이신 백은선사(白隱禪師)도 참선중에 이런 병으로 고생하셨음을 알고 일본의 선승 야마다 레이링(山前靈林)이 쓴 <선학독본>을 읽었습니다. 참선중에 상기가 될 때는 가만히 기운을 내려서 단전에 화두를 들고 조식(調息)으로 지관타좌(只菅打坐)를 하라는 구절을 읽고, 이와 같이 앉아서 딱 숨 한 번 들이쉬는 찰나, 지금까지의 칠통 같던 큰 의심이 타파되었습니다.
이때가 출가 전인 25세 때의 일이었으니, 홀로 우주의 근본인 마음의 문제에 스스로 의심을 품고 7일만에 그 의심을 타파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어느 누구에게서도 화두참구법을 배운 일이 없었지만 알고보니 조사스님들의 화두법과 똑같았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선지식의 지도를 조금만 받았다면 그런 큰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후로 세간에서 임운자재(任運自在:모든 일에 사로잡힘 없이 정진함)하게 지내면서 조사어록과 경전을 두루 섭렵하던 차 인근의 효산(曉山)스님이 변산 내소사 서래선림(西來禪林)에 해안(海眼)선사라는 선지식이 계시니 친견하도록 권유하였습니다. 이에 선사를 찾아뵈니 일견에 선풍도골의 도인 기풍이 있었으며, 문장과 강경설법에도 능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선사께 입실하니 선사께서는 “임제선사가 30방을 맞고 깨친 소식이 무엇인가?” 묻기에, 일언지하에 무어라고 답하였더니, 선사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인가하시었습니다. 이후 제자들에게 “이 사람은 세간에 있으면서도 큰 공부를 성취하였는데, 너희들은 무엇하느냐”며 경책하시었지요. 그후 선사만 기거하는 서래선림의 토굴에 여러 날 유숙토록 권유하시며 전법게를 주시고, 선사께서 강의하신 <금강경> 원고를 교정하여 서문을 쓰고 출판까지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나의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원고만 교정해 보내드리고 출판까지는 보아드리지 못했습니다.
그후 나는 제방의 선지식을 친견하고 출가할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효산스님이 “만암대종사의 사법제자(嗣法弟子)로서 동진비구로 당대 대선지식이신 서옹선사(당시 법명은 石虎禪師)께서 일본에서 귀국하셔서 전남 장성의 백양사에 주석하고 계신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나는 공부를 성취하고 인정을 받은 터라 거리낌없이 서옹선사를 찾아 뵈니 학형(鶴形)의 자태에 눈빛은 늠름하게 빛났습니다. 입실하여 문답하니 선사께서 “깨침이 아직 구경처(究竟處)는 아니니 조금 더 공부하라“는 것이었지요. 이에 나는 일본선사들의 예까지 들어가며 공부경지를 피력하였으나, 선사는 “아니야, 아니야“라며 허락치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의 공부를 깊이 반성하며 선사의 지시를 거역치 않고 더 공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사께서 출가하여 공부할 것을 권유하시고 바로 다음 달인 7월 보름에 수계득도할 것을 명하셨어요. 이때가 37세때로서 행자과정도 거치지 않고 바로 수계한 셈입니다.
이후 선사를 모시고 백양사 선원에서 3하안거를 마쳤어요. 선사께서 72년도에 조계종 제5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상경하시며, 서울로 오도록 명하시어 뒤이어 상경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30여년을 선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오로지 수선정진으로 지내온 것입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일단 선지식을 만나 화두견처를 인정받지 못하면 옳다고 인정받을 때까지 줄곧 떠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해야 할 것이며, 공부가 익기 전에는 돌아다니지 말라는 조사스님들의 엄훈을 따라서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내가 처음 서옹선사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때 떠나버렸다면 공부에 큰 진전이 없었을 것입니다. 과연 다시 깊이 참구를 해보니 종전의 깨침과는 다른 높은 차원의 공부가 있음을 알겠더군요.
무릇, 화두공부의 철칙은 먼저 움직임을 떠나 고요할 때 한결같은 동정일여(動靜一如)의 과정을 거쳐서, 다음으로 꿈속에서도 공부가 한결같은 몽중일여(夢中一如)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잠이 꽉 들어서 꿈도 없는 데서 한결같은 숙면일여(熟眠一如)의 경지에서, 다시 죽은 가운데서 살아남을 얻는 사중득활(死中得活)이 되어야만 의단(疑團)을 부수고 화두를 바로 알아서 통명자기(洞明自己:자기를 분명히 밝힘)하여야 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깨치고 나서도 몽산선사(夢山禪師)는 반드시 대종장(大宗匠)을 찾아 단련하여 법기를 이룰 것이요, 조금 얻은 것으로 만족치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깨쳤다는 사람들이 말할 때는 깨달은 것 같아도 경계에 대하여서는 도리어 미혹하여, 말내는 것이 술취한 사람 같고, 행동이 속인과 같으며, 마음 기틀의 숨고 나타나는 활용을 알지 못하고, 법을 말하매 사(邪)와 정(正)을 알지 못하니 이는 모두가 눈밝은 선지식을 만나 말후대사(末後大事)를 마치지 않는 까닭으로 이론이 정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납자들은 무엇보다도 위와 같은 경책을 경계할 것이며, 아무나 함부로 초불월조(超佛越祖)의 수작을 지껄이지 말아야 합니다. 행해(行解)가 상응해야 함을 조사스님들이 역설하신 것입니다.
특히 요즈음 공부하는 사람들이 돈오점수를 오후보임(悟後保任)으로 잘못 알고서 돈오돈수의 원증원수(圓證圓修:증득함이 원만하고 닦음이 원만함)와 혼동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돈오돈수의 오후보임은 원증원수의 불오염수(不汚染修:더럽혀 물들지 않는 닦음)요, 돈오점수는 심중유망(心中有妄:마음 가운데 아직 망념이 있음)의 제망점수(除妄漸修:망념을 제하여 점차 닦음)인 것입니다.
<육조단경>에서 육조스님께서 남악스님에게 묻기를 “도리어 수증이 있느냐?”(還可修證否) 하니, 남악스님이 답하되 “수증은 없을 수 없으나, 오염은 없습니다.” 하였으니, 돈오점수와는 천양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 선계의 일각에서는 통불교를 주장하여 선교일치니, 염선일치니 주장하니 조계종의 근본 종지인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종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망중대망(妄中大妄)입니다.
화두를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화두란 의심입니다. 화두 그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고, 나를 의심하는 것이고, 부처와 조사를 의심하는 것이고, 법계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큰 의심이 큰 진리를 보게하는 것입니다.
임신년(1992) 납월 팔일에 서옹선사께서 “부처님의 정법을 제산장실(濟山丈室, 제산은 졸납의 법호)에게 부촉하시는 전법게송을 주시니, 서울의 관악산 기슭에서 임제선원을 개당하여 장안의 수재들과 지성인들이 모여들어 정통조사선을 편 지도 어언 10여 성상이 넘었습니다. 지난 해에는 선조사(先祖師) 만암대종사(曼庵大宗師)의 문집을 편집 출간하였고, 요즈음은 서옹대종사의 문집을 결집 편찬하는 일로 여념이 없습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위로 은법사(恩法師)이신 서옹선사께서 계시니 큰스님을 모시고 보좌하며 공부할 따름이지 아직 나같은 사람이 외람되이 앞에 나설 때가 아니므로 공개적인 법문은 고사하지만, 그러나 기자가 뒤에 공부하는 납자들에게 탁마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격외송구(格外頌句:격 밖의 본분도리를 제창한 송구)를 두어 수 간청하니 서옹선사의 고준한 법문에 단적으로 화답한 게송 2수를 드릴까 합니다.
吾師肯提水逆流(오사긍제수역류)
倒騎須彌出重關(도기수미출중관)
無佛無跡淸風凜(무불무적청풍름)
一券擊破萬疊山(일권격파만첩산)
우리 스승께서 즐겨 물이 거꾸로 흐르는 법문을 제창하시고
거꾸로 수미산을 타고 겹겹 관문을 부수어 나가도다.
부처도 없고 종적도 없고 맑은 바람이 늠름한데
한 주먹으로 만첩산을 쳐부수도다.
臨濟指揮百萬軍(임제지휘백만군)
靑天霹靂平地風(청천벽력평지풍)
曹洞隱顯死中活(조동은현사중활)
峻酸綿密畢竟同(준산면밀필경동)
임제는 백만대군을 지휘하는 기상이니
푸른 하늘에 벽력이 일고 평지에 풍파가 일도다.
조동의 종풍은 숨고 나타나 죽은 가운데 살아나니
기봉이 준산하고 행지가 면밀함이 필경에는 한가지로다.
끝으로 백양사 백학봉 앞에서 고불고조(古佛古祖)의 오도기연(悟道機緣)에 화답한 격 밖의 소식을 담은 송구 하나를 붙입니다.
馬祖全提大一喝(마조전제대일갈)
吐聾動地又飜天(토롱동지우번천)
殺佛殺祖鐵樹花(살불살조철수화)
任運高歌白鶴前(임운고가백학전)
마조가 온전히 들어 크게 할을 하니
혀를 토하고 귀먹으니 땅이 움직이고 하늘이 뒤집히도다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니 무쇠나무에서 꽃이 피고
임의로 백학봉 앞에서 높이 태평가를 부르도다
정리=정성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