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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일요일 오후 조계종 포교사단 허정희(63) 통일 3팀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하나원’ 복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허 포교사는 일요일마다 어김없이 경기도 성남의 ‘하나원’ 분원을 찾는다. 안성에 본원을 둔 ‘하나원’은 국정원 조사를 마친 탈북자들이 2개월간 생활하는 정규 교육기관이다. 분원에는 현재 20세에서 45세까지의 독신여성 180여 명이 기거하면서 남한 사회 적응을 위해 언어, 컴퓨터 등의 교육을 받고 있다.
방송이 나간 후 ‘자립관’ 13평 남짓한 공간, 탱화가 모셔져 있는 법당으로 서른 명 정도의 원생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점심 식사 후 졸음이 밀려오는 시간이라 그런지 몇몇은 눈을 비비면서 들어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일곱 번 정도 법당에 꾸준히 나온 진희(가명, 38)씨가 허 포교사가 가져온 떡이며 과일을 깨끗한 접시에 옮겨 담고 불전에 놓는 모습에서 제법 불자 태가 났다.
“천수경 독경합니다. 저기 교재 갖다 보세요. 몇 쪽이지요?”
허 팀장과 함께 ‘하나원’을 찾은 포교사단 염불포교 6팀장 이선전(65) 포교사의 목탁 소리에 맞춰 독경이 시작됐다. 서른 명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독경소리가 구절마다 딱딱 맞아떨어진다. 계속해서 원생들이 직접 작성한 발원문 낭독, 반야심경 봉독 소리가 낭랑하게 이어졌다.
독경 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 원생들이 평소 궁금해하던 ‘절집 말’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다.
“부처님은 ‘신’하고 무에가 다릅네까?”
“‘일체중생 개유불성(一切衆生 皆有佛性)’이 뭔 뜻이어요?”
사실 이런 질문에 대답을 잘 해야 원생들은 불교의 가르침에 한걸음씩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종교’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가장 쉽게 불법을 전하려면 그들의 궁금증을 자연스레 풀어줘야 한다. ‘하나원’ 분원이 생기자마자 탈북자들의 포교활동에 뛰어들었다는 허정희 포교사에게는 지금도 이것이 가장 큰 ‘화두’다.
“애 많이 먹었지요. 이 사람들이 워낙 ‘종교’란 것이 없는 체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개념을 이해하는 데만도 한참 걸려요. 그래도 부처님 말씀 좋은 건 다 알아요.”
사실 처음 포교 활동을 시작한 2002년에는 법당을 찾는 이가 3~4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허 포교사가 방마다 문을 두드려 모은 불자 수는 이제 35명을 넘어섰다.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하나원에서 꾸준히 법회에 참석하다 사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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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포교사가 법회를 집전하는 동안 개신교 신자 명희(가명, 26)씨는 2층 복도 휴게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명희씨의 말에 따르면, ‘하나원’에는 불교 외에도 개신교와 천주교 단체들이 출입한다. 이 중 개신교 단체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약 7~8명 정도의 개신교 전도사와 목사들이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수시로 ‘하나원’을 방문, 일주일에 3회 이상 원생들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원생의 절반 이상인 70여 명이 고정적으로 교회에 나간다. 안성 본원의 경우에는 상주하고 있는 목사까지 있어 아침저녁으로 기도회가 열린다.
“중국에서부터 남한 선교사들이 마음의 의지가 돼 교회 나가는 사람이 많아요. 그 때 남한 사람이 절을 세웠다는 소린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마을마다 있거든요. 노래도 배우고 사진도 찍으면서 외로운 마음을 달래다보면 발길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지요.”
아직 종교가 없다는 선영(가명, 26)씨는 하나원의 시설에는 불만이 없지만 면회가 일체 금지 돼 있어 외부 사람과 접촉하지 못하는 것은 답답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자주 오는 사람들이 좋죠. 불교 쪽에서도 사람이 온다는 것 정도는 알지만 너무 나이 많은 분들만 오시더군요. 여기 사람들은 거의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같은 또래를 만나서 옷 얘기, 화장품 얘기도 하고 싶고 그래요. 나이 드신 분들하곤 그렇게 하기 힘들잖아요.”
또 다른 원생 정화(가명, 25)씨는 처음 하나원에 들어와서 찾은 곳이 법당이었지만 이제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무턱대고 글(경전)을 읽으라데요. 재미도 없고 중얼중얼, 이상해요.”
일부 원생들의 불교에 대한 바람과 실망에 대해 허정희 포교사는
“솔직히 나이든 포교사 두세 명이 돌아가면서 나오는 시스템으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노래를 해 볼까, 차트 식으로 된 교재를 만들까, 온갖 궁리를 다 했지만 법회 집전하기도 힘에 부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그램이나 포교 인력 부족 문제도 있지만 이선전 포교사는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타종교는 성직자들이 이곳에 직접 나옵니다. 목사, 신부들이 포교 현장에 있는 거죠. 스님들이요? 여기 ‘절대로’ 안 나오십니다. 포교사들이 전법하는 것과 스님이 법문하는 게 수준이 같습니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나와 주셔야 합니다.”
포교사들의 하루가 끝나는 길, 어스름이 깔려 오는 시간, 법당을 찾았던 원생 네 명이 이른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왔다. 그들은 포교사들에게 반배 합장을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다음에 또 오셔야 해요!”
더러는 실망해서 발길을 돌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불교를 ‘믿어보려고’ 하는 하나원 원생들은 ‘불교’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포교도 포교지만, 이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이 새로운 살을 사는데 진정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을 허정희 포교사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해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