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화두와 의심은 같은가 다른가? 몇 달 전부터 화두를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다할만한 변화는 느끼지 못했고, 다만 화두의 비밀이랄까 내막을 알게 돼 시원하고 후련한 느낌은 듭니다.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 화두의 이해는 단지 가느다란 단서를 붙잡은 것에 불과하고, 그 단서로부터 심화ㆍ성숙이 이뤄져 나타난 것이 무심이라 생각하게 됐습니다. 과연 맞는지 궁급합니다. (ID 토출용궁)
답1 : 염려스러운 일이 있다면 화두를 안다는 말과 무심을 알고 맛보았다는 말은 공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의미로 말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화두를 안다거나 무심을 안다는 건 사량심에서 나온 망념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화두도 없고 무심도 모르는 경지를 일상사 가운데, 물 흐르듯이 견지해 나가면, 어느덧 무심은 내 곁에 우뚝 설 것입니다. 시절 인연이 닿아 내장이 쑥빠지듯 한바탕 뒤집어 쏟아내면 시원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무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줄을 모르니, 무심의 비춤이고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찾아야 할 무심이 없는데 찾기 때문에 옛 분들은 손가락을 들어서 길을 보이신 것입니다. (불심)
답2 : 화두는 의심하는 방법에 따라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참의입니다. 이것은 화두 의심을 통하여 해당 화두(공안)가 지시하고 있는 불법의 도리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경을 보든가 법문을 듣다가 어떤 대목에 막혀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 안돼 평소 그것을 골똘히 생각하였으나, 속 시원한 답을 스스로 찾지 못해 궁금해 하던 어떤 문제에 대해 선지식에게 질문을 하여 그 답을 듣고 그 도리를 알게 되는 것을 말끝에 즉시 깨닫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둘째는 참구입니다. 이것은 화두 의심을 통하여 소위 확철대오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일체의 분별 망상과 사량 분별을 여의고 오로지 그 모르는 것을 알려는 간절한 일념 속에서 화두에만 전념하는 것입니다. 오직 절대 무심의 경지에서 화두 의심만을 하다보면, 어떤 기연에 의해 한 순간에 밑동이 쑥 빠지며 모든 의심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화두가 타파되어 어떤 화두에도 막힘없이 일체종지에 통하게 되는 데 이것이 진정한 화두 타파이며 본분 납자는 이를 위하여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tathata)
답3 : 무심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깊은 침묵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무심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시작입니다. 모든 생각이 그치고 단순히 침묵만이 있을 때 모든 것이 완전히 정지할 때, 새로운 차원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시간이 멈추고 단순히 현재 속에 있습니다. 그러한 굉장한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명료하여 질문도 의문도 사라져 그 무엇과 비교할 대상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든 옛 것들이 증발해 버렸는데 그 무엇이 있어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주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