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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많은 법문 가운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성품(자성)을 일깨우는 명 법문 '보는 놈이 곧 여래다'라는 주제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 '보는 놈이 곧 여래다'
그러면 무엇을 본다는 말인가?
저 담연한 일물을 생각하는 그 놈을 바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본다고 보아질 수 있는 물건인가?
아니다, 아니다.
보려고 애쓰면 도리어 보는 마음이 구름이 되니
그 마음가지 마저 비어 허공과 같이하면 저절로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경에 이렇게 이르고 있다.
만일 부처님의 경계를 알고자하면
마땅히 그 뜻을 허공과 같이 하라
멀리 망상과 모든 취(趣)를 여의면
마음가는 곳에 걸림이 없으리라.
망상이란
속으로 온갖 분별과 시비를 일으키는 것이고
모든 취(趣)는 겉으로 받아들이는 온갖 세계의 일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달마 대사는
' 안으로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고 밖으로 모든 인연을 쉬라' 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백치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으라는 말이 아니다.
들어도 들은 바 없고 보아도 본 바 없는 가운데서 자기 일을 충실히 하면 된다.
충실하되 보는 놈, 듣는 놈, 먹는 놈, 입는 놈,
그 놈을 똑똑히 보면 그대로 여래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대의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였는가?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면
다시 한번 내가 붙이는 시 한 수를 들어 보라.
이 정각의 성품은
위로 모든 부처님들로부터
아래로 6범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당당하게
뚜렷 뚜렷히 구족하여
티끌마다 다 통하고
물물 위에 나타나
닦을 것 없이 성취되어
요요명명하다.
언제나 깨달아 있는 우리 본래의 마음이
어느 곳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설파한 시다.
부처님이라 하여 더하고
중생이라 하여 덜한 것이 아니라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ㆍ천ㆍ수라 등 6범이 똑같이 낱낱이 당당하게 구족하고 있고,
티끌ㆍ돌맹이ㆍ나무 하나하나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니
그대로 보면 그만이지
구태여 닦고, 익히고, 이루고, 증하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요요명명(了了明明)이란 또렷또렷하게 분명히 나타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보는 사람이 부처다.
자, 그렇다면 이 부처를 보라(주장자를 높이 드셨다.)
보았느냐?
( 주장자를 한 번 내리치고 또 묻는다)
들었느냐?
이미 분명하게 보고, 이미 또렷하게 들었으면,결국 이게 무엇인가?
같은가 다른가?
같다고 하여도 30방망이 맞을 것이다(三十).
왜냐하면 할! 3*3=9이니라(三三九).
듣는 것도 분별이고 보는 것도 분별이기 때문이다.
같다고 하는 것도 분별이고 다르다고 하는 것도 분별이다.
같다, 다르다 하면 3 x3=9가 되지 않는다.
보고 듣는 것에 팔리는 사람은 불교는커녕 속법(俗法)도 제대로 얻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