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수 신경정신과 원장의 ‘명상과 자기치유’ 프로그램
10월 12일 저녁 7시 잠실 불광사. ‘명상과 자기치유’ 8주 프로그램에 참석한 회원 7명의 ‘소리없는 관찰’이 예사롭지 않다. 눕거나 뒤로 기대는 등 명상에 임하는 자세는 제각각이지만, ‘지금-이 순간’ 내 몸의 감각을 살피는 무형의 움직임은 쉼없이 이어진다. 날아다니는 먼지의 촉감에도 감각이 활활 살아날 즈음, 프로그램 지도자 전현수(전현수 신경정신과의원ㆍ48) 원장이 적막을 깨고 살짝 입을 열었다.
“코를 통해 드나드는 숨의 흐름에 집중해 봅시다. 그러다 생각이 엄습하면 그것을 그대로 지켜봅니다. 그리곤 다시 ‘호흡의 관찰’로 되돌아옵니다. 몸과 마음의 움직임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다보면 모든 것이 일어남과 사라짐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즐거움과 괴로움 역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감정의 하나다. 자신의 몸을 직접 관찰하면서 그 같은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과거 경험에 집중하던 생각의 습관을 깨고 늘 온전한 ‘현재’에 깨어있을 수 있다. 십여 년 간 불교와 치유의 공통분모를 찾아온 전 원장이 ‘명상과 자기치유’ 프로그램을 주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명상과 자기치유’ 8주 프로그램은 미국 메사추세츠 의과대학 부속병원 존 카밧진 교수가 10년 이상 5000명이 넘는 환자의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고안한 ‘명상을 통한 스트레스 감소-이완 프로그램’. 미국을 중심으로 전세계 200여개 이상의 병원에 널리 시행되고 있지만 국내에 도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현수 원장은 7~8월 불교상담개발원의 상담 전문가 집단에서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한 이후, 10월 5일 일반인을 대상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전문가 15명 가운데 3명이 명상을 생활화하고 5명은 명상을 틈틈이 활용할 정도로 시범 운영의 결과가 성공적이었기에, 프로그램은 곧 일반에 공개됐다.
그렇기에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프로그램을 ‘발견’하게 된 회원들의 기대도 컸다. 회원들의 심리상태를 점검하는 개별 설문조사로 프로그램을 시작한 전 원장은 호흡에 집중하는 맛보기 명상을 거쳐 본격적인 ‘바디 스캔(Body Scan)’ 지도에 돌입했다.
“바디 스캔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주의를 이동시키면서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호흡과 신체를 객관적으로 관찰합니다. 신체의 긴장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온 몸을 훑는 과정의 끝은 정수리다.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분수구와 같은 숨구멍이 정수리에 있다고 가정하고 이곳을 통해 호흡한다고 상상한다. 온 몸에 두루 주의를 이동시키다 특정 부위에서 긴장이나 통증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정수리로 끌고 가 신체 밖으로 배출한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과정 때문에 바디스캔은 신체 정화과정으로도 주목받는다.
감각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 감각과 함께 하고 있다는 의식만 살아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했건만, 명상을 처음 접한 이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신경증 때문에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 모 주부는 “한 부위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예기치 않게 다른 부위에 반응이 와서 불안했다”고 고백했고, 취업 스트레스의 탈출구를 찾아 강좌에 참여한 김 모 군은 “발끝에서 시작한 알아차림이 무릎을 채 통과하지 못했는데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려서 허무했다”고 털어놨다.
당일 프로그램은 두 시간으로 마무리됐지만 8주간의 농도 짙은 프로그램 이수를 위해 회원들은 매일 바디스캔 명상을 의무화하고 그 내용을 인터넷사이트 수행일지에 게재함으로써 개별 점검을 받게 된다. 앞으로 6주간 진행될 강좌에서는 바디스캔의 심화과정을 비롯해 정좌명상, 요가명상 등도 이어질 예정이다. 전현수신경정신과의원= (02)400-2911
강신재 기자
■ ‘명상과 자기치유’ 프로그램 국내 최초 도입한 전현수 원장
“제가 하고 있는 일은 큰 그림의 ‘조각’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조각을 모으는 작업을 이어가다보니 그림의 윤곽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명상과 자기치유’ 8주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전현수(전현수 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은 ‘불교와 정신치료’가 만나는 지점의 그림을 구현해 내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이다. 낮에는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불교 명상을 통한 치유 방책을 제시하고, 밤에는 전문가들과 모임을 갖고 불교 정신치료와 관련된 이론을 연구한다.
특히 그는 지산 스님ㆍ미산 스님 등 남방불교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스님을 비롯해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 등이 두루 참여하는 ‘불교와 정신치료 연구회’를 꾸리며 연구의 폭을 넓혀왔다.
“작년 미얀마에서 1달간 출가수행을 거친 후 불교-정신치료 통합 연구의 길을 굳히게 됐습니다. 고익진 선생님이 이끄는 일승보살회에 동참하면서 꾸준히 이어온 불교공부도 물론 도움이 됐죠.”
그는 불교와 정신의학이 둘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불교명상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운영ㆍ계발을 비롯, 불법을 정신의학 체계로 정리하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