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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바쁜 재가불자들이 수행을 위하여 매일 시간을 낸다는 것은 사실 힘든 일이다. 또 이렇게 매일 수행에 해본 재가불자들이라면, 한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본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무슨 수행이든 재가불자인 내게는 작심삼일(作心三日)이었고, 한 달 이상 끌고 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게으른 성격상 나름대로 찾아본 방법이 바로 하루 아무 때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경전 읽기’였다. 나는 이것을 간경수행(看經修行)이라 부른다.
간경수행! 구태여 독경(讀經)과 구분하자면 독경은 뜻을 모르고 기계적으로 음만 읽는 것도 공덕이라 하여 포함시키지만, 간경(看經)은 ‘볼 간(看)이라는 한자가 손(手)을 눈(目) 위에 대고 읽는다’는 것처럼 경전의 의미를 마음으로 되새기며 읽는 수행이다. 얼마 전 열반하신 일타 스님도 불교 4대수행법 중 의미를 알고 읽는 간경수행법을 의교관행문(依敎觀行門)이라 하여 중요하게 여겼다.
내가 <금강경>을 자세하게 공부하게 된 것은 1996년 가을 서울 신림동 연화정사에서 한정섭 법사로부터 <금강경> 강의를 듣게 된 때부터다. 나는 고향인 광주에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절에 다닌 어린이 법회 출신으로, 충장로 관음사에서 상인 스님으로부터 학륜(學輪)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하지만 이후 현실불교에 회의를 느껴 한동안 불교를 멀리했었다. 여러 사상적 방황 끝에 재발심해 다시 절을 찾은 날, 마침 한 법사의 <금강경> 강의는 마음의 고향을 다시 찾은 것과 함께 그간 느슨했던 내 마음에 우뢰와 같이 다가왔다. <금강경>이야말로 생활불교의 의전(依典)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윗사람에게는 하심을 아랫사람에게는 공경법을 길러주는 경전중의 경전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이후 난 <금강경>을 더욱 파고들었다. 본격적인 수행방편으로 <금강경>을 읽게 된 것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이 계기가 됐다. 1997년 겨울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아는 선배가 49재 동안 매일 <금강경>을 읽어주면 공덕이 된다고 해 어머님에게 읽어드렸다. 이후 습관이 되어 지금까지 계속 읽고 있다. 어머님은 병원에서 억울하게 의료사고로 돌아가셔서 우리가족은 아무도 임종순간도 지켜보지 못했지만 매일 <금강경>을 독송해서인지 49재 마지막 날 나는 법당에서 마치 작별인사인 냥 어머님의 평온한 손길을 느꼈었다. <금강경>이 수행방편일 뿐만 아니라 망자에게도 공덕경(功德經)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금강경은 읽어볼수록 묘미가 다르다. 그런데 왜 유독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3국에서 예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을 읽고 연구했을까? 그것은 대승불교에서 반야지혜야말로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든 불교의 핵심이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진리이고, <금강경>이 바로 반야경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은 환희심을 느껴 직장동료, 불교동호회 회원들에게 <금강경> 소책자를 수십 권 사서 보시하기도 하였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금강경>을 한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일상생활에서 매일 금강경을 읽어보자. 따로 시간 내기 힘든 분은 소책자도 좋다. 간경(看經)은 눈과 귀를 넘어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는 수행법이기에 그렇다.
사이버 불교활동으로 하화중생의 실천
하화중생의 실천이라고 하니 ‘수행으로서 하화중생’이 뭔가 거창해보이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재주가 없는 사람도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있게 마련이니 그것을 중생에게 회향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곧 하화중생이고 대승의 수행이다.
보시는 수행의 측면에서 보시 바라밀인데, 보시는 꼭 물질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고 말도 못하는 사람도 남에게 따뜻한 눈길만은 보낼 수가 있으니 그것을 곧 안시(眼施)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불자들은 자기 만에 국한된 수행의 안주에서 벗어나 남과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그것이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을 함께 실천하는 이상적 수행이다.
<금강경>에는 ‘사구게(四句偈) 하나만이라도 지니고서 남을 위하여 설명해준다면 칠보로 보시한 공덕보다 크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 현실적인 방편으로서는 와 닿지가 않았다.
내 경우도 <금강경> 독송이라는 나만의 수행법에서 벗어나 보시바라밀 수행을 하고 싶었으나 IMF 때에는 경제적으로 곤궁해 현실적인 물질 보시는 꿈도 못 꾸었다. 그러던 중 2000년 초에 어떤 계기가 되어 인터넷 불교동호회 세이클럽 ‘청년불교우리사랑’ 활동을 하면서 사이버 공간도 수행과 하화중생의 실천이 가능한 공간임을 알았다.
그 당시 내가 잘 할 수 있고 당장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연화정사 청년회에서 교육부장으로 활동한 이력으로 사이버 공간에서 도반들에게 진지하고 성의 있게 불교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취미삼아 한 활동이 점차 회원들도 늘어나고 사이버 공간의 폐해를 알고 회의를 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익명성의 공간일수록 내 수행의 발판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동호회를 운영하다 보면 마음의 상처, 신경 쓰이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사이버 단체를 의사단체(疑似團體)로 여기고 가벼운 의미를 두면 가볍게 다가오고,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면 진지하게 다가왔다. 여기서도 상대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어 내 마음만큼 사이버도 반응하였다.
때로는 온갖 말이 난무하고 답답한 공간에 이처럼 힘든 수행도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송광사 서울 분원 법련사 한주 지묵 스님은 매우 깨어있는 스님으로 사이버 공간에서 기꺼이 지도 법사를 자임하시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많은 회원들을 지도해주셨다.
아는 것을 답변으로 회향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 이것도 보시바라밀의 한 방법이다.
수행과 포교도 시대에 발맞추어 이 시대에 맞는 부처님의 말씀을 구현해야 한다. 대승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이 보살이라면 궁극적으로 보살행을 지향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수행일 것이다.
불교 수행에 관심이 많고 여러 시행착오를 겪다가 이제는 불교계와 인연을 맺어 도심포교당 능인선원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계에서 더 열심히 일해보라고 이끌어준 능인선원 원장 지광 스님에게 감사드린다.
따지고 보면 제대로 된 수행의 이력도 없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가당치 않으나 이 글을 계기로 더 열심히 수행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침 출근길 전철에서 복잡한 속에서도 금강경 몇 구절 읽으니 마음이 평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