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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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가리키는 그 손가락을 쳐내라”
고우 스님, <선요> 특강 현장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도 쳐내야 한다"고 말하는 고우 스님
“달마와 부처의 자리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도 쳐내라 했습니다. 철저한 자기 부정이 바로 선입니다. <선요(禪要)>를 쓴 고봉 스님은 이를 어록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우 스님(봉화 각화사 선덕)은 주관과 객관을 나눠 보는 ‘이원적 사고’부터 마음에서 세탁해내라고 말했다. 그래서 선(禪)은 부정의 연속이고, 이런 과정에서 본래 자기 존재가 부처임(本來成佛)을 깨닫게 된다고 강조했다. ‘죽어야 비로소 살 수 있다’는 이치. 그 원리를 밝힌 것이 바로 <선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10월 26일, 불교TV 대구지사 무상사에서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선요> 특강. 고우 스님은 출가 수행자뿐만 아니라 재가불자들에게 <선요>는 선수행의 필독서라고 강조했다.

<선요>는 선가에서 내려오는 선에 대한 지침서로, 중국 송나라 혜능의 23대 고봉현묘(高峰玄妙, 1238~1295)가 쓴 선어록. 현재 <서장(書狀)>, <도서(都序)>, <절요(節要)>과 함께 우리나라 강원의 사집과목 중 하나인데 재가불자들에게 본격적으로 강의되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특강은 12월 21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에 진행된다. (053)754-6633

그럼, 고우 스님이 출가자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선요>를 재가자들에게 논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요>는 고봉 스님의 속가 제자 홍교조가 어록을 정리했기 때문에 <선요>야말로 재가불자의 선수행 방향과 방법을 가장 설득력 있게 알려주는 지침서다.
<선요>의 가르침을 압축한다.

3백여 재가불자들이 고우 스님의 <선요>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배지선 기자
●일체를 세우지 않는다
‘법상을 뒤흔든다. 청중에게 고함을 지른다. 쓸데없이 법문을 들을 것도 없으니 가라고 말한다.’ 고우 스님은 <선요>의 구절을 인용하며, ‘철저한 부정’에 <선요>의 핵심이 있다고 말했다. 보고 듣는 이 순간조차도 부정해야 본래불성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하나로 통일된 그 자리를 발견하면, 죽은 송장처럼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끝끝내 부정을 해야 한다. 주관과 객관을 나눠 보려는 이원적 사고를 깨는 것과 진리의 ‘달’을 가리키는 방편의 ‘손가락’도 단호히 쳐내야 한다는 것이 이 때문이다.
결국 ‘일체를 세우지 않는다(無住)’의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부처와 중생, 해탈과 구속, 지혜와 번뇌도 세우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대로다. 심지어 깨달음조차 집착하지 않는다. 그런 자리를 선을 통해 생활화하고, 본래 부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선의 사회화다.

●놓고 또 놓아라
본래의 내 마음을 배신하지 말라는 의미다. 귀와 입으로 비교해서 내 귀와 입에 상처를 줘 스스로 자신을 만신창이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있다’는 생각이 문제다. 원래 자기존재가 부처이고, 우리가 부처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부처다. 선은 그 마음자리를 알려주는 길이다. 그런데 선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선은 간단하다. 복잡하게 된 것은 주관과 객관을 벌려놓는 사고 때문이다. 발가벗은 그 상태로 선을 단순화시켜 놔야 한다. 벗어야 할 옷을 자꾸 입으려고 하는가. 왜 짐을 짊어지려고 하는가. <선요>에서는 없는 짐까지 짊어지려는 것을 없애라고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다.

●만 길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라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긴 상태’. 분별과 경계에 길들어진 생각이 순간 ‘꽉’ 막히는 찰나다. 조주 스님의 ‘무(無)자’ 화두가 운문 스님의 ‘마른 똥 막대기’ 공안이 경계에 노예가 된 생각에 시비를 거는 순간이다. 그것이 생각의 ‘부딪침’이다. 그 부딪침을 한 번 두 번 수십 번 받는 순간, 분별심을 거둬내야 한다. 그래야 깨칠 수 있다. <선요>는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1초짜리 화두참구’를 1분, 하루, 한달, 평생으로 이어가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고 있다. 마치 조각조각을 누빈 옷을 한 장의 옷으로 만드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선요>는 수행과정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선수행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주ㆍ객관의 이원적 사고를 녹이고, 말과 생각의 길을 끊긴 부딪침의 순간을 늘리는 변화과정을 ‘서있는 것이 익어가고 익었던 것이 스러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속에서 정(定)과 혜(慧)를 함께 닦아라
선과 일은 둘이 아니다. 생활 그 자체가 선이다. 때문에 선은 일상에서 말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자기가 하는 일에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선요>에서 말하는 ‘활발발’의 상태다. 이러한 원리는 특히 재가불자들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재가불자들이 선을 수행으로 생활화하고, 포교로 사회화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이 같이 수행해 선을 ‘자기화’하면, 자주적이고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또 삶이 역동적으로 변한다. 사는 보람도 뒤따른다. 때문에 <선요>에서는 ‘선이 생활’이라고 하고 있다. 또 ‘선은 체험’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인터뷰】“<선요>는 이원적 사고를 깨는 법문집입니다.”

“‘나’다 ‘너’다, 우리는 이원적 사고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연기법 원리로 보편화돼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보지 못합니다. 그 자체가 착각인데도 말입니다. <선요>는 그런 착각을 깨부수지요.”
때문에 고우 스님(사진)은 <선요>가 ‘선수행의 교과서’라고 말했다. 수행과정에서도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선을 ‘생활화’하는데 길라잡이가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재가불자들에게 강원 사집의 하나인 <선요>를 강의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선요>는 이론서가 아닙니다. 철저히 체험의 이야기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선요>의 처음과 시작은 먹고 사는 일상생활에서의 수행 안내로 구성돼 있습니다. 화두참구법, 3분심(신심, 의정, 용맹심), 화두 참구과정에서 만나는 각종 병 등을 상세히 일러주고 있습니다.”
스님은 다른 조사어록들과 달리 <선요>가 재가불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으니 수행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꼭 공부하기를 강조했다.
김철우 | in-gan@buddhapia.com |
2004-10-20 오후 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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