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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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과 염불, 내 인생의 동반자
<수행일기>경원대 김상규 e-비지니스학과장
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난 필자는 가끔 소풍을 절로 가곤 했다. 절이 가까이 다가오면 은은히 들려오는 종소리, 목탁소리, 그리고 염불소리에 귀 기울이었고, 그 소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게 했다.

일상생활에 잡다한 일에 시달리다 보면, 잡념으로 산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절을 찾았다. 이것이 인연으로 닿게 했고, 불교와의 인연을 맺게 했다. 절에 가서는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절을 하면서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염불을 따라하면서 무슨 뜻인지 모르고 지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다.

처음 절을 했을 때는 다리가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불ㆍ법ㆍ승 삼보를 비롯한 일체중생을 한없이 높이고 나를 한없이 낮추는 무아(無我)의 실천수행이 바로 절(禮拜)이라는 것을 알고는 일념으로 절과 염불을 해왔다. 요즈음은 매월 한번씩 1000배를 할 정도로 절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고, 동시에 일념으로 염불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번뇌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필자는 자기 변화의 과정을 경험했다. 몸이 먼저 하심을 해야 마음도 따라 하심을 하게 된다는 것. 또 일념으로 고성염불을 함으로써 산만한 정신을 집중시키는데 도움을 받는 것 등 절과 염불은 필자의 수행법이 됐다. 뿐만 아니라 절과 염불은 초심수행자인 필자에게는 마음자리를 늘 점검하는 지침이 됐다.

사실 요즈음 젊은이들은 허리 아프다 다리 아프다 하면서 절을 하는 것이 싫다고 말을 하지만, 필자는 그렇지 않았다. 아파 오는 허리를 참기도 하고 아픈 다리는 풀리면서 다시 모이고 하는 반복적인 운동으로 차츰차츰 마음공부는 깊어졌다. 점점 절도 빨라지고 땀도 물 흐르듯 등줄기를 삭혀줄 때면, 흘러내린 땀방울 뒤에 마음은 한없이 시원해졌다. 일 배 일 배 굽히는 육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고, 염불하는 내가 부처를 닮아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요즈음도 필자는 휴일이면 절에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절집을 드나들며 스님 법문도 듣고 신심을 내어 부처님께 의지하며 살고 있다. 절과 염불 수행을 하기 전에는 부처님께서 복을 주는 줄 알고 있었고, 그것이 불교의 시작과 전부인 줄 알았던 필자로서는 괄목할말한 자기 변화였다. 때문에 지금도 염불 따라하기, 108배하기, 1000배하기 등 기도를 하고 있다. 처음은 불자로서의 초발심을 내기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불자로서 변해있는 내 모습에 뿌듯함을 경험하고 있다.

여느 날과 같이 늘 사시 예불시간을 갖고 있다. 법당에서 들려오는 사홍서원은 늘 내 가슴을 울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는 여전히 가슴을 뜨겁게 한다. ‘내가 과연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교육을 잘 시키고 있는지, 올바른 길을 인도하고 있는가’를 되물어 보게 한다. 또 ‘그간 시대의 요구와 현실적 교육 방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여 지은 업은 없는지,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얼마나 자만하며 살아왔는지’는 자기 점검의 가르침으로 여기고 있다.

이러한 지난 삶들을 돌아보는 것은 하루라도 마음수행을 게을리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했다. 불교의 교육적 가치가 필자의 가치관과 삶에 영향이 미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학교 교육발전과 청소년 인성개발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심사숙고 끝에 부처님의 진자(眞子)로 삶을 이루고자 법사(法師) 행로에 대발심을 일으켰다. 법사학인 교육현관(敎育玄關)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처음 불문에 입문하기도 힘들었지만, 불법의 의식과정으로부터 기초교리를 차례로 익히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그간 배우고 익힌 것을 실제 체험을 통하여 터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직접 체험과 삼매의 수행으로 연결시키고자 한 철야 염불결사 기도법회는 기대 그 이상이었다.
심념, 정념, 염불, 목탁, 철야정진 등. 그중에서도 무더운 여름밤 철야정진은 내 생에 잊지 못할 일이었다. 한시 일분도 쉴 사이 없이 정진을 계속됐다. 전날 오후 4시 입제법회를 시작으로 해 2교대로 2시간씩 전원이 목탁 치며, 염불(나무아미타불) 수행을 했다. 참으로 잠시도 염불소리가 중단됨이 없이 다음날 오전10시까지 철야법회를 가졌다. 회향법회까지 잠은 자지 못했지만, 몸은 가뿐하고 정신은 맑았다.

필자는 고성염불과 평음염불을 번갈아가며 마음자리를 정화했다. 4물의 음향소리에 맞춰 목탁작법과 염불소리는 참석자는 물론이고 듣는 이로 하여금 혼침과 번뇌, 업장과 미혹을 씻어내는 법음이 됐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쾌락법음’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필자는 염불과 목탁의 동작은 한 박자 한 음향이 일체가 되어 동음으로 마음을 정화했다. 염불과 목탁의 동작은 그대로 무아경지에 들어 법의 음성과 혼연일치가 됐고, 몸과 소리와 동작이 혼연일치가 되어 행함을 느꼈다.

염불소리는 아미타부처님의 불력 염불에 의해 무량광명을 비추었고 행하는 행법의 신심수행은 시심작불(是心作佛)을 행하는 심심법(甚心法)으로 발현됐다. 염불삼매 속에서 자신의 기도원력의 경계가 그대로 부처님과 합일되어지는 현전삼매 체험을 느끼기도 했다. 나의 모습은 그대로 염불삼매에 들었고, 무아경지(無我境地)에 들면서 모든 것들을 철야를 통하여 내 가슴속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눈물과 참회, 내 삶의 허점들이, 그리고 이때까지 모든 삼악도(三惡道)에 허덕이는 나를 보는 순간, 한없이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은 바로 참회의 감로였다.

내 몸속에 있는 악한 업보가 자꾸 엷어지고, 착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 확인하면서, 또 가정에도 더욱 착한 사람이 될 것을 다짐도 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시간이 나면 법당에서 108배, 1000배 정진 기도로 나를 하심하며 다스렸고, 3시간여 동안 내 몸 속에 있는 ‘땀’과 ‘업’이 1000배로 녹아내릴 때는 무언가 모를 힘을 느꼈다. 자신이 불법에 뿌리내리는 것과 느낌, 그리고 불교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인간 ‘정화(淨化)’ 작업. 필자는 정말로 불법만이 이 난세(亂世)를 바로 잡아 갈 수 있는 종교라는 것을 절감했다.

이제 불교는 세계인의 미래사회에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21세기 인류의 대안이 되고 있다. 이에 걸 맞는 교리, 사상이 바로 불교에 있다는 것이다. 아니 미래지식인들은 불교에서 그 가르침과 해법을 찾았고, 또 찾아야 한다고 이미 단언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내일의 행복 있다’고 말이다.

지금부터 시간을 더욱 많이 활용하여 성불하는 그날까지 초발심을 다시 가다듬어 꾸준히 불교와 인연을 맺고 살아가련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김상규(경원전문대 E-비니즈스학과 교수) |
2004-12-22 오후 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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