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대체 선(禪)이 무엇인가?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 했는데 그 마음은 무엇입니까?”
범어사 조실 지유 스님은 결제 대중들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살얼음판을 걷듯, 화두일념으로 100일의 대정진에 들어선 수좌들을 향해 던져진 물음이다. 미동도 없는 대중들의 고요에 처마를 따라 떨어지는 빗물 소리와 대웅전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가 더욱 선명해진다.
“저 목탁소리 듣는 놈은 무엇입니까? 깨닫고 보면 목탁 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심지어는 노름꾼 싸움 소리도 법문입니다. 사로잡혀 있는 일체의 상을 털어버리면 일체가 법문임을 알게 됩니다. 내 부모를 죽인 원수를 갚겠다는 분심을 내어 지혜와 행을 구비하고 공부해 나가야 합니다.”
범어사 금어선원(金魚禪院) 결제 대중 27명, 산내 암자 대성암 결제 대중 45명, 재가자 선방 결제 대중 55명에게 조실 스님의 법문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 지유 스님의 법문으로 결제 대중들은 3개월 동안 지어갈 공부의 길잡이를 얻었다.
결제 법회를 마친 대중들은 첫날 정진에 들어갔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이것’을 향한 목숨 건 정진이 시작된 것이다. 금어선원 동쪽의 대나무 숲을 거닐다 바람에 부딪히는 댓잎 소리를 듣고 홀연 깨달음을 이룬 동산 스님의 수행 정신이 서린 이곳에서 수행납자들도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리마저 화두에 던져 넣고 새벽 2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 이상씩 이어지는 정진 동안, 온갖 지식과 고정관념을 잠재워야 한다. 깨닫겠다는 한생각마저도 쉬고 또 쉬어야 하는 것이다.
| ||||
결제를 하루 앞둔 25일, 범어사 주지 대성 스님, 강주 무비 스님, 유나 인각 스님과 입방한 대중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수좌들에 대한 기대와 격려가 남달랐다. 대성 스님은 대중들을 잘 시봉하고 뒷바라지 하겠다는 각오를 전했고, 유나 인각 스님은 “규율을 잘 지키고 정진 잘 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비가 그치고 날이 활짝 개었다. 길고 긴 의심의 구름이 걷힌 끝에 드러날 본래면목처럼 푸른 하늘빛이 시렸다. 금어선원에 입방한 수좌스님들을 외호하며 전 사부대중이 한철 정진에 들어간 범어사의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