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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이 몸에 배어들고 뒷사람 눈 귀 멀게”
해지기 전에 아주 잠깐
담벼락에 기대섰다 떠나간 나무 그림자처럼
出家한 사람을
어디서
만나볼 수 있을까
풀더미 속에 앉아 풀더미가 되어버린 집
문짝이 떨어지고 지붕에 별 비가 새고
텅 빈 집, 바람만 와서 자고 가는
섬광 같은, 달빛같이 사는
(이성선 詩 ‘출가’ 전문)
설악산 시인 이성선이 느닷없이 출가한 사람을 찾는다. 웬 연유일까? 시인이 찾고 있는 ‘지붕에 별 비가 새고, 바람만 와서 자고 가는’ 곳에서 ‘섬광 같은, 달빛같이 사는’ 출가인은 어디에 있는가? 서울의 담벼락에도 개나리가 노랗게 핀 4월의 한날 서울 봉천동 임제선원 조실 종성스님을 찾았다. 주택가 2층집, 열댓 평 남짓한 마루가 법당이다. 예서 인근의 서울대 교수들과 법조인들이 모여 법담을 나누고 좌선삼매에 든다. 번듯한 절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곳은 문짝이 떨어지고 지붕에 별 비가 새는 집이다. “그 동안 바빴지?” 오랜만에 들르는 기자를 나무라듯 반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스님도 몸고생을 꽤 했다. 신경성 위궤양으로 이십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이젠 괜찮아”하며 손사래를 치는 뒤로 성철·향곡·서암 스님이 앉아 파안대소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얼마 전 성철스님의 생가를 복원하여 준공한 겁외사 얘기를 꺼냈더니 “준공 법회에 원로 대덕스님들이 모였다 하는데, 그러한 자리라면 무엇보다도 평소 성철스님께서 역설하신 유지를 받들어서 부처님 만세정법의 표준을 세우는 중대한 일들을 논의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노선승의 근황은, 정체성 상실 위기에 처한 조계종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니 성철스님이 떠난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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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계 후학들이 성철스님을 존경하는 참다운 의미는 부처님의 골수 심법(心法)인 조사가풍을 부흥하기 위해 일생을 실참증오를 통한 이론과 실지를 밝히신 희대의 정안종사(正眼宗師)로서 말세의 후학들에게 방황하지 않고 부처님 정법을 따라서 부지런히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신 데 있습니다.”마음공부의 핵심생명이라 할 수 있는 종지(宗旨)와, 마음공부의 올바른 계보라 할 수 있는 종통(宗統)과, 마음공부의 올바른 사표라 할 수 있는 종조(宗祖) 문제에 있어서 근래 한국불교 조계선종사상 성철스님만큼 분명하고도 올바른 이론을 세우신 분은 없다는 설명이다.
“그 분의 가르침을 받들어서 수행의 가풍을 세우고 법도를 세우는 것이 진정으로 스님의 뜻을 잇는 길인데, 요즘 안목이 없는 납자들과 학자들이 분별망식으로 종지, 종통, 종조 문제에 대하여 제멋대로 떠들어대고 있어요. 오히려 종단에서 방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노선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종지를 밝히고 종조의 종통을 계승하여 대중의 바른 안목이 되어야 할 총림의 방장이나 조실까지도 바른 안목이 없는 대중들이 세력을 결집하여 아무나 선출해 버리는 현상까지 비일비재한 실정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불조의 정법혜명(正法慧命)을 단절해버리는 중대한 사태입니다.
불법은 대중들의 견해보다 눈밝은 정안종사의 법으로 면면히 이어져왔다. 법을 잇는 중대사는 대중들의 숫자로 가름하지 않았다. 구봉스님의 일화(九峯不肯구봉스님이 긍정치 않음)는 이 같은 불교만의 독특한 가풍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원 행사(靑原行思) 스님의 4세손에 석상 경저(石霜慶諸) 스님이 계셨는데, 석상 칠거(石霜七去)라는 화두로 유명한 스님이다. 즉, 휴거(休去), 헐거(歇去), 냉추추거(冷湫湫去), 일조백련거(一條白練去), 고목한회거(枯木寒灰去),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 고묘향로거(古廟香爐去)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석상스님이 열반에 드시면서 회상의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떠나시니 그 때 대중들이 회상의 부조실로 있던 수좌를 조실로 추대했다. 그러나 당시 석상스님의 시봉 제자였던 구봉스님만이 이 일을 인정하지 않았다. 구봉스님이 그 수좌에게 물었다. “선사 스님께서 말씀하신 ‘쉬어 가고, 쉬어 가며, 한 가닥 흰 실을 길게 펴듯 하며, 한 생각이 만년 가듯 하며, 마른 나무와 찬 재처럼 가며, 옛 사당에 향로처럼 가라’ 하신 칠거 법문이 무슨 뜻인지 말해보라.”이에 그 수좌가 “명일색변사(明一色邊事한결같이 순일무잡한 경지를 밝힌 도리)”라고 답했다. 구봉스님이 말하되, “그것은 선사의 뜻이 아니다” 하고 그 수좌를 대중의 의사와는 다르게 오직 홀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그 수좌는 향 한줄기가 타는 동안 좌탈(座脫)하여 생사에 자유자재함을 보였으나, 구봉스님은 그 수좌의 등을 두드리며 “앉아 죽고 서서 죽는 일은 능하지만 우리 스님의 도리는 꿈 속에서도 보지 못했도다”고 끝내 긍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불조의 정법은 죽고 살기를 마음대로 하는 고참수좌의 공부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 하물며 이 도리를 세우고 논하는 데 있어서 어찌 분별망정(分別妄情)이 죽 끓듯 하는 대중의 구미대로 결정할 일이겠습니까? 예로부터 승단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결집된 대중의 뜻이라 하더라도 정(正)과 사(邪)를 종사로부터 증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정법문중의 독특한 전통입니다. 그러므로 총림 선방의 방장과 조실의 책임은 방(棒)과 할(喝)로써 대중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올바른 공부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성철스님께서도 생시에 <선문정로(禪門正路)> <본지풍광(本地風光)> <한국불교의 법맥>의 3대 명저를 친히 저술하시고 문도들에게 이르시되 ‘선문의 생명인 종지, 종통, 종조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이대로만 따라서 공부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조계선종의 종지, 종통, 종조를 확립하는 바른 길은 성철스님이 세우신 이론에 추호도 이의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정안종사(正眼宗師)의 필생의 노력을 헛되지 않게 우리 전 조계종도들은 그 유지를 겸허하게 받들어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시급한 본분사입니다.”출가 이후 줄곧 30여년을 오로지 화두선 수행에 전념하고 계신 종성스님의 눈길이 창 밖으로 향했다. 잠시 후 시봉인 법현스님에게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을 찾아오라고 일렀다. 책을 펼쳐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읽어나갔다. “요즈음 사람들이 마음이 오만하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바가 많아서 총림에 비록 들어와서도 참구에 게으르고, 더러는 참구할 마음을 가지기는 해도 눈밝은 종사를 택하지 않고 삿된 스승의 그릇된 지도를 받아 함께 바른 법의 뜻을 잃어버리는지라. 육근 육진에 얽매임도 벗어나지 못하고서 번번이 삿된 알음알이로 마구니의 세계로 들어가서 정법의 인연을 전부 잃어버리도다. 오직 주지직(방장)에 급급하여 외람되게 선지식을 자칭하여 헛된 이름으로 세상사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니 죄악이 몸에 배어듦을 말할 것이 있으리요. 이것은 뒷사람들을 눈멀고 귀먹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정법의 교풍을 시들어 없어지도록 억압하는 것이다.…” 법안종의 개창 조사인 법안스님이 일찍이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경책한 것은 아니었을까. 침묵이 길어졌다. 말없이 옆에 앉아있던, 노심초사하는 스님의 심중을 잘 알고 있는 법현스님이 거들었다. “군맹무상(群盲撫象여러 장님들이 코끼리를 말함)이지요. 여덟 장님의 구구한 의견이 어찌 눈밝은 한 사람의 정견(正見)을 당하겠는가, 하는 말씀이지요. 부처님께서는 <대반열반경> 사자후보살품에서 이르시길, “심안(心眼)이 열리지 못한 중생이 불성(佛性)을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은 마치 여덟 사람의 장님이 코끼리를 제각기 만져보고서 그 모양을 쟁논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혹자는 상아를 붙잡고 코끼리를 무뿌리 같다고 말하며, 혹자는 귀를 붙잡고서 코끼리는 화살통과 같이 생겼다고 말하며, 혹자는 머리를 붙잡고서 코끼리는 차돌 같다고 말하며, 혹자는 코를 잡고서 코끼리는 절구공이 같다고 말하며, 혹자는 다리를 잡고서 코끼리는 절구통 같다고 말하며, 혹자는 등을 만져 보고서 코끼리는 평상 같다고 말하며, 혹자는 배를 만져보고서 코끼리는 단지 같다고 말하며, 혹자는 꼬리를 만져보고서 코끼리는 노끈과 같이 생겼다고 주장하나, 이들 모두는 어느 누구도 코끼리의 본래 모습을 바르게 보고 말한 것이 아님을 비유로 설하신 것입니다.
화제를 돌렸다. “요즈음 마음수련원이다, 아봐타니 해서 새로운 수행법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불자들이 혼란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요?”스님의 답변은 단호했다. “자기의 성성적적(惺惺寂寂)한 본래 마음자리에서 오직 화두만 들고 나가야지 침공체적(沈空滯寂)의 선정주의(禪定主義)나 능소대립(能所對立)의 소승관법 따위로 오도하는 할안( 眼)의 돌팔이들에게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이어 사야다 존자와 바수반두 존자의 일화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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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다 존자가 말했다. “나는 도를 구하는 마음이 없되 또한 전도(顚倒)된 마음이 없고, 나는 예불하지 않되 또한 경만한 마음이 없고, 나는 길게 좌선하지 않되 또한 게으른 마음이 없고, 나는 꼭 하루 한 끼만 먹는 것은 아니로되 또한 잡된 마음으로 먹지 않고, 나는 족한 줄 아는 마음이 없되 또한 탐욕을 일으키는 마음도 없으니 마음 속에 추호라도 무엇을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을 진여일심의 도라 하느니라.” 바수반두가 이 법문을 듣고서 비로소 번뇌가 일어남이 없는 본래 마음자리의 지혜를 깨달았다.
“대중들의 깜깜무지한 안목으로 볼 때는 바수반두의 고행을 정법으로 알고 모여들었지만, 만약 사야다 존자 한 사람의 정안(正眼)이 아니었던들 바수반두와 그 추종자들은 영원히 허망한 근본에 떨어져 불조의 증득하신 진여일심의 대도는 성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알기 어려운 정전(正傳)의 심법(心法)인 바 여기에 이르러서 눈밝은 선지식 스님을 표준삼아 공부하지 않고 어리석게 자기 주장을 하며 패거리를 조성하여 거짓말로써 중생들을 속이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비방한다면 진사겁토록 혀를 빼서 땅을 가는 지옥고를 면치 못할 것임을 조사스님들은 경계를 하셨으니 참으로 그 죄보는 무서운 것입니다.” 공부인에게 탁마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게송 한 수를 부탁드렸다.
“승려가 됐던지 학자가 됐던지 선을 논하고 싶으면, ‘이 문안에 들어와서는 지해(知解)를 두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는 것이 선문의 철칙임을 알고 먼저 부지런히 화두부터 참구하여 타파해야 할 것입니다. 道得也三十棒 道不得也三十棒
如何是三十棒 喝!
(말해도 삼십방이요, 말하지 않아도 삼십방이니, 이 삼십방이 무엇이냐? 악!)”
글=정성운 기자
(swjung@buddhapia.com)
사진=고영배 기자
(ybgo@buddhapia.com)
종성스님은
마음이 우주만유와 유정 무정의 근본인가. 초목와석과 산하대지가 방광설법(放光說法)을 하고 있는가. 마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는가. 출가 전 종성스님의 화두였다. 어느 날 <선가귀감>의 “이 마음은 텅 비어서 고요하되 신령스럽게 알고, 죽어서 깜깜하지 않고 초롱초롱 살아 있다(空寂靈知 惺惺寂寂)”는 구절을 읽고 크게 놀랐다. 내소사 서래선림에 주석하고 계신 해안스님을 시봉하다 37세 되던 해인 1968년 현 고불총림 방장인 서옹스님을 은사로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들어섰다.
70년대 초 서옹스님이 조계종 5대 종정으로 계실 때 시봉하기도 했으나, “참선하는 사람은 일단 선지식을 만나 화두견처를 인정받지 못하면 옳다고 인정받을 때까지 줄곧 떠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해야 할 것이며, 공부가 익기 전에는 돌아다니지 말라”는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수행하고 있다. 92년 서옹스님으로부터 “부처님의 정법을 제산장실(濟山丈室제산은 종성스님의 법호)에게 부촉하노라”라는 전법게를 받았다. 10여 년 전부터 봉천동 관악산 기슭에 임제선원을 열어 수행에 전념함과 동시에 길을 묻는 이들을 제접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