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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해서 말한다면 <금강경>에 상이 없는 것으로 전체를 삼고, 주함이 없음으로써 체를 삼고. 마음의 용심하는 것으로 용을 삼으라 했습니다.
어떤 스님은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그러기도 하고 혹은 손가락을 척 내밀기도 하고 혹은 이렇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가리키기도 하는데 그것이 다 한 물건을 가리키는 방법입니다.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이 모든 스님네의 공부하는 방법이지요.
이 세상물건은 모든 것이 그늘이 있으면 양지가 있고, 여자가 있으면 남자가 있듯이 상대가 있는데 이 물건은 그렇지가 않아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뭐라고 입만 열면 한방망이 맞아야 하지요. 말이 안 통하는 겁니다. 언어도단이고, 말 길이 끊어진 자리지요.
또, 천겁을 지났어도 항상 그 자리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할 때는 ‘불기 몇 년이다’ 그러지만 부처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한 때’ 라고 그랬지. 불기 몇 년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서 그런 것이지요.
견성한 분들은 다 자기가 본 마음 자체를 얘기합니다. 비유컨대 이만한 데를 들여다 보면서 저쪽문에서 들여다본 사람은 저쪽에서 본 것을 그대로 얘기하고 이쪽에서 본 사람은 이쪽에서 본 것을 얘기하지요. 동서남북에서 본 것은 다 다르지만 본 당체는 하나입니다. 마음 자리를 찾기 위한 방법이 다 다르지만 간화선이니 위빠사나니 어쩌니 하는 것보다도 하나로 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니까 그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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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 인해서 모든 것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도 다 거기에서 생겨나고 모든 것이 다 마음자리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이 마음자리를 등지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자리의 크기를 말하면 이 우주를 싸고도 남고, 작기로 말하면 햇빛에 비쳐보이는 잔잔한 수없이 많은 먼지 속에도 들어가 있는 것이지요. 크면 작은 데 못 들어가고 작으면 큰 데 못 들어가는 것이 세상 물건인데, 마음자리는 작고 큰 것에 걸림이 없습니다.
이 도리를 알면 매사가 다 하나로 통하는데 그걸 모르니까 뭐라고 뭐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건 모두 잘못된 소견입니다.
과거 조사님들도 마음자리에 대해 얘기한 것이 800여 가지나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사실 하나로 회통하는 데는 마음자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해도 공부를 해서 깨쳐야만 이 도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인데 번뇌망상 때문에 부처노릇을 못 하고 있습니다. 이 번뇌망상이 공한 줄 알면 본래 부처라 이 말이지요. ‘본래 부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에게 어떤 제자가 자꾸 와서 ‘부처님이시여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하니, 나무를 흔들어서 ‘나무가 어떻더냐? 바람이 부니까 나무가 흔들리지 않더냐’고 했더랍니다. 부처님도 이렇게밖에 못 가르쳤습니다. 가르쳐도 못 알아듣습니다.
또 중국의 어느 조사는 제자가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물으니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왜 맞지 않느냐? 한 물건이 어디 있느냐는 말입니다. 깨치기 전에는 모른다는 말이지요. 물이 뜨거운지 찬지는 먹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옆에서 차고 뜨거운 것을 아무리 말해줘도 모르지 않습니까? 스스로가 맛 봐야 하는 것입니다.
불법을 얘기할 때 아주 고상한 법으로 얘기한다면 지금 얘기한 것처럼 하는 것이고, 성철 스님은 신도들에게 꼭 삼천배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것일뿐 아니라 쓸데 없는 망상을 제거하고 통일된 그 마음자리를 오롯이 수행에 몰두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6년 고행하신거나 달마 스님이 9년 고행하신거나 다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진짜 마음의 도리를 얘기하면 전부 놀라서 도망가 버리지요. 그러니까 초보에서는 초보에 맞게 부처님께 기도를 해라, 삼천배를 해라, 염불을 해야 등등 뭘해라 하는 겁니다. 수련해 나가는 과정이고 자기가 직접 해보아야 합니다. 꾸준히 해 수행의 맛을 본 사람들은 남이 하라 마라 안 해도 열심히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통일되었을 때 공부하는 방법을 바르게 일러줘야 곧바로 들어갈 수 있고 바른 가르침을 받아가게 됩니다. 마음이 하나로 몰입될 때 화두참구가 잘 됩니다.
공부는 이 하나로만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잠깐이라도 화두를 놓치면 ‘염주(念珠)’ 있지요. 생각 념(念), 구슬 주(珠), 염주를 생각하면 또 화두가 잡히는 수가 있어요.
과거 큰스님들이 비유한 말이 있습니다. 밀림 속에서 나무를 베어 끌고 내려올 때 나뭇가지를 다 자르고 나무둥치만 남아야 죽 끌고 내려올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음공부도 그러해야 합니다. 마음 다스리는것도 그와 같이 해야 해요.
화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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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세속에서 공부할때는 다 형체를 가지고 공부합니다. 그런데 이 공부는 아무데도 속하지 않아 형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밥먹으면서, 대변을 보면서, 물건을 팔면서 아무데서나 공부할 수 있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형체가 있는 공부만을 해 왔기 때문에 화두를 가르쳐 주어도 익어지지 않아 자꾸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복잡합니다.
한암 스님이 예전에 저에게 글을 가르치다가 너무 모르니까 ‘너희 할아버지가 글을 했느냐, 할머니가 글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어느 누구도 글을 못배웠다’고 말하니까 한암 스님이 ‘너는 글 하는 소리조차도 못 들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서투르지. 그러나 자꾸 하다보면 과거의 것이 서툴러지고 새로 하는 것이 잘 개척해 나가는 것이 되니까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속 공부든 마음공부든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열심히 하는 사람은 필경엔 그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것이지요.
재가불자 중에도 전생에 많이 한 이는 스님보다 몇 배 공부가 쉽게 되는 이도 있고, 스님이라도 영 공부가 둔해서 안 되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도 오래 오래 꾸준히 한다면 필경에는 그 문으로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조급해 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정성을 다하는 것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부처님법을 만났으니 한번 제대로 발심하여 열심히 해 보시기 바랍니다.
▷ 도견 스님은
해인사 선원 옆 극락전에는 해인사의 부방장격인 전강수좌 도견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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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오대산 문중이지만 세수 25세때 해인사에 온 후 해인사가 좋아서 머물게 됐다. 해인사 모든 수좌들의 수행을 점검 경책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 온 스님은 지금도 일주일간 잠 안자고 수행하는 용맹정진에 방장 스님과 번갈아 나가 경책하고 돌아보는 책임을 맡고 있다.
스님은 매일 새벽 6시 반, 낮 12시만 되면 어김없이 포행에 나선다. 해인사 극락전 뒤로 난 조그마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지족암과 백련암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밑으로 내려와 성철 스님 사리탑을 거쳐 한바퀴를 돌아온다. 1시간이 족히 걸리는 포행길이다.
“스님, 포행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포행길을 따라나서며 대뜸 여쭈었다.
“자기 마음이 어디있는가 살피지” 스님은 언제 어디서나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도견 스님은 스스로를 평함에 “전생에도 부처님 제자였고, 금생에도 부처님 제자고, 역시 앞으로도 이 길을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힘드시진 않으세요?”
“그래야 운동이 되지.” 스님의 한 말씀 한 말씀은 차분하면서도 여여하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위를 옮겨 걷는 80 노스님의 발걸음 또한 결코 빠르지는 않았지만 한결같다. 가다가 재가불자를 만나면 인사도 건네고, 구석구석 자연과의 교분도 쌓아간다.
“저것이 잣나무지, 여기는 잣나무가 많아. 전에는 여기서 여우가 얼굴을 쏙 내밀었어”
자그마한 체구에 인자한 얼굴, 스님은 우매한 기자에게 어떻게 하면 법의 진수를 알려줄까 재미난 이야기들을 섞어가며 시간도 적고 큰 것도 없는 하나를 알아야한다고 시종일관 법문했다.
도견 스님은 1925년 인천시 강화군 화전면 부근리에서 태어났다. 1944년 오대산 동관암에서 지월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으며, 45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고 3년간 교학에 정진했다. 스님은 이후 해인사, 순천 송광사, 선산 도리사, 부산 범어사 등 전국 각지의 선방에서 수행했다. 평생 참선공부에 전념해온 스님은 80년대 중반 중앙종회의장과 해인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