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산의 중심지인 광복동 저자거리에 있는 대각사, 이곳에 청년회 법회를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을 통해 소개받게 됐다. 매주 여러 법사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서서히 불교에 빠져들었다. 때때론 환희심에 젖기도 했다. 경전을 배우면서 부처님의 말씀 속에 담겨진 진리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고, 하나 둘 교리를 알아가면서 사성제, 연기법, 업보설 등을 통해 깨닫지 못한 중생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생로병사의 괴로움이 나만의 일이 아님을 알았다. 여기 존재하고 모두의 문제임을, 더 나아가 그것은 바로 내가 해결해야 될 숙제라는 것도 깨달았다. 몇 년 간의 불교 공부에서 인생이 바뀌고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이십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생활의 여건이 많이 향상되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점은 불교가 한 인간의 사고를 바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이었다.
불교에 깊이 몰입하게 되면서 언제부턴가 출가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됐다. 불교에 심취한 재가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출가의 꿈을 꾸듯이, 필자 역시 어쩔 수 없게 그 꿈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전국 명산에 있는 유수한 산사로 틈틈이 돌아다니게 됐다. 하지만 3년여의 시간을 보내면서 익히 들어 알만한 여러 선지식을 만나 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한 몸 의탁할 스승을 만나지 못한 채 결국은 주저앉고 말았다. 아마 스승을 바라보는 부족한 안목과 함께 머리 속에 가득 차있던 욕심이 출가의 꿈을 가로막은 장애였으리라.
서른여섯 살의 뒤늦은 결혼, 그 이듬해 얻은 늦둥이 딸, 가정이라는 곳은 출가와는 또 다른 공부를 하게 만드는 수행의 무대였다. 줄곧 활동해 온 불교청년회 인연으로 만난 도반 같은 아내와 벌써 효녀 노릇하는 딸은 오히려 부처님에게로 더욱 다가가게 만드는 간절한 삶의 화두로 자리 잡았다.
지나온 30여 년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원고지 몇 장에 옮긴다는 것이 조금은 무리가 아닐까싶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기억들은 영원히 망각 속에 묻어버리고픈 과거이건만 그 과거로 인해 체험되어진 삶이 ‘불에 달궈지는 쇠처럼’ 오랜 생을 닦아왔던 수행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어리석었던 탓으로 뒤늦게 깨달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필자는 불교로 인해 바뀐 삶을 현재 살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나는 부처님을 만난 덕에 마음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내면세계의 치열함과 표면적인 여유로움을 공존시키면서, 오래전부터 산을 통해 불교를 배웠다. 자연을 통해서 부처님을 닮아가고자 했으며 산길에서 발아래 밟히는 돌부리,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느끼면서 불보살의 자비를 경험하기도 했다.
필자의 공부는 항상 자신에게로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나를 살피는 일이며 나를 움직이고 제어하는 주관자를 살피는 일이다. 나의 주관자를 찾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불교보다 더욱 수승한 진리가 있다면 그 길로 나아가야 하리라.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