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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의 어느 일요일, 표충사 서래각(西來閣) 선원장 혜오(慧悟) 스님을 처음 뵈었을 때 기자를 향해 던진 일갈이었다.
‘지역불교현장을 가다’라는 기획 취재를 위해 지역 불교의 현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질문을 하려던 본 기자는 일순간 머쓱해져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 어떤 질문보다 선이 무엇이고,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귀중히 여기며 또 그런 질문을 해오는 수행인 만나기를 내심 고대하고 있다는 스님의 의중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11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스님 앞에 다시 앉았다. ‘선이 무엇인지’를 여쭙기 위해서였다. 주말만 시간이 난다는 말씀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일요일이었다.
공부에 대한 질문을 해오는 이라면 누구라도 반기는 스님이지만 평일엔 거의 객을 접하지 않는다. 주지 소임을 겸하고 있는 스님이 평일만큼은 스스로의 공부를 챙기기 위해 정한 규칙이다. 연신 사진기를 눌러대는 관광객들을 뒤로 하고 스님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남쪽으로 난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환하고 따스했다.
“차부터 한잔 하지.” 급한 마음에 질문부터 하려는 나에게 스님은 차 한 잔을 내밀었다. 그 순간만큼은 질문도 잊은 채, 차를 마시는 나와 스님이 있을 뿐이었다. 몇 잔의 차를 연거푸 마셨다.
“스님, 불법이 무엇입니까? 또 어떻게 공부하면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불자라고 하면서도 불교를 너무 몰라요. 참선은 왜 하는지, 또 불법의 대의는 무엇인지 그 이치를 알아야 발심을 하고 신심이 깊어져서 공부길로 나아갈 수가 있는데도 제대로 알지를 못하거든. 옛날 사람들은 대근기라서 큰스님이 한 말씀하면 그대로 의심해서 들어갔거든. 부처가 뭐냐? 했을 때, ‘똥 막대기다’ ‘뜰 앞 잣나무다’ 하면 왜 그렇게 말하는지 그대로 의심을 해서 들어갔단 말이지.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미친 소리 하지마라’그래요. 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느냐고 해. 그러니까 그러한 이치를 본인이 터득하고 나면 참선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스님은 불법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불(佛)’이란 청정하고 깨끗한 것이며, 누구라도 그 깨끗한 것은 가지고 있는데 다겁생을 통해 지어진 업력 때문에 묻혀 있을 뿐이라고 전제했다. 태양이 깨끗한 마음이라면 구름이 낀 날은 태양이 안보이듯이 구름 때문에 중생 세계와 부처 세계가 분할되는 것일 뿐이라는 스님의 설명은 너무나 분명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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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법(法)’이란 청정한 데서 나오는 빛을 말하는데 이 빛도 다겁생 동안 지어진 업력에 가리면 소용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도(道)란 깨끗한 마음에서 나온 이 광명이 어느 곳을 가도 걸림이 없이 골고루 비춰줬을 때를 말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참선은 무엇일까? 참선은 자기의 부처를 자기가 스스로 찾아 나가는 것을 말해.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일으키는 자력이라 하여 대승법이라고 하지. 그러면 왜 참선을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나오죠? 잘 들어보세요. <원각경>에도 나오고 <기신론>에도 나오는데, 우리 마음은 일초동안에 칠백 번을 생멸한다고 했거든. 그 움직이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을 참선이야. 마음이 움직이면 고요한 마음이 나타나지 않거든.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데 어떻게 자기 청정한 마음이 나타나겠는가 말이야. 그러니까 칠백 번 생멸하는 마음을 붙들어 매 가지고 청정한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바로 참선이야. 생멸하는 마음을 한곳에 집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화두고. 어떠한 생멸의 법칙도 화두에 다다르면 화두로 융화가 돼 버려.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는 화두로 융화가 돼야 비로소 참선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대승의 경지에 올랐다 할 수 있지. 참선을 하면 칠백 번 움직이던 것이 조용해지고, 조용해지고, 조용해지다가 결국은 국화꽃 활짝 피는 것 보고 도를 깨닫고, 종소리 듣고도를 깨닫고 그러는 거라.”
찻잔을 보고 찻잔이라고 하고 보온병을 보고 보온병이라고 하는, 너무나 빨라 포착할 수 없는 그 작용을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고요해져서 모든 것이 화두로 융화될 때 비로소 참선을 하는 것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찻잔을 들어 보이며) 부처님이 이 그릇을 볼 때와 중생이 이 그릇을 볼 때 무엇이 다를까? 부처님도 아파서 병들어 돌아가셨고, 중생도 병들고 아파하고, 부처님도 배고프면 밥 드시고, 일반 사람이 보면 똑 같은 거라. 무엇이 다르냐 하는 의문이 생기잖아요? 간편하게 설명하면 직견(直見)과 곡견(曲見)의 차이 때문에 부처와 중생의 차이가 벌어집니다. 직견은 바로 딱 보고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고 곡견은 한번 본 것을 마음속에서 굴림을 당해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일체의 사물에 대해서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곡견에 의해 맺게 됩니다. 만약 금덩이가 하나 있다고 합시다. 부처님은 ‘금이구나’ 하면 끝이라. 그런데 중생은 금을 보면 저걸 내가 가졌으면, 팔아서 집도 사고 논도 사고 장가도 갔으면 하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곡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굴림을 당해서 업을 짓게 되고 그 업을 내가 받게 되는 거라. 부처님의 세계나 도를 깨친 도인의 세계는 일체가 직견인 것이고 중생의 세계는 일체 곡견이 되는 것이죠. 거기에서 큰 차이가 일어납니다.
곡견을 직견으로 바꾸는 것은 생각으로 노력을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참선하면 됩니다. 육교에서 팔이나 다리 하나가 없어서 구걸하는 사람을 봤을 때 ‘불쌍하구나’ 하고 한생각 일으키고 천원을 주면 벌써 씨앗을 심게 돼 업이 됩니다. 그 업은 그 사람에게 어느 때인가 천원을 받아야 해결이 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업을 짓지 않고 한량없는 보시를 할 수 있겠느냐?
<선문촬요>에 보면 ‘마음을 버리고 아끼는 것이 없어야 한량없이 큰 보시다’ 했습니다. 팔다리가 없어 누워있는 걸 보면, ‘아 누워있구나’ 하는 직견을 하고 화두를 챙기며 천원을 주게 되면 나는 화두 챙겨서 좋고, 그 사람은 돈을 받아서 좋은 거라. 그러면 하나도 인연이 안 지어지는 것이거든. 부처님은 살인을 여러 수십만 명을 해도 살인이 아니고, 중생은 손가락만 다쳐도 살인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서도 내 머릿속엔 많은 생각들이 생멸했다. 칠백 번까지는 아닐지라도 몇 십 가지 생각은 족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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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제일 중요한 것이 왜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 몸을 조정하는 것은 두 가지로 나눕니다. 이것은 원효대사 <기신론소>에 나오는데 사사대 즉, 일하는 몸과 추사대, 즉 생각하는 몸을 말합니다. 우리가 죽어서 지수화풍으로 흩어지면 사사대는 소멸됩니다. 우리 몸이 사사대 뿐이어서 지수화풍으로 흩어져 버린다면 공부할 게 뭐 있으며 부처님은 어디에 있겠는가 하겠지만 우리는 추사대가 있기 때문에 공부해야 합니다. 추사대를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의 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꿈에서 차도 타고 친구도 만나고 있다면 방에서 자는 것은 또 뭡니까? 친구를 만나고 돌아다니는 것은 추사대라 하고 방에 자는 몸을 사사대라 합니다. 일하는 몸은 죽으면 소멸되지만, 생각의 몸은 선업을 지으면 선업 지은대로 악업을 지으면 악업 지은대로 지옥, 아수라, 축생 등 육도 윤회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윤회의 원인이 되는 생각하는 몸을 없애는 길이 바로 화두 들고 참선하는 것입니다. 추사대 몸마저 없어졌다면 남는 것은 깨끗한 불성만 남아요. 그것을 우리가 말해서 태양이라 하고 마음이라 하는데 그 마음만 내면 안가는 데가 없습니다. 지옥도 가고 천당도 가고, 몸을 받지 않기 때문에 능히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미움과 사랑, 시비, 생사 등 세상만사의 작용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참선에 있음을 설파하는 스님의 법문은 희망의 메시지였다. ‘참선 정진하라. 그러면 결국 추사대의 몸마저 소멸되고 대자유인이 될 것이다.’
이어 스님은 “요즘 깨달았다고 우기는 사람이 너무 많다. 옛말에 우기는 사람이 도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어쩔 수 없지만 무심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하면 결코 견성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무심은 일체 삼라만상, 우주 전체가 화두로 화했을 때를 말하며 누구든지 무심의 경지를 지나야 일행삼매(一行三昧), 일상삼매(一相三昧)에 다다를 수 있다고 했다. 그때서야 어떠한 일체 모든 행동을 하더라도 화두 드는 것 하고는 관계가 없어지며 배고프면 밥 먹고, 피로하면 쉬는 평등법에 이른다는 설명이었다. 스님의 일화를 들려주며 ‘내가 깨달았다’거나 ‘공부가 됐다’는 아상의 위험성을 거듭 지적했다.
“1960년도에 내가 표충사에 왔는데 초대 종정을 하신 효봉 스님께서 아파서 누워계신 거라. 그때 20대도 안됐는데 내가 신발을 신고 효봉 스님 누워계신 방에 들어가서 ‘불교는 생사를 해탈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육체적으로 아프다고 누워서 골골하면 이때까지 뭐 공부했느냐? 내놔 봐라’ 했거든. 효봉 스님이 기가 찼을 거 아닌가요? 새파란 놈이 와서 그러니까. 그런데 스님께서 시자를 부르더니 ‘귀한 손님이 왔으니 저녁상 대접을 잘 해라’ 하시는데 못 알아듣겠는 거라. 그것이 그 스님의 법담이었는데 나는 못 알아듣는 거라. 그러면서도 기고만장한거라. 문을 박차고 나왔거든. 그랬더니 상을 잘 차려놨더라고. 잘 먹고 다시 방에 들어가서 절을 삼배하고 나와서 밤새 걸어 다시 통도사 경봉 스님에게 갔어요. 경봉 스님께서는 나를 뚫어지게 보더니만 ‘니 중 안 되겠다. 집에 가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또 ‘고희가 넘도록 중노릇해가지고 남의 관상 보려고 앉아 있냐? 이런 외도가 어디 있느냐’고 문을 박차고 나오니 명정 스님이 나를 붙잡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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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문경 봉암사에서 여러 철 살면서 무심의 경계를 맛본 후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땔감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하루 반나절의 무심에 들었다 깨어난 이후, 우주의 공간이 전부 하나로 여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님은 그것을 두고 ‘다시는 뒤돌아 볼 수 없는 그런 경계’라고 표현했다. 스님은 이후 주지도 가끔 하고 선방에도 가면서 참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님은 재가자의 공부에 대해서도 각별한 믿음을 내비쳤다.
“표충사에도 대홍선원이라고 시민선방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공부한다고 생활을 다 팽개치고 와 있어요. 그런 것은 안 맞아요. 도가 숙성해 질려면 모든 것을 체험해서 일으키는 도가 제일 숙성하다 했어요. 세상살이 하면서 도를 깨달으면 스님들보다 백배 이상의 도를 깨달을 수 있어요. 그러니 참선을 하고 싶으면 좋은 스승을 정해놓고 한달에 한번이라도 법문 듣고, 참선하는 법도 배우고, 집에서 시간나면 참선하세요. 물을 게 있으면 절에 와서 묻고, 이렇게 한결같이 하는 사람은 10년, 20년 하면 도를 깨치게 돼 있어요. 부처님 당시에는 유마거사, 육조 스님 당시에는 방거사, 원효 대사 당시에는 부설거사가 있었듯 큰 스님이 한분 나오면 마을에서는 반드시 거사가 한분 따라 나옵니다. 그런데 재가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공부하는 게 문제예요. 참선은 조직적이고, 학술적으로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만이 길이 빨리 열립니다. 참선에 대한 좋은 책들이 참 많거든요. 그런 것 한 폐이지만 제대로 배워도 반은 견성한 것입니다.”
불경기를 맞아 세상살이가 어려워 아우성이라고 여쭙자 “세상살이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지어서 받는 것이지 누가 갖다 준 것이 아니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하는 반문이 돌아왔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지금 못산다고 팔팔 뛰지만 말고 지금 못사는 것은 이전에 지어놓은 업이니 다음에 받을 것을 생각해서 지금 옳고 바르게 행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옳고 바르게만 지으면 반드시 행복한 날이 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지금 못되는 것만 팔팔 뛰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 아픈 일입니까? 지금 옳고 바르게만 행하면 현실의 어려움이 역전돼서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지금, 내가 처한 곳에서 옳게 행하면서 하루에 십분이라도 참선 정진을 이어가는 불자들이 되십시오.”
■ 혜오 스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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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이 방부를 들이는 서래각 선원은 다른 선원과 달리 11명은 선원에 살고 9명은 선방과 후원을 오가며 총무, 원주 등의 소임을 보며 정진한다. 표충사 전 사부대중이 선원을 위주로 살림을 살도록 체계를 바꾸기 위해 스님이 찾아낸 묘안이다. 전국의 제방선원에서 안거를 지내며 선원과 사중의 갈등과 시비를 목격해온 스님은 “선원 수좌가 절 살림을 살면 모든 시비가 끊어지고 서로 믿고 오로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잇점이 있다”고 말했다. 선원 스님들도 대 만족이라고.
1940년 경남 창원에서 출생한 혜오 스님은 4살부터 13,4세가 될 때까지 유학자 김응구 선생으로부터 천문지리, 주역 등을 두루 섭렵하고 이후 김해 모은암 법철 스님으로부터 불경을 배웠다. 법철 스님의 인도로 1964년 향곡 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은 후 4년 여 동안 스님을 모시며 “참선해서 도인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봉암사 9년 정진 동안 수좌들의 청에 못 이겨 주지 소임을 살기도 했던 스님은 동화사 금당선원, 해인사, 수원 용주사 초대선원, 오대산 상원사, 인천 용화 등 전국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92년 선학원 선원장, 85년 통도사 보광선원 선원장을 역임했고, 미타암 주지, 묘관음사 주지 등을 거쳐 현재 표충사 주지와 서래각 선원장 겸하고 있다.
선교(禪敎)에 두루 밝은 스님은 불경이나 조사어록 번역을 해왔는데 12월 <나옹스님 어록> 출판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