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없는 화두는 죽은 화두다.”
무여 스님(봉화 축서사 선원장)은 조주 스님의 ‘무(無)자’ 화두도, 운문 스님의 ‘마른 똥 막대기’ 공안도 의심을 일으키는 ‘의문거리’라고 말했다. 때문에 의심은 화두의 길잡이고, 생명이 된다고 강조했다.
10월 16일 대구 동화사 통일 대불전에서 ‘간화선 수행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제7차 담선법회. 논주로 나선 무여 스님은 간화선의 수행방법인 ‘공안참구와 공안공부’에 대해 논강했다. 스님은 이 자리에서 “의심을 일으키는 이유는 깨치기 위해서다. 나와 화두, 세계가 온통 의심덩어리가 돼야만, 궁극에는 그 화두의 의심을 타파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수년전부터 재가불자들을 대상으로 참선지도를 해오고 있는 무여 스님은 철저한 자기 체험에서 우러난 화두공부법의 ‘ㄱㄴㄷ’을 설명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 요지.
▼발심이 화두고 화두가 발심
공안 타파는 참선 수행자의 뜻과 정성에 달렸다. 마음공부에 쩔쩔매봐야 화두공부가 깊어진다는 말이다. 무여 스님은 “발심이 화두고 화두가 발심”이라고 말했다. ‘화두가 잘 안 된다. 참선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발심이 안 됐기 때문이다. 진정한 발심자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님은 의심을 간절하게 일으켜야 화두공부가 힘을 받을 수 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며칠 굶은 사람이 밥을 생각하듯, 목마른 사람이 물을 생각하듯, 칠순 노파가 전쟁터에 나간 외아들을 생각하듯 의심을 지어가야 한다는 당부했다. 그래야만 화두참구가 절실해진다. 자나 깨나 늘 이마에 간절할 절(切) 자를 써 붙이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고집스럽게 화두를 붙들어야 한다는 말도 이어졌다. 쉼 없이 간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쓰러질 때도, 또 쓰러지면서도 화두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예 목숨을 떼 놓고 하라’는 옛 선사들의 어록까지 인용했다.
스님은 또 “동정 일여한 상태에서 가장 일하기 쉽다”며 화두참구와 일을 병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진지하게 공부를 하면서 얼마든지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사로 나선 지환 스님(조계종 기본선원장)도 논평에서 “개인 발심을 돈독히 하고 용맹심을 전제로 해야 참선자의 정진자세가 투철해 진다”고 무여 스님의 의견에 공감했다.
▼신심(信心)은 ‘신심(信深)’이 돼야
도 닦는 수행자는 ‘깊은 믿음’이 필수다. 신심이 부처의 눈을 뜨게 하고, 불성(佛性)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한다. 스님은 ‘나도 불성이 있다.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철저한 믿음이 있어야 화두공부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논강했다.
스님은 특히 ‘깊은 믿음’이 신앙(信仰)의 원동력이 된다고 밝혔다. 깊은 믿음은 믿음의 뿌리(信根)를 튼튼히 하고, 믿음의 힘(信力)을 키우는 기초가 된다는 의미다. 결국 신앙은 이런 신근과 신력이 든든해져야 무한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스님은 이러한 믿음을 나무의 뿌리에 비유했다. 나무의 뿌리가 깊고 튼튼할수록 흔들림 없이 크게 자랄 수 있듯이 신앙의 힘 역시 크고 깊어야 그 열매가 크다는 것이다.
▼화두참구와 조바심은 ‘반비례’
‘어서 빨리 공부가 되게 해야지, 누가 공부를 잘하게 해줄 선지식을 없나’ 등의 ‘속효심(速效心)’을 내면 낼수록 공부는 더 더디게 된다. 조바심은 또렷또렷하고 분명하게 있던 공부도 오히려 희미하게 만든다는 것. 마음을 담담하게 먹어야 화두가 분명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번뇌 망상만 일어나 산란해지기 십상이다.
무여 스님은 무엇보다도 화두공부 끝에 맛보는 고요하고 편안한 경계를 즐기는 것을 경계했다. 안주는 수행자의 독약이 된다는 의미다. 또 화두가 깊어져 느끼게 될 법열(法悅)도 수행자에게는 금기다. 그 이상의 정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으니 항상 마음자리를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무여 스님은 일체의 사량과 분별을 일으키는 알음알이를 철저히 배격할 것을 당부했다. 때문에 화두공부는 마음에 들러붙은 알음알이를 끊임없이 떼어 내는데 애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